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BC484? - BC. 406)는 아이스킬로스 그리고 소포클레스에 비해서 신의 권능 및 이로 인한 인간의 비극적 숙명 등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비교적 인간적 영욕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우리피데스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들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에우리피데스가 특히 여성들에 대해 동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피게니에를 소재로 하여 두 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하나는 「아올리스의 이피게니에」이며, 다른 하나는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입니다. 전자의 작품은 미공개로 존재하다가, 극작가가 죽은 다음에 기원전 405년 디오니소스 축제 당시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는 후세에 라신 Racine, 괴테 Goethe의 작품에 의해서 더욱더 유명하게 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언제 탄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창작 동기라든가 연극의 구조 등을 감안하여 작품의 집필 시기를 기원전 412년경이라고 추측합니다.
친애하는 P, 처음에는 신화의 인명 지명들이 낯설겠지만, 자꾸 대하면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작품 역시 신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가멤논은 트로야 전쟁이 발발할 무렵에 자신의 큰딸, 이피게니에를 소환합니다. 겉으로는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와의 약혼이 그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속으로는 딸을 아르테미스 여신의 제물로 바치려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배가 신의 도움을 받아서 트로야로 순항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친애하는 P, 어째서 자식인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영욕을 위해서 딸을 제물로 바치는 자는 반드시 이후에 보복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피게니에를 둘러싼 이야기를 신화와는 달리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신화와는 달리 처녀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주를 제물로 바쳐지고 주장한 사람은 예언자이자 아가멤논의 책사인 칼하스였습니다. 칼하스의 광적 이념이 결국 이피게니에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것입니다.
작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지닙니다. 여신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니에가 바다에 수장 (水葬)되기 전에 그미를 구출합니다. 여신은 암양으로 변모하여, 이피게니에를 그리스 북쪽의 타우리스 섬으로 유혹합니다. 이피게니에는 그곳에서 여 사제가 됩니다. 그러나 다른 여 사제들은 그미를 처형시키자고 주장합니다. 이방인은 결코 사제가 될 수 없으며, 살아남아서도 안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당시는 10년 동안의 지루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나중에 이피게니에의 어머니, 클뤼티메스트라는 남편을 저주하다가, 결국 귀환하는 아가멤논을 쳐 죽입니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다시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하여 어머니, 클뤼티메스트라를 살해합니다. 그 후에 아테네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고, 타우리스 지역으로 향합니다. 즉 그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석상을 아티카로 옮겨오라는 게 아폴론의 명령이었습니다. 만약 이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자신이 앓고 있는 간질병이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한 이후부터 간질로 인해서 커다란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상기한 이야기는 작품의 맨 첫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1 - 122행). 이는 작품의 이전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아스트리덴 왕가를 둘러싼 비극인데, 여주인공의 가족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피게니에는 전날 밤의 악몽을 꾸었습니다. 그미는 악몽의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직접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쳐 죽여 제단에 바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트리덴 왕가의 마지막 자손인 오레스테스는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 아닙니까? 이피게니에, 오레스테스 그리고 필라데스는 타우리스의 어느 장소에 등장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스스로 찾던 사원을 발견하고, 밤 시간을 이용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의 석상을 옮기려고 계획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 (123 - 235행)에서는 여주인공의 성격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고독한 그미는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의 버림받은 처지에 대해서 탄식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때 꿈에서 나타난 상은 놀랍게도 마치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 합창은 고유한 견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오레스테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노래합니다. 간질 발작이 육체적 고통이라면, 어머니를 살해해야 한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극도의 자학 등이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 합창은 이피게니에의 불행을 거론합니다. 그미는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서 바다에 빠져죽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피게니에는 아트리덴 왕가에 내린 저주로 인하여 자신이 불행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미는 사랑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비탄의 발언을 끝냅니다. 다음의 장 (236 - 391행)의 핵심은 어느 양치기의 보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치기는 두 사람의 낯선 남자에 관해 보고합니다. 한사람은 필라데스이며, 다른 한 사람은 어느 정신 나간 남자 (오레스테스)입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해안에서 붙잡아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두 개의 장 (392 - 455행, 456 - 1088행)에서는 “재인식 ἀναγνώρισις” 그리고 “술책 (Mechanema)”이라는 두 개의 모티브가 서로 엉켜 있습니다. [재인식의 모티브는 나중에 성서에서도 나타납니다. 가령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요셉은 헤어졌던 형님들을 만나 상봉합니다. 요셉의 뇌리에는 볏단을 들고 절하는 형님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이로 인하여 과거에 함께 정답게 살았던 형님들을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헤어졌던 남매가 다시 만나는 게 재인식의 모티브라면, 섬을 떠나기 위해서 지략을 꾸미는 게 인간적 술책의 모티브에 해당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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