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3) 전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필자 (匹子) 2023. 11. 18. 05:58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친미, 반미가 아니라, 협미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은 20세기 세계사를 고려할 때 수없이 피해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차제에는 중립 통일 국가를 이루고 극동 아시아에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나라로 발전되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이 견지했던 전략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분명하게 새기되, 무조건적 보복을 자제하는 전략이라고 판단됩니다.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세우고, 작은 문제는 관용과 포용성으로 정리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친미, 반미가 아니라, 협미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미국은 20세기 역사에서 한국에 도움도 주고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에 패전국인 일본 대신에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었다는 점, 전범국인 일본에 과거의 역사를 청산할 계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점,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보세요. 미국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으나, 518 광주사태의 학살자를 한국의 지도자로 인정하였으며, 북한의 핵 개발에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의 합리적인 판단과 현실성을 잃게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을 행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차제에 “반미”와 “친미”의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12.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접 국가의 의중을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한편으로는 명징한 역사의식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적과 동지를 희석할 정도의) 노회하고도 교활한 정책일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열강은 한반도를 신탁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열강은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선언 그리고 모스크바 삼상회의 등을 통해서 한반도의 국가를 용인하고, 이러한 국가가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갖출 때까지 잠정적으로 통치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때 김구는 신탁 통치를 반대하고 수미일관 반탁으로 일관하였습니다. 백범은 나라에 대한 우국충정으로 시종일관 외세가 다시 한반도에 개입하는 데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김규식은 처음에는 미국과 소련의 신탁 통치를 찬성했으나, 나중에는 반탁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이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누구의 태도가 타당했는가? 하는 물음에 관한 판단은 역사 연구가에게 돌리기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즉 한국은 국제 관계에 있어서 김구의 열광적 충정을 내적으로 견지하면서, 동시에 김규식의 냉정한 유연함을 활용해야 합니다.

 

13. 중요한 것은 냉정한 만남을 통해서 평화를 실천하는 일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100% 선한 친구도 없고, 100% 사악한 적도 없습니다. “적과의 동침”도 가능하고, 영원한 우방과 얼마든지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는 천사도 악마도 아니며, 천사와 악마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국가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 혹은 전적인 증오를 드러내지 말고, 그들을 부분적 신뢰를 보내고, 부분적으로 비판해 나가야 합니다. 미국은 이제는 한국에 통제 불능의 “가스라이팅”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고(故) 김정일도 언젠가 언급한 바 있듯이,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의 공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북한의 지도자가 이러한 말을 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며, 우리를 깊이 숙고하게 합니다. 북한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경제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중국 그리고 타이완 그리고 러시아와의 “냉정한 만남”과 “따뜻한 거리감”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일본을 향해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일부 비판하고, 올바른 정책에 대해서는 주어진 틀 내에서 배우고 답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을 차단하고 평화의 프로그램을 공고히 다져나가는 과업입니다.

 

14. 어리석은 자가 전쟁을 치른다: 두 가지 사항을 예로 들겠습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당한 독일의 장군입니다. 그는 처형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전쟁을 치른다.” 그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계기는 끔찍한 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 수많은 아녀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토로했습니다. 위대한 장군 슈타우펜베르크는 수천만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독재자 한 사람의 암살은 고결한 행위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는 위대한 분들입니다. 왜냐면 그분들은 수천의 한국인을 살리기 위해서 제각기 일본의 제국주의 정치가 한 사람을 암살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을 때 구동독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는 소련이 먼저 자진해서 군비축소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이때 동독과 소련의 언론은 그미의 입장을 연약하고 비겁한 태도라고 무차별적으로 비난했습니다.

 

15.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 인간이 서로 처절하게 살육하는 동안에 지구는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는 동안에 인류세의 위기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거리입니다. 생존을 도모하려는 태도가 어찌 연약하고 비겁할 수 있을까요? 핵무기 시대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요?

 

그러나 정치가들은 긴장 완화와 정책을 나약하고 비겁한 행동이라고 지레짐작해 왔습니다. 여론을 하나로 결집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보나파르트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갈등과 이권 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젊은 평론가, 황순식이 최근에 정태일 추모 포럼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긴장 완화와 평화가 국익과 일치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세계의 변방에 해당하는 한반도가 평화를 주도하고 협동과 공생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남북의 평화 통일이 인접 국가에 어떠한 위협도 안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교적으로 증명해내는 과업일 것입니다. 남북한의 중립적인 평화 통일은 명분과 실리에 있어서 차제에 세계 평화를 진척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일 수 있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결과 압박 대신에 신뢰 회복과 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생명 평화 운동가, 정성헌도 주장한 바 있듯이, 우리는 비무장 지대(DMZ)를 국제적인 평화 생명 특별 지역으로 제정하여 평화 산업 단지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