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필라데스와 오레스테스를 꽁꽁 묶어서,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랑하는 두 남매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피게니에와 오레스테스가 그러했습니다. 달리 치장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매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피게니에는 낯선 두 그리스인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이름과 고향을 묻습니다. 이때 오레스테스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트로야에 관해서, 전쟁의 영웅 그리고 희생자에 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령 헬레나, 칼하스,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클뤼티메스트라, 이피게니에 그리고 오레스테스 등이 소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이피게니에는 소식 전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무명의 남자를 위해 추천장을 써주며, 아르고스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떠나지 않고, 필라데스로 하여금 추천장을 받게 합니다. 이피게니에가 편지를 가지러 집으로 가는 동안 두 사람 (필라데스 그리고 오레스테스)은 다정한 여사제가 어디 출신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정은 친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고결함에서 증명되는 것일까요? 오레스테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살아남을 기회를 포기합니다. 대신에 친구, 필라데스로 하여금 이곳을 떠날 수 있게 조처합니다. 동시에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져오라고 하는 아폴론의 부탁이 자신을 속이려는 계략에 불과하다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643 - 722행) 이피게니는 필라데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즉 편지를 전하고 돌아온다면, 오레스테스는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전에 이피게니에는 편지가 무사히 전달되기 위해서, 주소 그리고 편지 내용을 미리 구술해 줍니다. 편지는 오레스테스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제 필라데스는 섬을 떠나야 하고,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필라데스는 친구를 버려두고 혼자 떠나는 데 대해 고통을 느낍니다. 이 순간 그의 뇌리에는 어떤 기지가 떠오릅니다. “만약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여 배가 난파당하게 된다면, 그는 편지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맹세의 저주는 풀리게 될지 모른다.”는 게 그 기지였습니다. 필라데스는 작별의 순간 무심코 오레스테스에게 편지의 내용을 전해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나타나는 “재인식 (Anagnorisis)”을 매우 찬양한 바 있습니다.] 남매는 그제야 서로를 알아보고 뜨겁게 포옹합니다. 이때 필라데스는 두 남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비록 서로 상봉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 구원은 아니라는 게 바로 그 경고였습니다.
마지막 대목 (1017행)에서 필라데스는 어떤 해결방안을 생각해냅니다. 바로 여기서 “술책 Mechanema”의 모티브가 나타납니다. 즉 타우리스 섬의 야만인의 왕 토아스를 죽이든가, 아니면 야밤을 통해서 이곳을 탈출하자는 게 필라데스의 해결방안이었습니다. 이피게니에와 오레스테스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거절합니다. 대신에 그들은 도주하기 위해서 어떤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토아스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레스테스는 모친 살해로 인하여 몸이 더럽혀 졌다. 그는 아르테미스가 희생물을 요구하기 전에 여신상과 함께 높은 섬에서 죄를 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극적 긴장감을 위해서 합창이 중단됩니다.
다음 장 (1153 - 1233행)에서 토아스 왕은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노예들은 모든 그리스 사람들 그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바다로 옮겨 놓습니다. 섬의 주민들은 아무도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모든 일은 비밀리에 추진됩니다. 마지막의 장 (1284 - 1496행)에서 다시 극적 사건이 출현합니다. 누군가 달려와서 토아스 왕을 찾습니다. 그리스인들이 몰래 출항하는 것을 발견하고, 타우리스 섬의 사람들은 이들을 붙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토아스 왕은 이들을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드라마의 갈등을 순간적으로 해결하는 여신 (dea ex machina)”, 아테네가 등장하여, 그리스인들의 출항을 도와줍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바다를 잔잔하게 해줍니다. 이로써 오레스테스는 타우리스 섬에 있던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할라이로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신전을 만듭니다. 이피게니에 역시 할라이 근처에 있는 브라우론 지역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는 사제로 살아갑니다.
친애하는 P,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는 비극이라기보다는 민요적 정서를 지닌 작품으로서,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입니다. 기원전 412년에 이르러 누구보다도 에우리피데스에 의해서 반-비극적인 창작 시기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작품의 주도적 정조는 놀랍게도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 대신에 재회의 기쁨, 고향에 대한 동경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엔들이 살해자들에게 보복으로 가하는 대신에, 인간적 지략 그리고 우연의 유희, 승리의 여신, 티케가 묘하게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작품 속에서 관객은 이피게니에와 오레스테스의 심리적 움직임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우리피데스의 극 작품은 이제 신의 세계보다는 인간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습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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