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10)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필자 (匹子) 2024. 4. 8. 10:15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루트 베를라우 (1906 – 1974)

 

여자: 루트 베를라우의 성격은 혼란스럽고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남자: 네, 이러한 성격은 비극적인 가정사에 기인합니다. 코펜하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추측하건대 친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것 같습니다. (Kebir 2006: 35). 이로 인하여 베를라우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자살까지 시도했습니다.

여자: 그런데 젊은 시절의 성폭력에 관해서 자신의 회고록에서 침묵을 지켰어요. (붕에: 45).

 

남자: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했지요. 아빠에 대한 굴욕감, 수치심 그리고 가증스러움은 그미의 청춘을 망치게 하였고, 쓰라린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젊은 베를라우가 1920년대에 코펜하겐에서 방탕하게 살았으며, 덴마크에서 파리까지 무려 1.200 킬로를 자전거로 달린 것도 자신의 내적 상처를 극복하려는 발버둥으로 이해됩니다.

여자: 안타깝군요.

 

 

남자: 베를라우는 1933년에 모스크바에서 자칭 120%의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우연히 덴마크의 작은 섬에서 망명하던 브레히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사람은 브레히트라고 합니다.

여자: 이때부터 베를라우는 브레히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이별 없는 연인”이 되었군요.

남자: 브레히트가 1936년 에스파냐 내전에 참석하여 정치적 경험을 쌓으라고 권고했을 때, 베를라우는 이를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브레히트의 가족들이 스벤보르에 집을 얻었을 때, 베를라우는 근처의 여관에서 거주했지요. 브레히트는 언제나 베를라우가 머물던 여관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당시에 귀했던 커피, 과일 그리고 빵을 마련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Kebir 1989: 5).

 

여자: 베를라우는 브레히트의 또 다른 애인, 슈테핀과는 비교적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지요?

남자: 네, 슈테핀은 덴마크어로 집필된 베를라우의 소설 『바라보다Videre』를 독일어로 번역해주었습니다. 미국에 체류할 때도 루트는 브레히트의 집 가까이 살았습니다. 1944년 루트는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고, 아들의 이름을 미헬이라고 지었지요. 그러나 아기는 며칠 사이에 사망합니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그미는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으나. 브레히트는 남들이 알면 곤란하니 발설하지 말라고 강권했다고 합니다.

 

여자: 1948년 베를라우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브레히트는 마흔이 훌쩍 넘은 그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남자: 네, 동베를린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탁월한 극작가 주위에 즐비했습니다. 1951년 1월 4일 베를라우는 공개 석상에서 브레히트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습니다. 자신을 연인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여자: 베를라우의 집요하고도 허장성세의 성격은 한마디로 어떤 “경계선 인격 장애eine borderline Störung”로 요약될 수 있을까요?

남자: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자제력이 부족한 베를라우는 불안정한 인간관계 속에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가령 추운 겨울에 그미는 벌거벗은 몸으로 발코니 베란다에 서 있었지요.

 

여자: 베를라우는 털외투 하나만 걸치고 베를린 앙상블의 무대 위로 올랐다고 합다. 외투를 벗어젖히고 나체 차림으로 외쳤습니다. “나의 엉덩이가 헬레네의 것보다도 더 멋져.” 이는 타인에게는 흥미 넘치는 해프닝으로 비쳤지만, 사랑하는 임의 배신으로 인한 내적 고통에서 나온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남자: 네, 베를라우는 고독과 회한의 감정 때문에 거침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브레히트는 베를라우가 알코올 중독의 치료를 받도록 배려했으나, 본인은 병원 치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1974년, 브레히트가 사망한 지 18년 후에 루트 베를라우는 담뱃불로 인한 화재로 인하여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베를라우의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요. 내면을 갉아먹는 극도의 고통을 고려하면, 자살이냐, 사고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