뮐러 24

서로박: 소네트 패러디 (1)

다음의 글은 나의 논문 "고상한 소네트에서 조야한 소네트로"의 일부이다. 나: 소네트는 현대인의 사랑과 성을 담기에는 진부한 형식, 다시 말해 헌 부대에 불과하지요. 현대인들이 목숨 건 사랑을 체험하는 경우는 이제 드뭅니다. 사랑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오늘날 거의 철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비극을 처절하게 노래할 필요성이 사라졌어요. 이에 반해 과거에는 구태의연한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온존하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하는 사랑의 열정은 실제로 출현했고, 이는 소네트를 통해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피에르 아벨라르 (1079 - 1142)는 엘로이즈라는 아리따운 처녀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연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끝내 살을 섞었습..

22 외국시 2021.09.05

서로박: 몸젠과 뮐러 (2)

8.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완성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열정과 부지런함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몸젠은 로마사 제 4권을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것이라고, 왜 그는 로마사 제 4권의 집필을 그토록 꺼렸던 것이었을까요? 이는 나중에 독일의 극작가, 하이너 뮐러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몸젠은 어느 편지에서 “왕궁의 잡다한 가십거리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대꾸하였습니다. 또한 몸젠은 1885년 어느 저녁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의 역사 그리고 로마의 붕괴와 멸망에 관해 기술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몸젠은 집필에 더 이상 신명을 느끼지 못했습니..

45 동독문학 2021.06.22

서로박: 몸젠과 뮐러 (1)

1. 몸젠의 삶 (1): 테오도르 몸젠은 (1817 – 1913) 1821년부터 북독의 올데스로에 지역의 목사로 일하는 큰아들로 태어나, 다섯 동생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지만, 테오도르 몸젠은 가톨릭에 대해서 거부감을 지닌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로 고향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옌스 몸젠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고전 문학에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몸젠은 처음에는 1838년 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839년 그는 킬 대학교에서 나중에 독일의 유명한 작가로 거듭나게 될 테오도르 슈토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젠은 슈토름과 자신의 동생 티코 몸젠과 함께 시선집을 간행..

45 동독문학 2021.06.22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편역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2 나의 잡글 2021.05.08

토마스 브라쉬의 극작품들 (5) 친애하는 게오르크

실험적 극작품 「친애하는 게오르크 Lieber Georg」는 1988년 극작품 모음집 『사랑스러운 리타, 친애하는 게오르크, 메르체데스』으로 베를린에서 간행되었습니다. (Thomas Brasch: Lovely Rita, Lieber Georg, Mercedes. Theaterstücke, Frankfurt a. M. 2008). 여기서 말하는 “게오르크”는 1912년에 독일의 하벨 강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강물 아래로 빠져 비명횡사한 시인 게오르크 하임 (Georg Heym, 1887 - 1912)을 가리킵니다. 브라쉬는 요절한 게오르크 하임의 짧은 생애를 반추하면서, 시인과 예술가들이 현대의 산업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냉대 그리고 주위 일상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소외감 등을 문학적으로 다루려고 하..

48 최신독문헌 2020.09.29

태극기 부대와 아무개 목사

인간의 본성은 어질고 착하다. 특히 배달민족은 부모를 애틋하게 여기고 가족과 이웃을 위하려는 고결하고 자비로운 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인간군이 존재한다. 바로 이러한 인간군이 선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이간질 시킨다. 이들이야 말로 악마들이다. 악마는 영어로 “devil”이다. 이 단어는 “절단 기계”라는 뜻을 지닌다. 흔히 사람들은 악마를 신비로운 악령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사실 악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특정 인간들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분리시키고 이간질시키며 서로 싸우게 조종하는 인간군이다. 광복절 오후 광화문 거리에는 태극기 부대 사람들이 모여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코로나 19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크도 착용..

2 나의 잡글 2020.08.22

서로박: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 (3)

(앞에서 계속됩니다.) 나: 그런데 하이너 뮐러는 자신의 연애시를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너: 글쎄요. 어쩌면 순수 극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사적인 사랑에 관한 작품을 발표하기 꺼렸을 것입니다. 특히 미발표 작품은 포르노 그리고 연애시 사이의 한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연애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인간의 적나라한 성욕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나: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초기 시 「나무 오르기에 관하여 Vom Klettern in Bäumen」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물속에서 올라오면틀림없이 너흰 벌거벗고, 피부는 부드러울 거야.또한 잔잔한 바람결에 너희의 커다란 나무로올라가겠지 하늘 역시 창백..

21 독일시 2020.08.01

서로박: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 (1)

나: 오늘은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뮐러는 인간의 성욕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지요? 너: 네 그렇습니다. 성욕에 관한 문학적 소재는 다른 주제와 뒤섞여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사실 문학 작품이 오로지 성만을 묘사하면, 작품의 가치는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나: 그러면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너: 가령 드 라클로의 성 바꾸기를 소재로 한 극작품 「사중주 Quartett」는 그 자체 어떤 혁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지요. 성욕에 관한 소재는 그 자체 인간적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른 깊이 있는 주제와 무관할 때 이를 다룬 문학작품은 통속성 속에 나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 뮐러는 이 사실을 처..

21 독일시 2020.08.01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필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

27 Bloch 저술 20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