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19

(명시 소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이문재의 시 "황금률"

너: 오늘은 이문재 시인의 시 「황금률」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21년에 간행된 시집 『혼자의 넓이』에 실려 있습니다. 나: 이문재 시인이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사항만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명시 「오래된 기도」 한 편만으로도 한국문학사에 찬란한 이정표를 새겼습니다. 작품은 인간의 크고 작은 갈망이 기도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너: 인용해보겠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19 한국 문학 2022.11.12

서로박: 헵벨의 '아그네스 베르나우어'

독일 고전주의와 리얼리즘 사이의 시기의 거장, 프리드리히 헵벨 (Friedrich Hebbel, 1813 - 1863)의 5막극 「아그네스 베르나우어」는 1852년에 발표된 비극작품이다. 이 작품은 1852년 3월 25일에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작품 「마리아 막달레네」를 제외한다면, 헵벨의 모든 극작품들은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아그네스 베르나우어는 절색의 미모를 갖춘 처녀로서, 아욱스부르크 출신의 평민의 딸이다. 그미는 알브레히트 3세, 바이에른의 에른스트 공작의 아들과 결혼한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그미가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을 반대한다. 결국 아그네스는 1345년 마녀로 몰려 도나우 강에서 익사한다.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민중가요 그리고 살육의 노래 등..

42 19후독문헌 2022.11.11

블로흐: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의 물질

불(火) 혹은 돌과 같은 견고함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은 사실로 확정될 수 없다. 운동은 멈추어 있는 무엇을 연속적으로 공격한다. 그렇게 되면 휴지(休止)의 소재는 여러 가지 다른 작은 것들로 파괴되고 만다. 엠페도클레스의 경우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그가 고찰하는 네 가지 원소 사이에는 사랑과 미움이 주도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원소 속에 자리하는 사랑과 미움이 서로 결합하고 해체되곤 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개별적 사물들의 변화 내지는 다양성을 깨닫게 해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다음과 같은 사고가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즉 사물의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증오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마치 쓰레기와 같은 유형이라고 한다. 세계의 원상..

23 철학 이론 2022.11.08

무제우스: 세 누이

무제우스의 동화 "Drei Schwstern"는 세 자매가 아니라, 세 누이로 번역되는 게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동화의 주인공은 그들의 남동생 라이날드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어느 백작은 세상과 지인들로부터 등진 채 고립된 성에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살았다. 굶주림을 떨치지 못한 가난한 자들만이 성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백작은 이들에게 항상 먹을 것을 제공하였다. 말하자면 굶주린 자들만이 그의 식객이었던 것이다. 백작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모두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였다. 딸들은 성의 내부에서 옷을 만들거나, 노래 부르면서 생활하였고, 하녀들과 함께 성의 살림을 꾸려나갔다. 찬란한 가을 아침 백작은 사냥하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가을의 정취에 취한 채 목재가 쌓여 있는 익숙한 길을 지나쳤..

17 (독일)동화 2022.11.08

(단상. 543) 이태원

순식간에, 너무 이르게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형형한 눈빛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없다. "백오십팔명의 사망을 '158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한 사람의 사망 사건이 무려 백오십육 건 일어났다'가 옳은 말이다." (키타노 다케시) 순식간에, 너무 이르게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3 내 단상 2022.11.06

블로흐: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의 물질 이론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으레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강물이 흐르고, 저기에는 조용한 강변이 가만히 있다. 강물과 강변은 모두 가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 영역 모두에 동조하는 느낌, 혹은 부정하려는 느낌이 자리하고 있다. 강물을 찬양하는 자는 강가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강변을 찬양하는 자는 강물 속의 허망함으로 인하여 겁에 질린다. 우리의 사고가 신선할수록, 이러한 유형의 가치를 따지는 태도는 더욱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럴수록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작업은 더욱더 열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운동이 가치 있는가, 아니면 휴지가 중요한가를 따지게 된다. 인간의 오관은 두 가지..

23 철학 이론 2022.11.05

블로흐: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의 물질 이론

그런데 과거 사람들은 운동보다도 멈춤에 관해서 강력하고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멈춤은 쉽사리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장되었다. 멈추어 있는 존재는 이루어진 무엇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 본원적 실체로 이해되었다. 다시 말해 실체는 생동하지 않으며, 어떠한 날씨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엘레아 학파들은 다만 스스로 생명으로 치장해 있는, 어떤 죽음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고는 비밀스러운 광채에 의해서 번득였다. 엘레아 철학자들은 늙은 다음에 찾아오는 죽음의 상에 대해 반대했다. 그들은 “가득 찬 무엇 πλέον”을 몹시 애호하며, 공허함을 거부하고 혐오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허무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엘레아 학파는 무엇보다도 완전한..

23 철학 이론 2022.11.05

중국의 유럽 문화 수용, 모방인가?

미국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태도: 중국인들은 미국 문화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유럽 문화에 애틋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오쩌둥 이후로 오랫동안 사회주의의 체제를 유지하다보니, 이른바 적대적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 대해서 가깝게 다가가지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미국의 생활 방식 the American Way of Life은 우리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남한의 지식인들은 90 퍼센트 이상이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합니다. 미국에서 유학한 일부 사람들은 아예 미국인이 되어 한반도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에 비하면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대체로 유럽을 부분적으로 비판하곤 합니다.) 이..

14 유럽 정치 2022.11.01

(명저 소개) 조영준의 "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 -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의 생태 사유

조영준 선생님의 책 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를 소개합니다. 조영준 선생님은 뮌스터 대학교와 카셀 대학교에서 셸링 철학을 전공하여 독일의 카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으로 현재 경북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하고 계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제 3장 주체로서의 자연 이해 셸링의 자연 철학이라고 생각됩니다. 서양 철학에서 대부분 철학자들이 의지, 의식 그리고 정신에 몰두한 데 비하면, 셸링이야 말로 고대로부터 이어진 질적 자연의 의미를 시종일관 추적해나간 철학자였습니다. 제 3장은 1. 기계론적 자연관 비판, 2. 인간 중심주의의 자연관 비판, 3. 주체로서의 자연, 4. 자연의 주체성과 생산성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지금까지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해 왔으..

1 알림 (명저) 202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