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3. 첫 번째 시 분석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네!
악의 없는 말은 어리석을 뿐. 어느 매끈한 이마는
무감각을 시사하고 있어. 웃고 있는 그자는
그 끔찍한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했네.
작가는 시대의 지침계로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나’는 끔찍한 소식을 접하고 괴로워하며, 암울한 현실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다. 여기서 끔찍한 소식이란 좌익 지식인의 체포, 분서갱유, 혹은 1936년의 스페인 내전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하면 우연히 만난 남자는 -마치 그의 겉모습 (“매끈한 이마”)이 시사하듯이- 이에 대해 둔감하다. “참으로”라는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대로 “진실로”라고 해석하는 게 원뜻에 가까울지 모른다.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악의 없는 말”은 사족이 아닌가? 이는 다음 구절에 나오는 “나무에 관한 대화”만큼이나 “어리석을 뿐”이다.
나무에 관한 대화가 거의 범죄가 되는
지금은 도대체 어떠한 시대인가!
그 대화는 수많은 잔악 행위에 대한 침묵을 내포하므로.
조용히 길을 건너는 저 남자에게
곤궁에 처한 친구들이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는가?
불법이 횡행하는 곳에서 침묵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불법이 횡행하는 곳에서 불법을 지적하기는커녕, “악의 없는” 말만 나누는 게 오히려 범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법을 인지하는 ‘나’는 이를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변의 위협이 따르기 때문이다. 지식인으로서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데도 말할 수 없는 상황, 친구가 구속되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주어진 현실이다. 여기서 첫 번째 갈등과 모순이 담겨 있다.
브레히트는 나무에 관한 비유를 자주 사용했다. 예컨대 자두나무는 제한된 현실 조건 때문에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삶을 상징하는가 하면 (각주: Siehe Bertolt Brecht: Der Pflaumenbaum, in: WA., Bd. 9, Frankfurt a. M. 1983, S. 647. ), 「어려운 시대들」에서 말오줌나무는 혁명의 모태에서 보수주의적 사고가 출현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각주: B. Brecht: Gedichte aus den Jahren 1935 - 1955, in: Sinn und Form, 16. Jg. (1964), H. 4, S. 572 - 578, Hier S. 576.).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사과나무는 아름다움의 객관적 상관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각주: 호두나무에 관한 비유도 이에 해당된다. Siehe B. Brecht: WA. 9, S. 587.). “(...) 내 마음속에는/ 만개한 사과나무에 대한 경탄과/ 칠장이의 말에 대한 전율이 싸우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것이/ 나를 책상으로 충동질한다.” 그런데 상기한 인용문에서 나무는 하나의 상징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악의 없는” 대상을 지칭한다. (각주: “나무에 관한 대화”는 여러 시인들에 의해 다른 의미로 인용되곤 하였다. 이를테면 에리히 프리트는 “베트남에서는 나무들은 잎이 잘리고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나무에 관한 대화”도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파울 첼란은 「잎 하나, 나무 없는. 브레히트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어떤 대화가 거의/ 범죄가 되는/ 지금은 어떠한 시대인가?/ 대화는 수없이 말해진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E. Fried: Gespräch über Bäume, in: Anfechtungen, Berlin 1967, S. 60; Paul Celan: Schneepart, Frankfurt a. M. 1971, S. 59. ).
내가 아직 생계비를 버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믿어다오, 이는 우연일 뿐이라고. 내가
행하는 어떠한 것도 배불리 먹는 걸 정당화할 수 없네.
우연히 나는 모면해 있어. (운이 따르지 않으면, 패망할 테지.)
시인은 ‘너희’, 그러니까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나’는 험란한 시대에 혼자 안온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무릇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배불리 먹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배불리 먹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을까? ‘나’의 행위는 주어진 현실에서는 ‘사회적 이익’에 전혀 공헌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개인적 이익’ 만을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암울한 현실은 개인의 이익을 사회적 이익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한 시인이 아직 당하지 않는 것은 다만 우연일 따름이다.
누군가 나에게 말하네, 먹고 마시라고, 가진 데 대해 기뻐하라고.
그러나 굶주리는 자에게서 식량을 빼앗는다면,
나의 물 잔이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내 어찌 먹고 마실 수 있는가?
그럼에도 나는 먹고 마시네.
“누군가”는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한다. 그는 이마를 매끈하게 가꾸는 남자, 다치지 않으려고 조용히 길을 건너는 남자와 같은 소시민들이다. 이들에게는 브레히트의 이타주의의 발언은 일종의 핑계 혹은 엄살처럼 들릴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어진 사회의 물질적 정신적 궁핍함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며, 사적인 이익만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계 상황이 들이닥쳐도, 그들은 “전복 후의 저축 예금”과 “일요일에 입을 바지”만을 생각한다. (각주: B. Brecht: Gleichnis des Buddha vom Brennenden Haus, in: ders., WA., Bd. 9, S. 669.).
얼핏 보기에는 시인이 이웃 사랑이라든가, 희생정신을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빵과 포도주에 대한 언급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는 빗나간 해석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문제는 빵이요, 그 다음에 윤리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상황이 일차적으로 모든 것을 규정하며, 이러한 토대위에 윤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주어진 현실적 여건과 경제적 상황이 개개인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행이다. 브레히트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스토아 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의 공동적 아궁이, 즉 “사회적 빵”을 얻기는커녕, 다만 자신의 생계만 걱정할 뿐이다.
나 역시 현명하고 싶네.
오래된 책에는 무엇이 현명한지 적혀 있지,
세상의 싸움에서 벗어나 짧은 기간동안
공포심을 느끼지 않고 지내기,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살아남기,
악을 선으로 값기,
갈망을 성취하지 않고, 잊어버리기
이러한 것들은 현명하다고 간주되지.
“현명해지고 싶다”는 표현은 지식인 내지는 지성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렇듯 브레히트는 동시대인들에게 무언가 유익한 말을 전하고 유익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그는 노자의 사상 (3, 4행), 간디의 비폭력주의 (5행), 기독교 사상 (6행), 불교 사상 (7행) 등을 언급하며, 이를 실천하고 싶다. 그러나 현명한 생각들이 시인이 처한 현실에서 실천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의 폭력과 파시즘적 전쟁은 이러한 이념들을 모조리 무력화시키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것은 자아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철저할 정도로 분할시켜 놓는다. 지식인이 자신의 입에 풀칠만 하면, 사회의 이익을 저버리게 되는 셈이요, 자신의 이상으로서의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면, 자신의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바로 이러한 문제는 브레히트로 하여금 묵자의 사상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고, "메티. 변전의 서 Meti. Buch der Wendungen"의 집필 동기를 제공하였다. 실제로 묵자의 겸애설과 평화주의는 한마디로 나와 타인을 동일시하는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세계로 확장된, 보다 커다란 자아의식을 창출한다. (각주: 墨子: “도둑질은 자신의 재화를 빼앗는 것이요, 강간 행위는 자신의 딸을 성 폭행하는 행위이며, 다른 국가의 약탈은 자신의 형제의 땅을 빼앗는 무례한 짓이다”. 이에 관해서는 墨子의 「겸애편 (兼愛篇) 上」을 참고하라. 묵자: 김학주 해설, 서울 1972, 104 - 106쪽.). 브레히트는 망명 시에 “세계를 변화시키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겠다.” 라는 마르크스의 발언을 언제나 염두에 두었다. (각주: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개의 명제」 가운데 세 번째 명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황의 변화를 인간 행위의 변화 내지는 자아의 변화와 일치시키는 일 - 그것은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써 파악되고 합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가 묵자의 사상을 하나의 긍정적인 유토피아로 간주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묵자의 사상의 실천은 사회 구도가 소규모이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의 횡포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가능할 뿐이다. 여기서 두 번째 갈등과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네!
주어진 현실은 시인으로 하여금 상기한 현명한 생각들을 실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문제는 선을 강조하는 인간의 보편적 휴머니즘 내지는 도덕적 형이상학은 브레히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물음이 중요하다. (각주: 그렇기에 브레히트는 학살 궁전의 성스러운 요한나 Heilige Johanna der Schlachthöfe에서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를 풍자하고 있다. 보편적 휴머니즘으로서의 독일 이상주의는 브레히트에 의하면 계급의 문제를 철저히 둔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정교사 Hofmeister"에서 브레히트는 칸트의 정언적 명제를 은근히 비판하고 잇다. 즉 칸트에게서의 도덕이란 주어진 시민주의 사회적 덕목이 이데올로기화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암울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말년에도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떨춰버릴 수 없었다. 최소한 51년까지 구동독이 비판적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하나 (각주: Siehe M. Wekwerth: Interview, in: Th. Grimm (hrsg.), Was von den Träumen blieb, Berlin 1993, S. 129 - 151, Hier S. 133.), 당국의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몰래 고수했던 브레히트는 여러 종류의 비판과 검열에 시달린다. 그는 남몰래 오스트리아 여권을 항상 지니고 있었고, 작품을 달리 개작하여 몰래 다른 나라에서 발표하려 하였다. 또한 1953년 6월 베를린 노동자 폭동이 발생했을 때, 그는 당국에 의해서 교묘하게 이용당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하이너 뮐러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브레히트
참으로 그는 암울한 시대에 살았다.
시대는 더 밝게 되었다.
시대는 더 암울하게 되었다.
밝음이 ‘나는 암울이다’라고 말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한 셈이다.
암울이 ‘나는 밝음이다’라고 말하면
그는 거짓말한 것은 아니다.” (각주: H. Müller: Geschichten aus der Produktion 1, Berlin 1974, S. 82.).
‘나는 밝음이다’라고 말하는 암울의 발언은 거짓말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뮐러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적 진보는 사회의 제반 구성원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자아의 파괴라는 하나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뮐러는 「임무 Der Aufrag」에서 등장인물을 통해서 “혁명은 죽음의 마스크이며, 죽음은 혁명의 마스크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유토피아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하고, 이데올로기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잉태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각주: 이는 카를 만하임 Karl Mannheim의 방식으로 역사적 진보를 두 가지의 추상적 개념으로 상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뮐러에 의하면 사회적 정체 현상은 -기존 사회주의 체제가 공산주의로 향하는 과도기로서 이해된다면- 오직 구체적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고, 극복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로써 뮐러는 얼핏 보기에는 부권적인 전통을 거부 내지는 파괴하고 있는 것 같으나 (각주: Vgl. B. Greiner: Das Dilema der Anchgeborenen. Paradoxien des Brecht-Gedichts und seiner literarischen Antworten in der DDR, in: DDR-Literatur der 50er Jahre, (hrsg.) W. Scherpe, Argumentsonderband 149, S. 174 - 193, Hier S. 180ff.), “하이너 뮐러의 세대는 아직은 브레히트의 후세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가설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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