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 5

박설호: (2) 블로흐의 물질 이론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스토아학파의 물질 그리고 스콜라 철학과 신의 존재: 초기 스토아 사상가들은 신과 물질을 유기적 통일체로 파악하고, 전자를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의 능동적 근원으로, 후자를 “산출되는 자연natura naturata”의 수동적 근원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유일신교이든 다신교이든 간에 물체의 탄생에 기여하는 신의 영향력을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물질이 고유한 방식으로 형태를 산출한다는, 이른바 수동적 작용을 강하게 표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물질은 작용을 가하는 존재인 동시에 작용을 받는 존재로 이해되었습니다. 신과 물질은 –특히 솔로이 출신의 크뤼시포스Chrysippos von Soloi에 의하면-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한다고 확신했습니다...

27 Bloch 저술 2024.09.10

서로박: (2) 브레히트의 이단자의 외투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비극적으로 화형당하다: 1600년 2월 8일에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이단과 마법의 혐의로 화형당해 죽습니다. 그의 모든 책은 출판 판매 금지당하는 조처에 처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브루노가 쓴 모든 문헌은 이른바 분서갱유의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처형의 선고가 내려질 때 브루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합니다. “너희는 나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며 이를 받아들일 것을 선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Maiori forsan cum timore sententiam in me fertis quam ego accipiam“. 거의 8년에 걸친 오랜 법적인 공방 끝에 심신이 그야말로 초췌해진 브루노는 52세의 나이에 캄포 데 피오리에서 화형대에서 불에 타서 죽게 됩니다..

46 Brecht 2023.03.11

볼테르의 캉디드

1. 볼테르의 익명의 작품: 가장 찬란한 이상 사회에 관한 상상은 역으로 주어진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도록 추동합니다. 가령 찬란한 이상으로서의 엘도라도의 상은 절대 왕정의 반대급부로 태동하였습니다. 엘도라도는 찬란한 이상 사회로서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Voltaire: 15). 볼테르는 1759년에 익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내심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주어진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상 가운데 최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 사회에 온존해 있는 독재와 폭정 그리고 도덕적 파괴 현상을 외면하고 어떻게 지식인으로서 편안하게 자족할 수 있는가? 하는 게 볼테르의 항변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리..

32 근대불문헌 2020.02.24

쟈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쟈크 데리다는 1967년에 파리에서 "그라마톨로지 (Grammatologie)"를 발표하였다. “그라마톨로지”란 어떤 해체의 시도이다. 데리다는 “역사적 형이상학의 시대”의 폐쇄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해체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여기서 말하는 폐쇄성은 단순히 형이상학의 종말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의 종말에 대한 상상은 “어떤 인식될 수 있는 총체성” 혹은 “서로 대립되는 시대들의 어떤 일직선적인 연결”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해체 작업은 내부적으로 수행된다고 한다. 그것은 “과거 구조에 대한 모든 체제 파괴적인, 전략적인 경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책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단락에서 데리다는 로고스 중..

23 철학 이론 2020.01.30

헤르더의 "신. 몇 가지 대화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1744 – 1802)는 1787년에 『신. 몇 가지 대화 Gott. Einige Gespräche über Spinozas System; nebst Shaftsburys Naturhymnus』라는 종교 철학의 문헌을 간행하였습니다. 사실 이 문헌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F. H, 야코비와 모제스 멘델스존 사이의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언젠가 계몽주의 작가, 레싱이 스피노자의 사상과 어떠한 유형으로 결부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었는데, 헤르더는 이에 대해 논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헤르더는 이러한 집필 계기에 관해서 제 2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실 헤르더는 젊은 시절 리가 Riga에 머물 때 의학을 접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당시에 그는 쾨니히..

24 신학이론 2019.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