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의 경향

필자 (匹子) 2021. 5. 16. 11:06

친애하는 D, 오늘날까지도 트라클의 시는 모호하고, 비의적인 작품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트라클 시를 명징하게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트라클의 “시적 언어는 무언가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은 채 그 자체 말하고” (Walter Killy)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트라클의 언어는 독자가 이해하는 언어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트라클 시에 대한 이해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트라클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 보들레르 그리고 말라르메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트라클이 남긴 대부분의 시에서는 예술작품과 관찰자 사이의 조화로움이 파괴되어 있지요.

 

그렇기에 트라클의 시어는 “순수한 포에지 poésie pure” (말라르메)의 시적 언어를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 의미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습니다. 트라클의 시는 인간의 내적 상태와 외적인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강조합니다. 시인이 묘사하는 자연은 외부적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실제의 자연과는 다른 기이한 자연이지요. 이러한 자연은 그 자체 시인의 내면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동시대인들조차도 트라클 시의 독창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표현주의 시인으로 간주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나 말기에 집필한 시들은 고대적 요소를 드러내고, 부분적으로 신화를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들은 독일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트라클의 문학을 표현주의 속으로 편입시킬 수 없습니다. 트라클의 대표작들은 1910년에서 1914년 사이에 탄생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간행된 시집은 『시편들 Gedichte』인데, 이 작품집은 쿠르트 볼프 Kurt Wolff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유고집 『꿈속의 제바스티안 Sebastian im Traum』은 1915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트라클의 시는 1912년까지 이곳저곳의 잡지에 발표되었습니다.

 

누이를 뜨겁게 사랑한 트라클의 근친상간은 시인에게 고통스러운 자학 그리고 지옥의 감흥을 안겨주었다.

 

 

첫 시집 『시편들 Gedichte』은 시인에 의해서 정리되고 편집된 작품집입니다. 이 작품에는 표현주의적 성향과 인상주의의 특성을 담은 전통적 운율의 시편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별 작품들이 시대적 흐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또한 1912년에서 1914년 사이의 시기에 집필된 후기 시에 나타나는 특성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 내지 알레고리로서의 흔적이지요. 몇몇 시편 속에서는 크라클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움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조락과 사멸의 징후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은유 Metapher는 두려움과 위협적인 요소를 은밀히 제시하고 있지요. 나아가 우리는 트라클의 시에 담긴 색채 모티프를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트라클의 시에서는 붉은, 검은, 푸른 등의 시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는 어쩌면 바로크의 가톨릭의 세계의 휘황찬란한 색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색들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두려움과 위협 그리고 죄의식의 정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색채들은 연옥의 희미한 빛에 반사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 『꿈속의 제바스티안 Sebastian im Traum』은 시인이 죽은 뒤에 유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창세기에 대한 슬픔”, “시인의 광기” 그리고 “실낙원 失楽園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연작시 전편에 기본적 정서로서 착색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시인은 조락과 파괴를 과감하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전적 시의 형태는 파괴되고, 기이하게도 산문시의 요소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내면의 암흑세계는 마치 지옥과 같이 일그러진 면모를 담은 외부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시인의 어조는 무조건 참혹하고 암담하지는 않습니다. 시인이 사용하는 시적 운율은 마법적인 음악 소리 내지는 천국의 음향을 유추하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대한 시인의 기대감이 어떤 희망 없는 바람과 뒤섞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지요. 이로써 죽음의 겨울과 탄생의 봄이 하나의 상 속에서 뒤섞여 용해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D, 슬픔과 비탄의 현실 속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한 가닥 구원의 흔적은 무엇보다도 자연 속에서 발견됩니다. 자연 속에 담겨 있는 구원의 흔적은 아주 드물게 하나의 마지막 구원의 기도처럼 시인에게 접근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하네스 타울러 Johannes Tauler 그리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와 같은 독일 신비주의자들의 경건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트라클에게 자연은 한마디로 말해서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그것은 외부 현실과 일치되지 않는, 시인에 의해 떠올린, 하나의 가상적인 예술적 현실로서의 자연이지요. 트라클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가상적인 예술적 현실로서의 자연에 접근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몇 년 후에 유대인의 여성시인 엘제 라스커-쉴러는 트라클을 마르틴 루터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칭송하였습니다. “그의 눈빛은 먼 곳으로 향하고/ 그는 어릴 적부터 천국에 살고 있었노라.”고 말입니다. 트라클은 마르틴 루터가 그러했듯이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술 창조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아픔은 개개인이 겪었던 전쟁과 고난의 삶에서 비롯한 비극에서 유래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트라클의 시는 이와 관련하여 독일민족과 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사라져간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소수 민족의 애환과 해원을 기묘하게 포괄하고 있습니다.

 

 

친오빠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레테 트라클. 그미는 사랑하는 오빠가 음독 자살한 다음 뒤이어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