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5

서로박: (3) 치카야 우 탐시의 삼부작 '바퀴벌레'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세 친구의 죽음에 대한 추적: 부두의 노동자 가운데에는 앙드레 솔라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앙드레는 세 친구의 죽음에 어떠한 저의가 도사리고 있는지 탐색해나갑니다. 목격자의 증언, 망자들이 동료들끼리 나눈 대화, 예언 그리고 소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히 기록합니다. 이 와중에서 앙드레는 수많은 모순 그리고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했는가? 혹시 이들도 서로 만나서 일종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뤼틀리의 서약” 같은 맹약을 맺은 게 아닐까? 세 사람은 해안에서 어떤 정신 나간 성자를 만납니다. 성자는 해파리를 잡아서 육지로 끌어올리는 어부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망자들이 그 노인과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앙드레는 ..

33 현대불문헌 2023.09.07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1)

너: 선생님은 러시아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1892 - 1941)의 연작시 「막달레나」를 살펴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굳이 이 작품을 선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나: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고대 시인, 사포 Sappho에 견줄 정도로 위대한 20세기의 대표적 연애시인입니다. 오랜 기간 베를린 그리고 파리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보냈으므로, 생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Rilke,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Pasternak 등은 편지에서 그미의 시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츠베타예바 문학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게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미는 때로는 독일어로 시를 썼습니다. 그렇기에 츠베타예바의 문학세계는 러시아 문학에 국한될 수는 없을 것..

22 외국시 2022.09.25

서로박: 헨리 밀러의 '결실 맺는 고행'

친애하는 J, 오늘은 『북회귀선』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 (Henry Miller, 1891 - 1980)의 『결실 맺는 고행 (The Rosy Crucifixion)』이라는 소설 삼부작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은 『섹스 (Sexus)』 (1949), 『얽힘 (Plexus)』 (1953), 『연결 (Nexus)』 (1960)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러는 처음부터 삼부작을 구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 작품 속에 용해되고 있는 전체적 방식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보낸 칠 년의 삶을 아무런 조건 없이 서술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밀러는 프랑스로 도피하기 전, 1923년에서 1930년까지의 미국에서의 체험이 소설 속에 그대로 스며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 『섹스 (Sexu..

36 현대영문헌 2022.03.22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의 경향

친애하는 D, 오늘날까지도 트라클의 시는 모호하고, 비의적인 작품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트라클 시를 명징하게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트라클의 “시적 언어는 무언가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은 채 그 자체 말하고” (Walter Killy)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트라클의 언어는 독자가 이해하는 언어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트라클 시에 대한 이해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트라클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 보들레르 그리고 말라르메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트라클이 남긴 대부분의 시에서는 예술작품과 관찰자 사이의 조화로움이 파괴되어 있지요.  그렇기에 트라클의 시어는 “순수한 포에지 poésie pure” (말라르메)의 시적 언어를 실제로 사용되는..

21 독일시 2021.05.16

(명시 소개) 반칠환의 시 "어떤 채용 통보"

어떤 채용 통보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

19 한국 문학 2020.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