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니의 심리학: 친애하는 J, 오늘은 골치 아프고 답답한 정치 이야기 대신에 몽니에 관한 심리학적 사항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아집과 편협함의 사회 심리적 배경에 관한 사항입니다. 세심한 독자는 나의 글이 의외로 정치에 관한 은폐된 이야기임을 예리하게 간파할 것입니다. 몽니는 말 그대로 몽짜, 다시 말해서 아집과 독단적인 성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몽니의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고집부립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흔히 “꽉 막힌 인간”, “콘크리트 머리통”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크리스토프 하인은 「원탁의 기사Die Ritter der Tafelrunde」 (1989)에서 기사, “카이에”를 통해서 이러한 인물을 묘사했습니다. 누구도 카이에를 설득할 수도 없으며, 그와 심도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몽니의 인간은 처음부터 대화 자체가 아예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사람을 만날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합니다.
그렇다면 몽짜를 부리는 인간의 심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 한마디로 해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몽니의 이유는 특정 인간의 심층적 성격 구조 그리고 복잡하게 뒤틀린 현실적 정황과 결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항은 분명합니다. 즉 몽니의 인간은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언젠가 브레히트는 산문 작품, 「부상 입은 소크라테스Der verwundete Sokrates」에서 은근히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자라고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수치심과 자존감 때문에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차라리 할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 앞에서 고개 숙이고 잘못을 조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빌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견해는 모래성과 같다. 일단 하나의 특정한 견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과정을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서 크고 작은 지식을 축적해 나갑니다. 우리의 견해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마치 모래성과 같이 형성됩니다. 맨 처음의 견해는 유약한 토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내세우면서 사상과 감정을 달리 하는 사람에게 대응합니다. 현재 나의 견해는 비록 초라하지만, 내면의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마음속에서 서서히 자라난 무엇입니다. 외부의 비판이 강하면, “나”의 초라한 견해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뒤이어 보다 기초가 튼튼하고 강인한 견해가 형성됩니다. 우리의 견해는 다시 타인의 견해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곤 합니다.
이와는 달리 상대방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는 자신의 견해가 어째서 타당한지를 상대방에게 설득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체험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견해를 첨예하게 연마하되, 자신의 판단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사항 말입니다. 이게 바로 사고의 유연성 내지는 견해의 발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판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아프게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비판은 -적어도 우리의 심리를 상처입게 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성을 발전시키게 합니다.
3. 몽니의 인간은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감지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견해를 철회합니다. 잘못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 침묵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외면하든가 고개를 숙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몽니의 인간은 처음부터 타자 (내지는 타자의 주장)에 대항하여 하나의 튼튼한 심리적인 방어벽을 설치합니다.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이러한 방어벽을 “성격 갑옷Charakterpanzer”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외부의 자극은 충동적으로 성격의 매끈하고 딱딱한 표면에 부딪혀 튀어나오게 됩니다. 충동적 인간은 언제나 불평으로 일관하는데, 그의 심리 구조는 변덕스러우면서도 마치 뻣뻣이 털을 곤두세우며 갑피를 두르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성격 갑옷은 매우 해체하기 힘든 심리적 무장(武装)으로 이해됩니다. 흔히 “생트집” 그리고 “똥고집” 등이 이러한 심리적 무장에 해당하지요. 이러한 저항적인 방어벽은 몽니의 인간을 외부로부터 더욱더 차단하게 만듭니다.
물론 몽니의 인간이 대인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갈등은 사회생활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형의 인간은 가정에서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몽니의 인간은 한마디로 자기 합리화의 달인입니다. 자기 합리화는 거짓을 동반합니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몽니의 인간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나눌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그의 우정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특유의 나르시시즘이 우정을 가꾸게 하는 공감과 배려의 감정을 처음부터 차단하기도 합니다.
4. 몽짜 부리는 인간의 다섯 가지 특징: 우리 주위에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몽짜”를 부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몽니의 인간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나르시시즘은 내면에 유아독존의 심리적 방어막을 형성시키고, 연속적으로 비판을 거부하는 논리를 발전시키게 합니다. 그러니 친구, 혹은 옆 사람에게 특별하게 자문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몽니의 인간은 타인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스스로 공개적으로 사과할 줄 모릅니다. 직접 잘못한 게 없으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셋째로 몽니의 인간은 자신의 견해를 어떻게 해서든 타인에게 주입하려고 합니다. 그는 말이 많습니다. 굳이 귀 기울여서 타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몽니의 인간이 아집에 가득 차 있고, 명예욕에 충만해 있으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모두 그 때문입니다.
넷째로 몽니의 인간은 남에게 “감사하다.”하고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자신이 삶에서 커다란 이득을 취하거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를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탁월한 능력의 결과일 뿐이지, 절대로 남의 도움으로 이룩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몽니의 인간은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을 때 몹시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냅니다. 그는 작은 문제에 시시콜콜 관여하지만, 큰 문제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합니다. 언제나 눈앞의 당면한 문제에 골몰하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면서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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