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박설호: (2) 전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필자 (匹子) 2023. 11. 18. 05:54

(앞에서 계속됩니다.)

 

6. 푸틴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시리아의 사악한 독재자 아사드 정권을 배후에서 지원해 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시리아의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처참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며, 지금도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외교는 인권, 평화, 호혜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국익을 위해서는 철천지원수와도 얼마든지 손을 잡을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철저한 국가 이기주의에 근거한 것이며,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한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2023년 1월을 기점으로 하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이 60% 이상 됩니다. 물론 이러한 수치에는 의심할 여지가 있지만, 많은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러시아 시스템의 내부에서의 변화는 거의 출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환기의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차제에 어떤 바람직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을 확보해야 할까요?

 

7. 독일의 재무장에 대한 인접 국가들의 태도: 놀라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NATO 국가들은 여기서 두 번씩이나 세계대전을 치른 국가인 독일의 군사적 재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난했습니다. 이는 그 자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약 동북아에서 전쟁 상태가 발발할 때, 한국은 당연히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욱일기와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해 왔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리영희 교수의 문헌에서 빈번히 언급된 바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은 한마디로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왜구가 끊임없이 한반도를 침탈해 왔을 뿐 아니라, 현재 일본 정부도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없이 군사 재무장을 추진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서독이 20세기 중엽의 시기에 적극적 자세로 과거청산과 피해 보상을 실천한 데 비해, 일본은 이러한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독일의 인접 국가들은 지금도 독일이 더 많은 국방비 예산을 확보하더라도 이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습니다. 독일이 제이차세계대전 이후에 유대인 및 인접한 국가에 대한 피해 보상과 과거청산을 충분한 범위로 해결했으며, 인접 국가에 대한 독일의 침공 가능성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8. 독일과 일본 그리고 원폭 사건: 전범국인 일본은 전쟁 직후에 미 군정으로부터 어떠한 피해 보상과 과거청산을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이 분단되어야 하는데, 피해의 땅인 한반도가 분단되는 식으로 한국인들은 재차 피해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 폭탄 투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전쟁 직전에 진주만 폭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만약 원자 폭탄이 투하되지 않았으면, 세계대전은 1945년에 종결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원자 폭탄의 피해는 그야말로 끔찍했으며, 일본 스스로 엄청난 피해를 공공연하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이러한 처참한 피해로 인하여 일본은 공교롭게도 이웃 국가인 한국과 중국 침략에 대한 엄청난 죄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세계대전에 대한 죄의식과 참회는 원폭 피해로 인해 희석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 독일인이 제이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다른 민족에 대한 핍박에 죄의식을 품었던 반면에, 일본인들은 지금도 한반도와 중국의 강제 점령에 대해 둔감한 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원자 폭탄 투하로 인해서 전쟁 범죄보다도 스스로 더 끔찍하게 피해당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치가들이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원폭의 피해를 감내했다는 사실입니다.

 

9. 일본에 대한 미국의 우호적인 정책: 실제로 일본과 미국 사이의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협정에는 누가 전범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많은 구체적 사항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 미 군정이 확보한 동북아의 지도에는 독도가 분명히 한국 고유의 땅으로 되어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협정을 통해서 이러한 조항은 삭제되었습니다. 한국 종군 위안부에 관한 사항 역시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는 엄청난 파장을 불어왔으며, 미국이 전쟁 범죄를 일본에 따지는 과업을 소홀히 하게 했습니다.

물론 당시 소련과 미국 사이의 냉전 체제가 일본의 과거청산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정황 속에서 일본은 과거청산은커녕 한반도 국가와 여러 인접한 나라에 어떠한 피해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오히려 625사변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커다란 이득을 얻어 선진국으로 진입했습니다. 미국이 일본과 매우 끈끈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사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이미 제기된 바 있습니다. 니컬러스 J. 스파이크먼은 『미국의 세계 정치 전략』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차제에 적국인 일본과 우호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Nicholas J. Spykman: America’s Strategy in Word Politics New York 1942). 요약하건대 미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는 반면에, 한국의 그것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분됩니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는 게 중요했고,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소홀하게 대처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군정은 한국과 일본의 과거청산의 과업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였으며, 지금도 일본과 한국 사이의 조건 없는 화해를 강요하는 실정입니다.

 

10. 일본의 역사 왜곡: 원자 폭탄의 피해는 역사와는 무관하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후 일본의 잘못이라든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일본 정부의 역사 감추기 내지 역사 왜곡은 도를 넘을 정도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가령 일본 사람들은 중국 난징의 대학살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일제의 만행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그들은 국내에서 이러한 사건을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난징을 점령한 뒤에 대학살극을 벌였습니다. 이때 6주 동안에 30만 명이 살해당했는데, 이들은 무장 해제한 군인, 선량한 시민, 아이들 그리고 강간당한 여자들이었습니다.

 

대다수 일본인은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사실이 아니라고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령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 이민진의 드라마 "파친코"의 내용이 사실과 무관하다고 항변합니다. 일본의 역사학계 역시 제이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행위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두둔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익의 역사학자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 일본의 영혼"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낙후한 국가를 문명화시키는 진보적 의지"라고 공언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국의 식민지 쟁탈을 작위적으로 미화하는 일본 역사가는 많습니다. 이들은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국수주의의 청맹과니나 다를 바 없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