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은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기 전의 잡문입니다. 모두에 밝히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 나는 서양 문화에 대한 전체적 비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서양 문화의 일부에 해당하는, 이른바 변종으로서의 미국 문화일 뿐입니다. 둘째, 이 글의 제반 논리를 보완할 수 있는 여러 문헌을 생략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잡다한 지식을 나열하는 것보다, 책의 구절들 속에 담긴 주장 및 세계관이 더욱 중요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2.
서양의 학문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 방법론이 “명사주의(名辞主義)”적이고 “요소론(要素論)”에 입각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서양인들의 태도를 반증하는 것으로서, 시각적이고 해부학적인 접근을 가장 중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어진 모든 대상은 개념이나 숫자를 통해서 파악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서양 학문의 역사는 해부의 역사이자 분석의 역사였습니다. 중금속을 분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환원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대 자연과학의 일방통행은 해부와 분석의 특징을 단적으로 반증해 줍니다. 김지하가 “서양인들은 표피만 본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발언 속에는 “서양인들은 대체로 시각을 통해서 대상과 주체를 구분시키곤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3.
그리스 초창기의 철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근원이 물, 불, 에테르 등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컨대 데모크리토스Demokrit는 “모든 변화란 부분적인 것의 결합이나 분리다.”라고 설파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철학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다만 “시각적인 무엇”으로 고착시켜 파악하려 한 셈입니다. 그리스인들은 물질이나 신들을 다만 눈에 비치는 특성으로만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은 가장 강력한 신(神)을,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힘센 모습을 한 주피터로 설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물을 가시적으로 구분하고 “하나의 무엇”으로 파악하려던 그리스 사람들의 저의에는 권력과 금력을 갈구하려는 욕망이 은밀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나누어라 그리고 정복하라!Divide et impera”라는 전언을 생각해 보세요. 서양인들이 동양인들보다 소유 관념이 철저해진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심지어 부부간에도 베개에다 “그(He)”, “그녀(She)”를 써놓고, 자기 것을 챙기려는 까닭은 다음의 이유 때문입니다. 즉 서양 사람들은 자연, 신, 타인 등과의 구분된 존재로서의 주체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4.
시각적 요소론의 세계관은 –윤노빈도 『신생 철학』에서 지적한 바 있는데- 남성적이자 전투적인 인간형을 옹호합니다. 나아가 그것은 수직적인 사회 구조를 은밀하게 조장합니다. 자고로 “유럽Europa”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는 유럽인들이 언제나 남성적이고 수직적인 세계관을 떠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유럽”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페니키아의 딸로서, 황소로 변장한 제우스신에게 겁탈당합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크레타섬에서 은밀하게 미노스 왕을 낳게 됩니다. 여성에 대한 겁탈 행위야말로 한마디로 유럽 역사의 전투적 남성의 공격 성향을 상징합니다. 그리스인들의 삶의 법칙은 -가령 테리 이글턴에 의하면- 죽음보다도 삶을, 평화보다도 전쟁을, 질보다도 양을, 평등보다도 종속을, 통합 대신에 분리를 강조하게 했습니다.
자연은 특히 백인들에게 그저 무한한 유용성만을 제공하는 영원한 처녀지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점은 동양의 토속 신앙 및 불교의 전통과 정반대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서양인의 삶의 법칙이 바로 일회성(一回性)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미루어볼 때, 이른바 비극의 본질은 파악될 수 있습니다. 동양인은 죽어서 자연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고 대부분 믿어온 데 비해, 서양인들은 죽음을 언제나 삶의 끝으로 단정하곤 하였습니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논리는 현대 비극의 공식처럼 이어지게 됩니다. 즉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대한 도전 (그리스인들의 세계관), 욥 (Hiob)의 분노 (유대인들의 세계관), 유일신, 야훼에 대한 반항 (기독교인들의 세계관) 등은 제각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만, 끝내는 구원받는다는 논리를 생각해 보세요.
5.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수직적 관계 그리고 요소론적인 세계관은 기독교가 정착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대의 신관을 고찰하면, 다음의 사항이 발견됩니다. 즉 만물에 신의 속성이 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심지어는 허영의 신도, 음란의 신, 사티로스Satyros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도래한 다음, 고대의 “범지 체계Pansophie”는 붕괴되고 말았는데, 이 와중에서 유일신을 제외한 나머지 신들은 악마로 취급되었습니다.
칼뱅의 세계관에 의하면 삼라만상이란 인간이 활동하는 무대, 그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새, 물고기, 포도 그리고 밀 등은 존재가치보다도 이용가치 때문에 지상에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들을 그냥 이용하면 족했습니다. “어서 가서 자연을 활용하라.”는 칼뱅의 덕목의 배후에는 자연 정복이라는 요소론적이고 시각적인 세계관이 여전히 깔려 있었습니다. 바꾸어 말해 서구인들이 “신-> 남자-> 여자와 노예-> 자연”이라는 종속 구조를 고수해온 배후에는 바로 더 나은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6.
성을 억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는 개별 인간의 성을 억압함으로써 승화된 에너지로서의 노동력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죄guilty”란 기독교에 의하면 언제나 간음 행위와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범죄라는 잔악한 행위는 언제나 “바빌로니아의 창녀”에 비유되었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중세 기독교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에서 밝혀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마르틴 루터에 관해 배운 바 있지만, 농민 혁명의 종교인 토마스 뮌처에 관해서 아무것도 습득한 바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학살 사건 그리고 라스 카사스 Las Casas에 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까요? 이는 반공주의의 교육 탓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잔인무도한 사건을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의 교활한 의도에 기인합니다.
7.
16세기 초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배를 타고 도착한 에스파냐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에스파냐 사람들은 귀중품, 특히 금과 은을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인디언들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강제 노동에 시달립니다. 인디언들이 말을 듣지 않자, 총과 갈로 그들을 도륙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때로는 유화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죽음은 -프란츠 파농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에서 암시한 바 있듯이- 그 자체 “노동력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약 1세기에 걸쳐 목숨을 잃은 인디언의 수는 천오백만 내지는 이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2, 3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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