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헤르더의 "신. 몇 가지 대화들"

필자 (匹子) 2019. 4. 19. 11:13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1744 1802)1787년에 . 몇 가지 대화 Gott. Einige Gespräche über Spinozas System; nebst Shaftsburys Naturhymnus라는 종교 철학의 문헌을 간행하였습니다. 사실 이 문헌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F. H, 야코비와 모제스 멘델스존 사이의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언젠가 계몽주의 작가, 레싱이 스피노자의 사상과 어떠한 유형으로 결부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었는데, 헤르더는 이에 대해 논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헤르더는 이러한 집필 계기에 관해서 제 2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실 헤르더는 젊은 시절 리가 Riga에 머물 때 의학을 접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당시에 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하만 (1730 1788)과 칸트 (1724 1804)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헤르더는 신학과 학생으로서 스피노자 사상에 관해서 깊이 몰두했으며, 아울러 J. G. 하만이 추구한 범신론의 사상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언하건대 스피노자와 하만의 범신론적 이념은 교회라든가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신을 경배하려는 독일의 경건주의 사상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교회라는 종교적 단체를 배제하고 신을 직접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하려는 일련의 평신도 운동과 일맥상통하는 무엇입니다. 헤르더 역시 이 문제를 역사철학과 신학의 카테고리 속에서 추적해 나간 바 있습니다. 독일의 경건주의 그리고 평신도 운동이 르네상스와 근대에 이르는 동안에 어떤 사회 변혁의 혁명성에 자극을 가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모티프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러한 사상의 배후에 천년왕국의 메시아사상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이른바 범신론의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헤르더는 여기서 후자를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권력자 내지 귀족들은 스피노자가 무신론자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헤르더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의혹을 떨치려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레싱의 고백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합당한지를 밝히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헤르더의 문헌은 네덜란드의 유대 철학자, 스피노자의 철학 사상의 해설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 몇 가지 대화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자구적으로 논평하여 보다 구체적인 해석을 의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책은 오히려 라이프니츠 그리고 새프츠베리의 영향 하에서 자신의 신관 내지 역사관을 스피노자의 직관 개념 속에 적용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헤르더의 문헌이 16세기의 사상가들, 특히 라이프니츠 그리고 새프츠베리의 사상을 자신의 신관과 연결시켜서 하나의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한 데 데에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첫 번째 대화는 필로라우스와 테오프론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두 사람은 다음의 사항을 강조합니다. 즉 스피노자에게는 신이 첫 번째와 마지막의 이념인데, 그를 무신론자로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헤르더는 두 번째 대화에서 스피노자의 물질 개념을 분명하게 수정하여 설명합니다. 작가의 신지학의 견해에 의하면 스피노자에게 물질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함께 소재적인 무엇 das Stoffliche”을 하나의 확장된 물질의 개념으로 정의를 내린다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결합은 차단되고 끊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이원론 사상을 파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물질은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실질적인 에너지이며, 현상으로 확장된 채 드러나 있는 것은 그 현상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은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유형적으로 그리고 의미상으로 물질적 세계에서 드러나는 모든 에너지의 원초적 힘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첨예한 오성 속에는 세계의 어떠한 사물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본질 내지는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은 신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신은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지고의 실체이며 동시에 유일한 실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사물과 동일시될 수 없으며, 사물을 형태로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헤르더는 이러한 맥락에서 스피노자가 세계와 신을 동일하게 간주했다는 가설을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 속에서 오로지 신의 에너지를 고찰했을 뿐, “어떤 완전히 분화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의 일탈된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헤르더는 여기서 신의 권능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이해했을 뿐, 신을 주어진 현실의 사물과 동일한 무엇으로, 다시 말해서 현존의 차원과 동일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헤르더에 의하면 어떤 무한한 에너지에 대한 어떤 유한성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헤르더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근거한 신관을 거부합니다. 신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의인화된 존재이며, 내세로 이전된 초월적 존재라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신의 본성을 인간적 차원에서 해명함으로써 기독교는 신의 무한성을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 사상은 한편으로는 신인동형설에 근거하여 사랑과 미움이라는 인간적 감정을 지고의 존재 속에 투영시켜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물에 파고드는 일원성을 세계로부터 일탈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대화에서 헤르더의 종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신의 정의로움 내지 신의 정당성 Theodizee”에 관한 물음이 논의됩니다. 여기서 헤르더는 새프츠베리의 직관의 개념을 도입하여 스피노자 철학의 타당성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신은 새프츠베리에 의하면 내적 완전성의 개념으로서 출현합니다. 자연에 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완전성이 신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신 혹은 자연 Deus sive natur”를 부르짖은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은 새프츠베리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신의 오성에 의한 규칙 규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개념은 , 지혜 그리고 선함이라고 합니다. 신의 오성은 동시에 가장 현명하고 최상의 필연성으로 세계에 출현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상의 재능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신의 존재성을 외부로 출현시키기 위해서는 원래의 신의 본질적 특성이었던 비-인식적 특성 내지 불가시한 신성을 어쩔 수 없이 파괴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인간의 정신은 신의 이러한 영원한 힘의 일시적인 출현을 간파할 수 없다고 합니다.

 

헤르더는 라이프니츠와 새프츠베리의 이러한 논리를 도입함으로써 어떤 낙관주의의 결론을 도출해내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채 죽음을 거부하고, 죄악을 척결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파악되고, 인간의 불멸성은 (인간은 죽지만, 그 생명은 후대의 자식으로 이어져 나간다는 이른바) “재탄생 Palingenese”이라는 내적 사고 속에서 반영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과도기적으로 출현하는 사악함은 헤르더에 의하면 불완전한 무엇이며, 창조의 그림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오로지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이성, 질서 그리고 선함에 의한 영원한 법칙에 따라 출현하고 사멸하기 때문입니다. 우주 역시도 혼돈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질서로 향해 이전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지라든가 후퇴는 세계의 과정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야코비와 칸트는 헤르더가 스피노자를 잘못 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헤르더의 주장이 시대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야코비와 칸트에 의하면 헤르더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역사발전의 사고를 역사발전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785년 헤르더는 야코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피노자가 처음과 마지막을 중시했을 뿐, 변화,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그리고 생성과 생성되지 않은 무엇에 관해서 전혀 사고하지 않았다고 기술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철학의 이념이라는 저서에서도 언급되는 이야기이지만, 헤르더는 인식이론의 관점에서 범신론을 역사 발전의 과정 속에서 배제하고 말았습니다. 자고로 범신론은 나중에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끼쳐서 신보다도 인간의 이성에 더욱더 강하게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예술적 상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