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5. 몽니의 성격 구조: 몽니의 성격 구조는 다섯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공감 능력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그에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가짐이 자리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현재 어떠한 경제적 심리적 문제로 괴로워하는지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몽니의 인간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연민(憐愍)”의 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쳐다보지만, 그의 앞에는 자신의 사상 감정을 비춰볼 수 있는, 이른바 “성찰이라는 거울”이 놓여있지 않습니다. 둘째로 몽니의 인간은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일을 하나의 치욕이라고 여깁니다. 득히 상대방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때 그는 분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변명, 배신감, 울분 등은 몽니의 인간에게 첨부된 꼬리표입니다.
셋째로 몽니의 인간이 품고 있는 허영심과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그의 심리에는 한마디로 크고 작은 망상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대화와 소통이 없으므로 그의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소라고둥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망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가령 몽니의 전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입니다. 리어왕은 망상과 허영심으로 인하여 세 명의 딸들의 마음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아양 떠는 간교한 딸을 끌어안고, 무뚝뚝하지만 거짓 없이 아빠를 사랑하는 딸을 그냥 밀쳐버립니다. 망상과 허영심 그리고 자신만만함이 결국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촉발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속마음조차 간파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와 상응하여 리어왕의 나르시시즘은 수치심의 방어기제로서의 오만함을 발동시킵니다. 이러한 오만함은 결국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적개심 그리고 권위주의로 비화합니다. 작품 「리어왕」의 인간형에 관해서는 나의 책, 『에로스와 서양 문학』에서 자세히 논평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몽니의 인간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자신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잘 되면 자기의 능력이 탁월해서 잘 된 것이고, 못 되면 조상을 탓하는 인간의 전형이 바로 몽니의 인간이지요. 그래서 그에게는 겸손과 겸양이라는 “대인배”와 같은 자세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섯째로 몽니의 인간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미래를 내려다보면서 이성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대의를 중시할 겨를이 없습니다. 눈앞의 크고 작은 일은 스스로 행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태도는 모든 사소한 사항에도 시시콜콜 관여하는, 이른바 만기친람(万機親覧)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몽니의 인간은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하나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6. 몽니의 성격 구조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몽짜 부리는 태도 내지는 쇠고집은 성격상의 장애이지만, 심리적 질병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발하는 병적 성향 내지는 증후군이라고 규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니의 성격은 언제 어디서 형성되는 것일까요? 이는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을 정도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몽니는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어긋난 소통 내자는 소통의 차단에서 싹튼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 내지는 “심리적 애착 관계의 사람Bezugsperson”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회적 행동 양상을 습득합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부자연스럽거나 방해를 받게 되면, 어린아이는 어긋난 소통 내지는 소통의 차단이라는 비정상적인 행동 양상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몽니의 인간 가운데에는 특히 어린 시절에 응석받이로 자라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갓 태어난 아이의 두뇌는 “텅 빈 백지Tabula rasa”와 같습니다. 수많은 경험과 간접 경험들이 뇌에 입력되기 시작합니다. 태어난 직후의 24개월 동안의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기에 인지 행위 그리고 사회적으로 반응하는 행동 양상의 토대가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행동과 감정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아이는 통제 불능의 떼꾸러기가 됩니다. 대부분 응석받이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그의 심리는 타인에 의해 통제될 수 없는 외향적 일탈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반복하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심리가 내면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몽니의 인간은 어린 시절에 사회성을 키우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능력을 배우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1) 자기 제어의 능력 그리고 (2) 수치심을 인지하는 능력 그리고 (3) 자연스럽고 “민주적인 소통”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민주직인 소통”이란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조언 내지는 충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틀리다.”라고 판단되는 것을 적절히 거부할 줄 아는 심리적 반응을 가리킵니다.
7. 몽니의 유형: 그렇다면 몽니의 인간이 지닌 특징과 유형은 어떠할까요? 이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질문입니다.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문제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매우 주관적이니, 비판의 체로 여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자의 언급은 예외적으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분들에 대한 모독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몽니를 부리는 자들 가운데에는 대체로 높은 계급의 경찰과 군인들이 많습니다. 둘째로 주로 응석받이로 자라난 남자들 가운데 이러한 특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셋째로 SKY 대학교 출신들 가운데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SKY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하자라기보다는, 이들 가운데 소수가 품고 있는 자만심과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문제일 것입니다. 다섯째로 남을 호령하는 검사들 가운데 몽니의 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참고 사항에 불과합니다.
8.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따뜻한 분은 누구인가? 친애하는 J, 마지막으로 몽니의 인간과 반대되는, 따뜻한 심리 구조를 지닌 인간 유형에 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의 정서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일순간 나의 뇌리에는 C 목사가 떠오릅니다. 그분은 성공을 거둔 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실패한 자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대체로 기도 내지는 참선을 통해서 자신을 반성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 있습니다. 대부분 스님 또한 큰마음으로 중생들의 작은 괴로움을 어루만져주곤 합니다.
구체적 예를 들겠습니다. C 목사님은 언젠가 필자가 교원 채용 문제로 인한 갈등 때문에 고뇌하고 있을 때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결정 내리기 어려우면, 무엇이 학생과 교육에 가장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다른 사견(私見)을 떨치고 가장 바람직한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조언이 아닙니까?.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간에 우리는 하나의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이득과 이권을 먼저 고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들어와서 나에게 이득이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저 사람이 들어오면 내가 속한 기관과 사회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利)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의(義)를 중시하는 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요? 특히 아랫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도와주려는 마음가짐은 인간관계를 향상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테니까요.
따지고 보면 몽니의 인간은 어리석지만 불쌍한 영혼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의 굳어버린 심리가 -마치 봄날 얼음 녹듯이- 사르르 녹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치열한 자기반성만이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몽니의 심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분은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에게 성찰의 거울을 살며시 내밀 수 있을까요? 깨끗한 강물에 우리의 얼굴을 비추어보아야 할까요? 이러한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인간의 몽니를 바로잡을 수 있는 분은 어차피 사람입니다. 타인이 바로 우리의 거울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과 생각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습니다. “감어인(鑑於人)”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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