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 8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5)

그대가 걸어온 길을 알고 싶지 않아요. 임이여! 그대가 가지고 온 것은 좋았으니까요. 맨발의 나, 그대는 눈물을 가득 흘려 그대의 머리칼로 일순 내 발을 싸안았어요. 아니, 묻지 않을 게요, 그대가 이전에 무엇을 대가로 그대의 향유를 구입했는지. 나는 알몸이었어요, 그대는 - 마치 파도와 같이 나를 칭칭 감았지요 - 나의 옷이었어요. 그대의 알몸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고 있어요. 물처럼 조용히, 풀처럼 깊숙하게 ... 나는 바로 서 있었지만, 그대를 애무하도록 몸 구부려야 했어요, 도에 지나치게. 그대의 머리칼 속에 내 구덩이 하나 파야 해요, 나를 휘감아 봐 - 아무런 수건도 없이. 향유를 가져온 여인이여! 세계와 향유가 내게 뭐람? 마치 밀물처럼 나를 씻겨낸 분은 바로 그대였지요. О путях тво..

22 외국시 2022.09.25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4)

나: 놀라운 지적이로군요. 어쨌든 마리아 막달레나가 던지는 추파는 설렘과 머뭇거림 그리고 엄청나게 커다란 고통을 동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남자가 “결함이 많”은 자신을 배척하지 말고, 받아주기를 애타게 기대하고 있어요. 너: 츠베타예바의 연애시는 대체로 기쁨과 희열 대신에 비애의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군요. 사랑의 고통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도 안타까운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애통해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나: 네, 아마도 츠베타예바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릴케의「피에타 Pietà」(1912)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내 가슴속으로 고난이 엄습하네. 이름 없는/ 무엇이 가득 찼어. 돌의 내면이 굳어가듯이/ 나도 굳어가네./ 내 마음 얼마나 단단한..

22 외국시 2022.09.25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3)

우리 사이에는 - 십계명이 있어요. 불로 타오르는 열 개의 열정이지요. 고유한 피는 더 이상의 공간을 알지 못해요. 당신은 나에게 낯선 피니까요. 축복의 말씀이 전해지던 시대에 만일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당신은 낯선 피, 가장 열망하는 무엇보다 가장 낯선 빛이지요.) 결함이 많아 감히 당신에게 내 마음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없었지요. - 밝은 머리카락! 나는 악마의 눈으로 자신을 감추고 향유를 붓고 싶었어요, 당신의 발에다, 발 아래로 향해서. 모래, 땅 속의 자갈로 흐르도록 ... 소매상인들에게 팔았던 사랑, 참회하는 여인이여, 그대, 침 세례를 당하는 그대, 모조리 흘러라! 당신의 입술과 관자노리에는 거품이 일고, 모든 욕망 땀으로 맺히며, 머리카락 속으로, 나의 몸속으로. 모피와 같..

22 외국시 2022.09.25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2)

2.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중적 면모 너: 그것도 하나의 해석일 수 있겠지요. 내 생각으로는 예수와 막달레나를 작품 속에 등장시킨 것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의미심장합니다. 이를테면 몇몇 영지주의자들은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에서 탄생했다는 정통적 기독교 교리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쨌든 츠베타예바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남녀평등을 지향하고 있어요. 작품은 특히 사랑의 삶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나: 그런가요? 작품을 분석하려면, 일단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말씀해주시지요. 너: 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찍이 막달레아 지방에서 매춘에 종사한 여인이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인도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22 외국시 2022.09.25

서로박: 츠베타예바의 시 "막달레나" (1)

너: 선생님은 러시아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1892 - 1941)의 연작시 「막달레나」를 살펴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굳이 이 작품을 선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나: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고대 시인, 사포 Sappho에 견줄 정도로 위대한 20세기의 대표적 연애시인입니다. 오랜 기간 베를린 그리고 파리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보냈으므로, 생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라이너 마리아 릴케 Rilke,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Pasternak 등은 편지에서 그미의 시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츠베타예바 문학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게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미는 때로는 독일어로 시를 썼습니다. 그렇기에 츠베타예바의 문학세계는 러시아 문학에 국한될 수는 없을 것..

22 외국시 2022.09.25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6)

지금까지 언급한 바를 요약해보기로 하자. 문화적 유산을 마르크스주의로 수용하는 작업은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선구자적인 문장과 결부된다. “만약 인류가 이룩해놓은 모든 풍요로운 문화를 접함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풍요롭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오로지 이 경우에 한해서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엥겔스는 여기서 독일 고전주의 철학을 인류의 문화적 유산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엥겔스는 문화의 영역에서 오로지 철학만이 유용한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하였다. 인류가 남긴 문화적 보물 창고에는 녹슨 물건들 그리고 부패한 나방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일차적으로 제거한 다음에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습득한 희망docta spes”을 가..

29 Bloch 번역 2022.09.25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5)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후기 시민 사회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하는 태도는 결코 마르크스주의의 예술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에서 시민 사회의 문화를 그런 식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20세기 예술에 대한 슈펭글러의 무조건적인 비난은 결국에 이르면 하나의 불합리한 논증으로 귀결될 뿐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가장 발전된 의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는 시민 문화의 해체 현상 내지는 예술적으로 가능한 다양한 왜곡 현상에 대해 맹목적으로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해체라든가 일그러지거나 꿈틀거리는 왜곡은 저녁 그리고 아침, 다시 말해서 몰락과 개벽 사이에 변증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

29 Bloch 번역 2022.09.25

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4)

언젠가 마르크스는 착취당하는 계급 뿐 아니라, 지배계급 또한 근본적으로 소외 상태에 처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계급이 편안하게 살고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문장을 심층적으로 고찰해보면 -낱말의 위트를 사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세의 대성당의 면모 속에는 비록 계층 차이의 문제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어떤 열광적인 휴식에 관한 놀라운 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사회적으로 소진될 수 없는, 외자존재로서의 인간 소외의 제반 모습들을 예술적으로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세의 건축 장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미처 예리하게 간파하지 못한 내용을 마지막까지 추동하여 이를 하나의 결과물 속..

29 Bloch 번역 202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