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12)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필자 (匹子) 2024. 4. 11. 10:55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이조트 킬리안 (1924 - 1986)

 

여자: 킬리안은 브레히트의 마지막 여인이지요?

남자: 그미는 브레히트의 마지막 연인으로 살다가 떠났습니다. 1954년 무렵 브레히트는 예술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습니다. 당시 바이겔은 브레히트와 심하게 다툰 다음에 별거에 들어갔고, 베를라우는 술에 찌든 채 살고 있었지요. 킬리안은 1950년대 초에 베를린 앙상블에서 배우로서 그리고 조연출가로서 일했는데, 놀라운 열정이 브레히트를 감복시킨 게 분명합니다.

 

여자: 킬리안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네요. 자동차를 타고 갈 때 브레히트는 자신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고 그미에게 물었고 합니다. 이때 그미는 예행 연습 시에 크게 소리치는 행동 그리고 깨끗하지 못한 양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Ditte: 86).

남자: 재미있군요. 킬리안은 1924년 베를린 쾨페니크에서 출판사를 경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1933년 데모 당시에 아버지는 제국 군인들에게 붙잡힌 뒤 구타당했는데 7년 후에 후유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부모는 열혈 공산당 당원이었는데, 게슈타포의 추적을 피해 함부르크로 도주하였습니다.

 

여자: 킬리안은 브레히트를 만나기 전에 극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를 사귀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제자인 철학자, 볼프강 하리히와 결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니다.

남자: 그미는 배우 수업을 받으면서, 보르헤르트의 작품 「바보 요리크Narr Yorick」의 집필에 관여하였습니다. 에곤 몽크Egon Monk와 함께 “신선한 바람Frischer Wind”이라는 카바레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1952년에 킬리안은 에른스트 볼프강 하리히와 결혼하였습니다. 딸 카타리나를 출산하였으나. 1954년에 이혼했습니다.

 

여자: 브레히트의 마지막 사랑은 1953년부터 1956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 셈이로군요.

남자: 1982년에 발표된 킬리안의 회고록에서는 브레히트의 새로운 면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회고록에 의하면 여색을 밝히는, 냉혹한 이기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위의 지인들을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친구가 아플 때 브레히트는 무언가를 구해서 직접 갖다 주거나, 의사를 보내든가, 아니면 쪽지를 전해주며 친구의 쾌차를 빌었다고 합니다. (Kebir 1989: 8) 중요한 일이 산적해 있는데도 그는 킬리안의 두 딸을 성심껏 보살펴주었습니다.

여자: 20대의 브레히트와 50대의 브레히트는 같을 수는 없지요.

남자: 말년에 브레히트는 짧은 시를 완성하였으며, 자신을 몹시 책망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구동독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권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이따금 중국으로 망명하고 싶다고 술회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