셰익스피어 13

블로흐: 미라보 백작 (1)

유복하게 생활하는 한 사내는 어느 날 비참할 정도로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떤 상념이 사내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걸음걸이는 자신의 걸음과 비슷하며, 어깨가 흔들리는 모습 또한 자신의 것과 유사했다.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도 거의 동일했다. 이순간 사내는 어떤 착각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나의 육체이며, 나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 어떤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삶이 꼬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마치 내 동생처럼 편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황당한 사건은 주어지지 않았다. 우연히 주위에서 피리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남자는 몸을 비비꼬며 춤춘 적도 없었다. 불쌍한 그 남자는 -흔히 선한 사람들이 말대로 오로지 인간적으로 고..

28 Bloch 흔적들 2020.10.13

서로박: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2)

친애하는 N, 왜 인간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무수히 반복할까요? 어째서 인간은 비극적 체험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날까요?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사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생각해 보세요. 늙은이들은 대체로 어떤 무엇을 깨닫는 순간 사망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다시 아무 것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렇기에 속담에 의하면 “환갑 나이에 인간이 되고, 진갑 나이에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극작품의 전반부는 이로써 절망과 비극의 이야기로 끝맺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3막의 말미에는 아기인 페르디타가 극적으로 구출되는 장면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3막의 마지막 대목에서 어떤 동화적인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이것은 극중 진행과..

35 근대영문헌 2019.01.15

서로박: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1)

친애하는 N, 셰익스피어는 희로애락의 정서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고도 강렬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우리에게 전해준 세계적인 문호입니다. 놀라운 것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어떤 충격과 감명으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변화시킴으로써 환골탈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환골탈태의 장면은 이전의 연극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셰익스피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5막으로 이루어진 「겨울 이야기」는 운문과 산문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내용상 희비극에 해당합니다. 작품은 1610년에서 이듬해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611년 5월 15일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겨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후기에 집필된 일련의 낭만 극에 속합니다. 실제로 1607년에서 1611년 사이에 발표..

35 근대영문헌 2019.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