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1)

필자 (匹子) 2019. 1. 15. 22:10

 

친애하는 N, 셰익스피어는 희로애락의 정서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고도 강렬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우리에게 전해준 세계적인 문호입니다. 놀라운 것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어떤 충격과 감명으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변화시킴으로써 환골탈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환골탈태의 장면은 이전의 연극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셰익스피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5막으로 이루어진 「겨울 이야기」는 운문과 산문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내용상 희비극에 해당합니다. 작품은 1610년에서 이듬해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611년 5월 15일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겨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후기에 집필된 일련의 낭만 극에 속합니다. 실제로 1607년에서 1611년 사이에 발표된 극작품들은 주로 동화 풍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시간적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사건을 모조리 극적 내용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 「침벌레인 Cymbeline」「폭풍 The Tempest」과는 구분됩니다.

 

 

 

 

 

 「겨울 이야기」는 왕의 가족의 이별과 수년 이후의 재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 3막과 제 4막은 시간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보여줍니다. 제 1막에서 제 3막사이의 이야기는 공주의 탄생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제 4막에서는 성장한 딸이 등장하고, 제 5막에서 왕은 죽었다고 믿고 있던 자식과 뜨겁게 재회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셰익스피어가 고대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재인식 ανάγνορισις”의 기법을 도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와 그의 딸, 페르디타의 관계를 어떤 보고의 형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극작품의 제목은 그 자체 극적 사건의 동화적 특성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목은 나아가 인간적 운명의 역동적 특성 그리고 계절의 변화 사이의 유사성을 은근히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겨울의 시점에 질투심에 사로잡힌 왕의 노여움과 폭정은 시간이 흘러 어떤 여름날의 따뜻하고 찬란한 구원으로 서서히 변화됩니다. 이로써 폭군이 다스리는 냉혹한 현실은 한 시대가 지난 뒤에 따뜻한 여름의 온화함과 찬란함으로 뒤바뀌게 되지요.

 

 친애하는 N, 사랑하는 임이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 끔찍한 소모적인 고통입니다. 만약 그것이 그야말로 망상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가급적이면 신속하게 뇌리에서 지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망상은 마치 소라 고동 속을 파고드는 눈 먼 개미처럼 당사자를 어떤 심리적 파국으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비, 헤르미오네의 정조를 의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친구를 왕궁으로 초대한 게 화근인 것 같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친구인 보헤미안 지방의 왕, 폴릭세네스는 시칠리아로 와서 수개월을 레온테스 왕궁에 거주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왕비에게 추파를 던지고, 과도한 친절을 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폴릭세네스는 왕비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레온테스는 왕궁의 별실에서 두 사람이 자주 만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처음에는 친구와 아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미가 설마 자신을 배신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아들을 낳고 정겹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밀회의 빈도는 더욱 잦아집니다. 주위 사람들은 두 남녀가 자주 만난다는 것을 계속 보고합니다. 이때 아내에 대한 레온테스의 신뢰감은 서서히 허물어집니다.

 

 어느 날 왕비는 딸을 임신하여 공주, 페르디타를 출산합니다. 이때 레온테스 왕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아기의 아버지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레온테스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아내가 간통했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이윽고 레온테스의 질투심은 극도의 증오심으로 변합니다. 왕은 세 가지의 왕명을 하달합니다. 첫째로 왕은 자신의 책사인 카밀로에게 친구 폴릭세네스를 독살하라고 명령합니다. 둘째로 왕은 갓 태어난 딸을 먼 곳으로 유배하라고 신하 안티고누스에게 명령합니다. 갓 태어난 사생아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왕은 헤르미오네를 이른바 간통과 반역의 혐의로 투옥시켜버립니다. 이 와중에서 왕의 측근들은 왕의 조처가 너무 표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혐의를 밝히기 위하여 델피의 신탁에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신탁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유건해석합니다. 즉 왕비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며, 왕은 “스스로 상실한 무엇을 되찾지 않을 경우 모든 자식을 잃게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3막 2장) 그러나 레온테스는 신탁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신하들의 청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는 아내에 대한 극도의 배반감으로 인한 파괴적인 증오심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헤르미오네는 왕녀의 신분에서 수인의 신분으로 전락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아름다운 미모가 죄의 계기라면 계기였을지 모릅니다. 이제 헤르미오네는 “간통녀 adulteress”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미는 언젠가는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남편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남편이 자신의 친딸을 사생아로 매도한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지만, 아기를 보살필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헤르미오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미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신과 무심한 세상이 너무나 저주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약한 왕자 마밀리우스는 기이한 병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말하자면 신탁의 말씀은 놀랍게도 사실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신탁에 의하면 왕은 “스스로 상실한 무엇을 되찾지 않을 경우 모든 자식을 잃게 것”이라고 했습니다. 레온테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자손이 없습니다. 왕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마치 노여운 신의 징벌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신께서는 자신의 맹목성, 자신의 증오심 그리고 자신의 노여움을 아들의 죽음으로 되돌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순간 레온테스는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모조리 원상복구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때 안티고누스의 아내인 파울리나가 왕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급보를 전합니다. 즉 헤르미오네는 아들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아 급사했다는 게 바로 그 급보였습니다. 레온테스의 알량한 질투심이 원흉이었습니다. 그는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감내할 수 없어서 발버둥 치다가 끝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잃게 된 셈입니다. 자고로 끔찍한 비극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지만, 고통당하는 인간은 그만큼 더욱 성숙하게 변하는 법입니다. 레온테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서 평생 반성하면서 여생을 보내려고 굳게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