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서로박: (5) 블로흐의 카테고리 이론

필자 (匹子) 2025. 2. 27. 10:35

(앞에서 계속됩니다.)

 

26. 영역의 카테고리: 블로흐는 여섯 번째로 영역 카테고리를 개진합니다. 영역의 카테고리는 블로흐에 의하면 모든 역사적인 시기 내지는 역사적 단계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이에 관한 예로서 블로흐는 인간의 카테고리를 거론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카테고리가 모든 역사적 단계 내지는 시기에서 광활하고 포괄적 특징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가령 “인간은 본원적으로 선하다.”라든가, “인간은 본원적으로 공격적이다.” 등과 같은 발언은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격 성향의 원인이 상부의 법으로부터 비롯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하부 구조에서 유래한 것인지 하는 물음은 별반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공격 성향이 지배 관계에서 파생되는 억압에 대한 정당한 방어인지 하는 물음 역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격 성향은 말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공격 성향은 오래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여러 가지 물체와 유사하게 인간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 자체가 변모를 거듭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27. 세계의 변화와 함께 인간도 변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한결같이 동일한 존재로 존재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인간 존재는 자신의 핵심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연속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완결되지 않은 존재입니다.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놀라울 정도의 시적 표현으로 인간을 정의했습니다. 즉 “인간은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Bloch, PH: 224). 이 점을 고려할 때 인간적으로 완전무결한 인간 존재는 블로흐에 의하면 여전히 확정적이지도 완결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서 확실한 것은 인간 존재가 여전히 노예 그리고 주인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긍정적 변화를 차단하는 모든 사악한 존재에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게 된다면, 인간은 비인간적으로 살게 하는 제반 조건으로부터 멀어져서, 더 나은 삶으로 향해 나아가게 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원칙은 블로흐가 명명하는 영역의 카테고리 그리고 이와는 다른 영역의 카테고리 속에서 항상 동등하게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블로흐에 의하면 모든 영역의 카테고리 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원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의 카테고리 속에 제각기 다른 원칙이 하나씩 자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모를 거듭하지 않는, 항상 똑같은 원칙입니다.

 

28. 인간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희망의 카테고리: 블로흐는 인간 존재의 원칙이 카테고리와 동일한 차원에서 해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 존재의 동질성 내지는 동일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하나의 분명한 방향을 알려주는 핵심적 카테고리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적 카테고리는 “없음” 그리고 “(영역에 합당한) 있음”이라는 영역 카테고리로서의 원칙입니다. 그것은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인간이 걸어가는 기본적인 방향이 결코 약화하거나 파기되지 않으며 불변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블로흐는 인간 존재의 원칙이 다양한 복수형으로 표기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제반 원칙들은 오로지 역사적으로 출현하며, 스스로 변조되며 최종적으로는 사라지는 것들이다. 이른 식으로 상대화되고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은 보편적 원칙이 아니다. 시간, 다시 말해서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주위 정황의 기준에 근거하는 원칙을 충직하게 고수할 필요는 없다.” (Bloch, EM: 180).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하나, 즉 희망이라는 원칙밖에 없다고 합니다.

 

29.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 블로흐는 마지막 일곱 번째 카테고리로서 정체성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동일성을 가리킵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동일성Identischsein”은 블로흐에게는 고전적 논리학에서 말하는 정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정체성 내지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블로흐의 태도를 비판하였습니다. 가령 우리는 알프레트 슈미트Alfred Schmidt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에 나타난 자연의 개념』 (1962)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경우 주체와 객체의 한계는 결코 파기될 수 없는데, 블로흐는 이를 무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Schmidt: 45) 인간이 자연의 관점으로, 자연이 인간의 관점으로 인지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블로흐는 주체와 객체가 동일하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동일성을 추구하는 주체와 객체의 개별적 작용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블로흐는 주체와 객체의 상호 접근을 하나의 싹트는 출발점으로 이해합니다. 주체-객체는 블로흐에 의하면 상호 중개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주체 객체의 고유성을 지니는 게 아니라, 각자 어떤 낯선 존재로 작용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맨 처음에는 “아직 아닌 존재”로 서성거리다가 상호 중개 과정에서 제각기 낯선 무엇으로 기능하며, 상호 동일성을 지향해나간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도 끝난 게 아니라고 합니다.

 

30. 주체와 객체는 동일성을 지향한다.: 블로흐가 말하는 실체로서의 정체성 내지는 자기 동일성은 카테고리의 일곱 번째 단계에 해당합니다. 블로흐는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은 시작의 단계로 이해될 뿐입니다.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세계에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세계의 변화 과정은 블로흐에 의하면 어떤 무엇 그리고 어떤 사항, 즉 “내포quidditas” 그리고 “외연quodditas” 사이에 이루어지는 동일성의 시도입니다. 정체성 내지는 동일성의 문장은 “최종적으로 가능한 동일화의 지평”을 가리킵니다. 블로흐는 어떤 무엇과 어떤 사항이 일치되는 경우를 유토피아적으로 현실에서 출현하는 가능성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무엇이 어떤 사항 속에 올바르게 편입되는” 최종적인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Bloch, EM: 243).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입니다. 과연 이러한 동일성이 주어진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우리는 카테고리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블로흐가 제시하는 일곱 개의 카테고리는 세계의 과정에 관한 본질적인 발언 내지는 진술이라고 말입니다. 이것들은 여전히 변모를 지향하는 존재와 필수 불가결한 관련성을 맺고 있습니다. 블로흐가 생각하는 이러한 카테고리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전통적으로 이해하는 카테고리와는 달리 정태적 특징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카테고리의 사고는 결코 수동적이거나, 주어진 무엇을 모사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주로 긍정적인 변화를 촉구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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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윤락: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서 주어 술어 이론의 존재론적 함의, in: 동서철학 연구, 93권 3호, 2019, 77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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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츠키, 카를: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동연 2020.

희망의 원리 C: 에른스트 블로흐, 더 나은 삶에 관한 꿈, 솔 1995.

희망의 원리 D: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5권, 열린책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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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 Sophistes. Text und Kommentar von Christian Iber, Frankfur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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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deick, Peter: Der Hintern des Teufels. Ernst Bloch – Leben und Werk, Moos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