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헨리 밀러의 '결실 맺는 고행'

필자 (匹子) 2022. 3. 22. 11:00

친애하는 J, 오늘은 『북회귀선』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 (Henry Miller, 1891 - 1980)의 『결실 맺는 고행 (The Rosy Crucifixion)』이라는 소설 삼부작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은 『섹스 (Sexus)』 (1949), 『얽힘 (Plexus)』 (1953), 『연결 (Nexus)』 (1960)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러는 처음부터 삼부작을 구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 작품 속에 용해되고 있는 전체적 방식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보낸 칠 년의 삶을 아무런 조건 없이 서술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밀러는 프랑스로 도피하기 전, 1923년에서 1930년까지의 미국에서의 체험이 소설 속에 그대로 스며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 『섹스 (Sexus)』는 1923년에서 1927년에 겼었던 이야기로서 194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전신전화국의 인사 과장으로 일하는 직장인입니다. 때때로 그는 소설을 집필하기도 합니다. 그는 브로드웨이에 있는 거대한 춤의 궁전에서 무희인 “마라 Mara”를 알게 됩니다. (그미의 이름은 나중에 “모나”로 바뀝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마라와 동침하게 되고, 그미의 육체가 지니는 마력에 자신이 푹 빠지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 다음날부터 주인공의 심경에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모나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모나의 고혹적인 미소와 육감적인 몸매에 사로잡혀 하룻밤의 정사를 획책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그의 마음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모나에 대한 연정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밀러는 자신의 부인, 모드 Maud와 이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모드와 헤어지기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애하는 J, 자고로 결혼 행위란 애정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경제적 문제 그리고 가족 관계 등의 문제와 결합하는 일이지요. 그렇기에 고통과 배신감으로 괴로워하지 않는 이혼 남녀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드와 헤어지기 위한 싸움, 이혼 그리고 모나와의 재혼 등은 소설의 주요 내용을 이룹니다.

 

친애하는 J, 자고로 사랑의 감정은 몇 몇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향기인지 모릅니다. 자고로 인간의 후각만큼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불과 몇 분만 지나면, 냄새에 둔감해집니다. 바람피우는 남자의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감정은 어느 순간 죽음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평생 너만 사랑할게. 약속할게.”라는 고백에 홀라당 넘어가는 여자는 참으로 어리석지요.

 

 

다시 소설로 돌아갑시다. 주인공은 모나를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숱한 연애 사건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다른 여자들과 동침하는 것을 그야말로 재미있는 유희로 생각할 뿐입니다. 그는 가끔 아내, 모드와 잠자리를 함께 해야 하는 것을 따분하게 여길 정도이니까요. 작가는 여러 여자들과의 성적 유희를 마치 광대의 짓거리처럼 묘사합니다. 그럼에도 밀러의 성적 묘사는 결코 과장되지 않습니다. 밀러의 소설은 바람피우는 남성의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새로운 여자와 동침할 때 가슴 설레는 짜릿함을 느끼지만, 아내와의 동침할 때 거의 끔찍할 정도로 지루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밀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집필 행위를 위한 투쟁입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어떤 위대한 소설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고 여깁니다. 대신에 그는 뉴욕의 보헤미안 출신의 친구들과 문학적 우상에 대해 끝없는 토론을 벌립니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 (Dostoevskij), 뵈메 (Böhme), 비용 (Villon), 랭보 (Rimbaud), 스트린드베리 (Strindberg), 니체 (Nietzsche), 단테 (Dante),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가 우상들입니다. 밀러는 이들의 예술, 포괄적인 세계관, 그들의 순교 정신 등을 찬양합니다. 모나는 밀러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합니다. 주인공은 모나와 결혼한 몇 달 후에 사표를 제출합니다. 직장을 그만 둔 다음에 그는 더욱 자유로움을 느끼며, 창작에 매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작품 섹스의 표지. 예술인가, 포르노인가?를 놓고 논란이 되었으나, 예술 누드로 판명되었다.

 

소설 『얽힘 (Plexus)』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모나와 함께 보내는 삶, 생활비 걱정, 몇몇 문학 작품의 발표 시도 등이 그것들입니다. 직장을 그만 두었으니,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은 당연합니다. 모나는 살롱의 밤무대에 등장합니다. 밀러는 옛 친구, 오하라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 페이지 분량의 산문시, “메초틴토스 (Mezzotintos)”를 집필합니다. 모나는 무대에서 주인공의 산문시를 낭독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살롱에 부자들이 어느 정도 모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모나의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그미의 황홀한 연기 때문입니다. 주인공과 모나는 즉시 술집을 개업합니다. 처음에는 번창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대한 것만큼 매상이 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님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친구들로서, 외상으로 술을 먹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밀러는 친구 오하라와 함께 플로리다로 자동차 타고 갑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거의 방랑자처럼 힘들게 살아갑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서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다시 뉴욕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하여 1927년의 마지막 나날을 습작으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은 결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곰곰이 숙고합니다. “내가 과연 예술가일까? 물론 왕년에는 그러했다. 그렇지만 반드시 나의 재능을 증명해내야 한다.” 밀러는 다시 극작품 쓰기를 시도하지만, 다시 그만 둡니다.

 

이번에는 수채화 그리기에 몰두하다가, 다시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점점 비참한 수렁에 빠져듭니다. 결국 주인공은 부모님의 집에서 살아야 하고, 모나 역시 그미의 부모님 집으로 이주합니다. “편안하게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경제적 방안은 무엇인가?”,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형제는 중얼거립니다. 그는 자신을 도스토옙스키의 형제라고 칭하곤 합니다. 결국 밀러는 미국 예술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지 않은 채 마치 한 마리 고독한 늑대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비명을 지르는 한 마리의 개가 바로 나란 말인가? 개의 모습은 쉬르리얼리즘에 입각한 자화상으로서 자신의 환각 속에 떠오릅니다. 세 번째 소설, 『연결 (Nexus)』은 그런 식으로 시작됩니다. 밀러는 애인 모나, 그리고 그미의 레즈비언 애인인 스타지아와 함께 브루클린의 지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모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이따금 몸을 팔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새로이 습작을 시도하다가, 모나와 심하게 다툽니다. 모나는 주인공에게 지속적인 습작을 요구하지만, 그 밖의 모든 문제를 혼자 결정합니다.

 

모나는 어느 날 돈을 잘 쓰는 유럽인 고객을 알게 됩니다. 그미는 고객과 함께 며칠 간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귀국한 뒤 들려주는 모나의 여행담은 주인공을 자극합니다. 일순간 여행의 유혹이 솟아오릅니다. 자신도 “아무런 위안이 없고, 항상 지속되는 죽음 같은 도시” 뉴욕을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유럽은 마치 “거칠고 황량한 미끼”처럼 주인공을 유혹합니다. 결국 그는 여비를 마련하여 선박 티켓을 구매합니다. “안녕, 사코씨, 안녕, 반제티씨, 우리의 죄를 용서하세요. (...)”

 

밀러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 관해서 서술하였습니다. 친구, 여자 그리고 책들은 소설의 주된 객체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브룩클린의 라블레”와 관계될 경우에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닐 뿐입니다. 이는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밀러는 친구와 애인의 이름만을 바꾸어놓았을 뿐, 실제로 겪었던 사실을 소설화하고 있다. 가령 첫 번째 부인 베아트리체 위킨스는 “모드”로, 준 스미트는 “모나”로, 옛 친구 오레간은 “오하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930년 밀러는 유럽에서 일 년간 살면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밀러의 "결실 맺는 고행" 삼부작은 뉴욕의 염세주의적인 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몰락으로 치닫는 미국 문명의 허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작품은 인습으로부터의 해방, 부르주아의 저열한 편견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밀러가 처음부터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고로 소설이란 다 그런지 모릅니다. 소설의 주제는 소설가의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곤 하지요. 자고로 모든 소설 속에는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독자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로 말입니다. 친애하는 J,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소설 집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