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입시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주야장천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해야 했다. 독일어 선생이었던 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습 시간 감독을 자청하곤 했다. 공부에 싫증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서 틈틈이 『난중일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순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박정희 독재에 대한 저항 의식을 부추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은 거북선의 계발, 지형지물을 이용한 탁월한 용병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풍전등화의 강토를 반드시 수호하리라는 당신의 마음가짐이었지요.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었으므로 장군은 당시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음해에도 불구하고 백의종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장군이 공명심을 탐하지 않고, 나라를 구하려고 작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명예는 봉사와 희생정신에서 나타납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在世理化)도 이와 관련되지요.”
석동현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서울법대에 합격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아니, 놀라게 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국영수 시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 우연히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 시험 치르는 데에는 자신 있습니다. 주어진 문제에 수동적으로 분석하고 정답을 찾는 데 일가견이 있어요. 그렇지만 무언가 기획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별반 자신이 없어요.” 나는 두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는 “공부해서 남을 주어라.”는 조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법관의 덕목은 진실 추구.”라는 조인이었다.
1980년대 초에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에 고시에 합격한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 석동현은 윤석열의 대변인으로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굥석열은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체포의 ‘체’ 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총을 사용해서라도 국회의원을 빼내라.”는 게 굥석열의 명령이었다. 석동현은 여태까지 나의 부탁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그 좋은 머리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사용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면, 참 고맙겠다. 그렇게 변하는 게 부활의 진정한 정신이 아니겠는가?
김기현, 석동현, 박수영 등은 모두 부산동고 출신이다. 부산동고는 저항의 학교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변절하여 보수의 길을 걸었다. "변절"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변절의 동의어는 때로는 유연함일 수 있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정의롭지 못하면, 과감하게 등을 돌린 공자(孔子)를 생각해 보라. 최근에 박수영 의원이 부산 남구에서 고초를 겪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왜 김상욱 의원처럼 과감하게 내란수괴와 손절하지 않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세계관의 공감대가 없으면, 사제지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책상을 놓고 직접 가르치고 배웠다는 사실은 별반 의미가 없다. 스승과 제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의로운 뜻을 공유하는 분들이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테면 젊은 시절에 리영희 교수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그분을 나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직접 배우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서 그분을 나의 은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거론한 세 명의 엘리트는 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제자가 아니다.
교사로 일하는 나의 딸에게 부탁한다. 무조건 공부 잘 하는 학생을 좋아하지 말라고. 친구를 배려하고 이웃을 돕는 학생을 우대하라고. 공부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은 지금 현재 중요하지 않다고, 배움을 실천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시간 나는 대로 나의 뒤를 이어서 난중일기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해달라고. 그러면 오늘날에도 학생들은 이순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친구와 이웃을 널리 이롭게 하고, 바른 이치가 세상에 퍼질 수 있도록 심지를 굳건히 하라고.
“흔히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은 거북선의 계발, 지형지물을 이용한 탁월한 용병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풍전등화의 강토를 반드시 수호하리라는 당신의 마음가짐이었지요.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었으므로 장군은 당시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음해에도 불구하고 백의종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장군이 공명심을 탐하지 않고, 나라를 구하려고 작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명예는 봉사와 희생정신에서 나타납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在世理化)도 이와 관련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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