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W. H. 오든의 시, '미술 박물관 Musee des Beaux Arts'

필자 (匹子) 2024. 5. 1. 10:15

고통에 관해서 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과거의 거장들은 얼마나 인간의 태도를

잘 이해했던가, 어딘가에서 누군가 밥을 먹고 창문을 그냥 열어 제치거나 혹은 어디론가 어슬렁거리는 동안

어떤 듣지 못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곤 했음을.

혹은 과거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적의 탄생을 고대하는 동안에도 틀림없이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 하지 않은 채

나무 근처 얼어붙은 연못에서 썰매 타기에 골몰할 뿐.

과거의 거장들은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순교의 정도, 전율의 끔찍함이 발생하는 바로 그때

지저분한 구석에서는 개들이 개의 삶을 이어가고 고문하는 자의 말(馬)이

나무에다 죄 없는 엉덩이를 쓱쓱 비비고 있었다는 것을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그림을 보라.

모든 게 어떻게 자신의 걸음대로

유유자적하게 파국으로부터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는가? 농부는 아마도

물체가 바다 위로 떨어지는 소리, 혹은 버림받은 고함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중요한 사건은 결코 아니었다. 태양은 그냥

초록 빛 바닷물을 삼키는 하얀 피부의/ 다리를 비추고 있을 뿐. 또한 호화롭고

우아한 선박은 어쩌면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어느 젊은이, 그가 하늘에서 추락한 놀라운 사건을,

그러나 배는 떠나기 위해 서서히 돛을 띄우고 있을 뿐.” (서로박 역)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y on.

 

”Wystan H. Auden: Musée des Beaux Arts, in: ders., Collected Poems, London 1991, S. 179.

 

 

과거의 거장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세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과 일상 삶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식인과 소시민 사이의 거대한 위화감, 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눈먼 세상, 지금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소시민들은 이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카산드라 Kassandra는 도래할 파국을 알리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미의 발언은 외면당하거나, 구설수에 오를 뿐입니다.

 

1938년에 오든은 브뤼셀에서 브뢰헬의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림은 시인의 폐부를 찌르는 게 아닌가요? 왜냐하면 브뢰헬의 작품은 1555년의 현실을 묘사한 게 아니라, 시인이 처하고 있는 ‘지금 그리고 이곳’, 다시 말해 1938년 벨기에의 현실적 상황을 암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일 군인들이 벨기에를 점령하기 직전, 무고한 유대인을 체포하여 강제수용소로 끌고 가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모두 무감각합니다. 동시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 이카로스의 불행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태양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이카로스의 “하얀 피부의/ 다리”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우아한 선박, 즉 상선은 어디론가 유유히 떠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