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연정은 무엇보다도 특정 이성에 관한 기이한 신비로움의 정서에서 싹트곤 한다. 물론 임과 살을 섞은 다음에 뒤늦게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은근히 솟아오르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연정은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기 전에 싹튼다. 마치 꽃봉오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품는 꼬마아이처럼 호모 아만스는 비밀스러운 이성을 몹시 궁금해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외모, 표정, 동작과 옷맵시를 접하거나 말투만으로도 가슴속에서 순간적으로 용솟음쳐 올라오지 않는가? 자고로 에로스의 화살은 사랑하는 대상을 차지하기 전에 더욱 힘차게 과녁을 향해 나아가는 법이니까. 이처럼 사랑의 밀물은 사랑의 썰물보다 더 힘찬 설렘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분명히 말하건대 연정에 이끌리는 호모 아만스는 그분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기묘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하는지 모른다. 임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임에 관한 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세상에 의외로 즐비하다. 나중에 이러한 상이 파괴되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몹시 실망하지만, 이는 어쩌면 사랑의 상 자체가 파괴되는 데에서 비롯하는 가상적 환멸일지 모른다.
이렇듯 사랑하는 임의 상은 마치 만화경의 상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다. 또한 이와 관련되는 사랑의 강도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활화산을 방불케 한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한 갈망은 그 강도에 있어서 갈망의 충족 시에 느끼는 감정보다도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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