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4) 플라톤의 국가

필자 (匹子) 2024. 9. 5. 11:08

(앞에서 계속됩니다.)

 

21. 『국가』는 향락과 즐거움이 배제된 국가의 모델이다: 고대 사회의 계급, 계층, 바르나, 카스트 등으로 표현되는 수직구도의 인간관계가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면 (김유동: 168), 근대 사회에서 나타난, 경제적 소유에 바탕을 둔 수직적 지배 질서 구조는 인위적 사회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이른바 신에 의해 정해진, 계층적 수직 구조를 처음부터 당연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플라톤의 『국가』가 유토피아의 사상의 모범적 문헌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논거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문헌이 유토피아 사상을 담은 효시의 문헌으로 적당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플라톤의 국가의 상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이념적 범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어진 구체적 현실이라는 토대에서 도출해낸 국가의 상 내지 사회의 상이 아닙니다.

 

유토피아의 사회상 내지 사회 유토피아는 주어진 현실적 경험에서 파생된 상으로서 이후의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 그렇다고 반드시 실현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경험의 상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삶의 즐거움, 웃음, 사랑 그리고 음악과 예술을 철저하게 금기시하는 철인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플라톤이 군사주의 내지 인종주의의 특성을 부각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를 다스리는 철인이 얼마나 냉혹한 극기를 드러내는가? 하는 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22. 초시대적 범례로서의 국가의 상: 앞에서 필자는 플라톤의 『국가』가 두 가지 이유에서 최초의 문헌학적인 유토피아 모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하나는 철저한 계층적 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평등국가의 상이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시간과 장소를 고려하지 않는 초시대적인 모범적 범례로서의 상이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경우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이지요. 이는 플라톤이 국가의 집필 시에 아틀란티스에 관한 전설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포세이돈을 모시는 불경스러운 민족으로서 대서양 저편에 국가를 건설하여, 지중해의 이집트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가를 무력으로 집어삼켰습니다. 놀라운 것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위치하는 국가일 뿐 아니라, 동방의 페르시아 내지 소아시아의 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틀란티스는 당시에 존재했던 구체적인 특정 국가가 아니라,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외부의 가상적인 국가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아틀란티스의 상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도출해낸 경험적인 국가의 상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시대와 장소와는 무관한, 사변적으로 떠올린 가상적인 국가의 상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렇기에 플라톤의 이상 국가 역시 아테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3. 소피스트들의 이유 있는 반론: 플라톤은 국가의 모델과 관련하여 당시의 소피스트들을 신랄하게 공격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소피스트들은 주로 그리스인들의 위기가 자유의 부재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황금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등을 만끽하며 살았는데, 인간의 정치적인 제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소피스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위적 제도가 만들어진 다음에 자연법에 기초한 원래의 자유와 평등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소피스트의 추종자들은 현재의 사회 상태가 비참해진 까닭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이 자리하던 자연 상태가 인위적인 제도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노모스는 엘리스 출신의 히피아스에 의하면 처음부터 임의성과 오류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못하며, 새로운 기준에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한규: 26). 알키다마스Alkidamas, 뤼코프론Lykophron 등은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면서, 사회의 모든 인위적 제도를 철폐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Flasher: 52). 이들은 노예제도를 지극히 저주스러운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예 제도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사항을 하나의 법적 미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4. 소피스트들의 국가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 소피스트들은 철학사적으로 상당히 많은 비난을 감수했지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고를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컨대 국가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도시국가들 사이의 이기주의적이자 폐쇄적인 벽이 허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대신에 건설되어야 하는 것은 거대한, 범세계적인 노동의 공동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피스트들의 견해에 의하면 조국에 대한 사랑은 그 자체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정신을 편협하게 만들고 작은 도시 국가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든다고 합니다.

 

따라서 현재 주어진 도시국가들은 지옥의 하데스로부터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Rocker: 163). 이러한 사해동포주의적인 사고는 견유학파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가령 디오게네스는 국가의 체제가 궁극적으로 사물의 자연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국가를 세밀하게 구획하고, 계급 차이를 용인하는 처사는 견유학파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피스트 안티폰Antiphon은 “인간은 그리스인이든 야만인이든 간에 천부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지닌다.”고 설파했습니다. (Diel: 87B44 – 87B71).

 

25. 권위주의와 계층 질서를 고수하는 플라톤의 관료주의적 국가 모델: 플라톤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외부로부터의 도덕적 강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플라톤에 의하면 평등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천민과 야만인은 귀인 내지 문명인인 그리스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천민과 야만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플라톤에 의하면 엄격한 법과 권위주의 그리고 변함없이 제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적인 기관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고의 바탕 하에서 계층 사회로서의 국가의 모델이 탄생하였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모델은 신분 차이를 바탕으로 하여 수직 구도도 축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냉혹한 극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어떠한 축제도, 어떠한 예술적 화려함과 즐거운 유희도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플라톤 역시 소피스트들과 스토아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제도가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 자연이란 몇몇 엘리트를 지배자로 군림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피지배자로 살아가게 하는 무엇입니다. 마치 병든 사람이 –잘 살든 못 살든 간에- 병원의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하듯이, 모든 피지배자들은 지배자의 문 앞에서 어떤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26. 처음부터 신분과 계층 차이를 확정한 플라톤의 견해: 플라톤은 이른바 개별 인간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개인의 주권을 용인하지 않았으며, 지배계급의 주권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정치가』에도 언급되지만, 시민들에게는 통치술에 관한 지식이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손윤락: 110). 국가는 인민의 의지에 의해 이리저리 이끌릴 게 아니라, 확고한 체제 하에서 내적인 단일성을 표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국가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정책을 탁월하게 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신분과 계층을 처음부터 확정시키고, 이를 세습하게 만듭니다. 이상 국가의 지배자 내지 파수꾼 (군인)은 태어난 이후에 자신의 직분 내지 직업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지배하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이어받은 채 태어납니다. 이들은 훌륭한 가문, 좋은 체력 그리고 놀라운 정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차제에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5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