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서로박: (3) 라이히 금지된 유희와 허용된 굴레

필자 (匹子) 2023. 6. 2. 11:21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혹은 인성 교육의 함정: 라이히가 서술한 여섯 가지 유형 가운데 어떠한 유형이 가장 위험한 자들일까요? 이에 대한 판단은 당신에게 유보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억눌린 분노가 언젠가는 반드시 밖으로 표출된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중고등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언급하면서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을 칭찬하곤 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놀랍게도 이른바 불량학생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온순한 학생들입니다.

 

기실 학생들 가운데 크든 작든 간에 분노를 표출하는 학생이 있는데, 이는 그다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교 내의 문제아는 오히려 의외로 끔찍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짖는 개는 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학생은 모든 것을 참고, 자신의 분노를 내적으로 은폐시키면서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는 자입니다. (Ferenczi 2004: 68f.) 이들은 나중에 성년이 되어서 기상천외한 살인극을 저지릅니다. 그렇기에 불안 심리와 강박 장애 등은 일견 무해한 것 같지만, 나중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합니다. 어쨌든 한 인간이 건강을 견지하려면, 이미 언급했듯이 자신의 심리, 육체적 반응 그리고 쾌감과 불쾌감의 인지 행위를 유기적 일원성으로 작동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16. 암의 연구: 다시 라이히의 삶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이히는 인간의 현존재의 근원으로서 사랑, 노동 그리고 지식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인간의 심리와 연결되고, 노동은 인간의 육체와 결부되며, 지식은 뇌의 인지 행위와 관련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라이히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련성에 관한 성찰입니다. 라이히는 19398월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병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구명하기 위하여 라이히는 수 개월간 암 ()을 연구합니다.

 

여기서 라이히는 심신의 상태가 기능적으로 밀접하게 상호 관련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유기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은 학문 이전의 상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이히가 암의 연구를 통해서 이를 입증하려고 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조직체 내에는 “PA-비온그리고 “PA-바질렌이라고 조직체가 있는데, 이들에 의해서 세포가 싸우면서 암세포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라이히는 병든 세포와 건강한 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에너지의 영역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생 에너지의 개념은 나중에 라이히에 의해서 보다 광의적인 개념인 오르곤 에너지로 발전됩니다.

 

17. 오르곤 에너지: 오르곤이란 조직체Organism그리고 오르가슴Orgasm의 합성 조어입니다. 대기 만물에 기가 흐르듯이, 남자와 여자의 성적 교합 시에 어떤 가 흐릅니다. 나아가 세포와 세포 사이에도 생명을 연결시켜주는 가 흐른다는 것이 라이히의 지론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흐름의 에너지를 라이히는 오르곤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독일의 의사 파라켈수스Paracelsus불카누스vulcanus라고 명명되는 대-우주의 에너지가 소-우주에 해당하는 인간의 신체 내에서 아르케우스archäus라는 에너지로 병렬적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블로흐: 1412). 라이히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로 세상 바깥의 근원적인 에너지가 인간의 신체 내의 에너지와 어떤 상호 관련성 속에서 함께 생동한다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라이히는 오르곤을 연구하는 곳, 다시 말해 메인에 있는 자신의 실험실, 수술실 그리고 관찰 실 모두를 통칭하여 오르고논Orgon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우연히 라이히는 바다 속의 모래를 보관해둔 어두운 지하실 벽에 묻어 있는 하늘 빛의 광채를 발견합니다. 뒤이어 이것이 착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여러 금속 재료로써 하나의 축적기를 만듭니다. 단순한 기구를 통해서 얻어낸 이러한 인지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것인가? 라이히는 옛날에 괴테가 그러했던 것처럼 두 눈으로 우주를 관찰하기 위하여 집요할 정도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는 망원경으로 별들이 없는 어두운 하늘에 비치는 빛들을 바라보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즉 우주의 에너지를 자신이 만든 축적기에 담았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라이히의 이러한 주장을 진리는커녕 하나의 가설로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성 원리를 주장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역시 라이히의 이론을 외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독일 동화에 나오는 별에서 떨어지는 돈을 주어 담는 소녀에 빗대어 라이히를 조롱하곤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라이히의 절친한 친구들조차도 이 시기의 오르곤 이론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18. 라이히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다: 1951년에 이미 외계인으로 취급당하던 라이히는 1 밀리그램의 라듐을 오르곤 축적기에 넣고 실험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생명을 파괴하는 핵에너지를 무제한의 오르곤 에너지로 중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정말로 끔찍한 실험이었습니다. 계기바늘이 심하게 떨렸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뛰는 쇼크를 받습니다. 실험은 즉시 중단되었습니다. 라이히는 이러한 끔찍한 반응을 -오르곤 방사선 DOR”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오르곤 에너지가 건강을 보존해주는 에너지라면, DOR는 질병을 유발시키는 해로운 에너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라이히는 생명체를 위협하는 “DOR 구름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DOR 구름을 없애기 위해서 길다란 관을 만들어, 분수와 연결시킨 도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인접 지역에 살고 있는 농부들의 동의를 얻어서 만들어낸 도구는 다름 아니라 구름 분쇄기였습니다. 이 기구는 실제 실험을 통하여 비를 내리게 하였으며, 그곳 지방 신문에 열광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라이히의 실험 욕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비행접시 UFO”에 대해 아주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마이런 샤라프가 말한 대로 이 시기에 오십대의 과학자는 아주 깊은 객관적 사고를 개진하였으며, 극단적으로 광적인 이념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19. 분서갱유, 구금 그리고 죽음: 1950년대 초부터 라이히는 음란 실험의 혐의를 받게 되었으며, 오르곤 연구소는 미국의 식약청 (일종의 보건복지부)으로부터 감찰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오르곤 축적기의 사용은 즉시 금지되었고, 그 기계는 파괴되었습니다. 라이히의 책들은 이른바 불온하다는 이유로 모조리 수거되어 불태워졌습니다. 당국의 이러한 횡포를 라이히는 무지한 권력의 몰지각한 처사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국의 횡포에 대해 무기력한 학자일 뿐이었습니다. 라이히는 이후에 극도의 절망감, 피해망상 등으로 인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립니다. 결국 라이히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스스로를 감옥에 갇히게 하였습니다.

 

20세기 초에 시대를 앞서서 고군분투하던 지식인의 삶은 참으로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마치 세계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던 파우스트의 행위는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묘혈을 파는 행위로 판명되었고, 더 나은 창의적인 노동을 실천하려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헌신적인 노력은 자신의 몸을 영어 (囹圄)의 상태에 빠지게 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Glucksmann: 14). 라이히의 역정도 그러했습니다. 라이히는 1957113일 미국의 루이스 감옥에서 사망합니다. 죽기 전에 라이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인류를 위하여 우주를 가득 채운 에너지를 발견하면서, 잘못 행동하고 말았다. 이 에너지는 모든 삶의 과정과 우주의 법칙적 기능들을 스스로 다루고 있지 않는가? 또한 그것은 인간 동물의 정서와 방향을 규정하고 있다. 평생동안 나는 수천 년 전부터 다만 신이라고 명명되는 자연의 기본적 힘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끝내 잘못 처신했다.”

 

20. 발견되지 않은 진리의 파편: 무릇 지금까지 알려진 학문적 내용을 모아서 정리하는 작업은 비교적 수월하고 위험성이 적습니다. 이에 비하면 라이히의 작업은 새로운 난제를 누구보다도 먼저 학문적 객관성으로 밝혀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라이히의 이론은 (마치 다이아몬드와 흙이 뒤섞인 토양처럼) 새로운 진실이 어처구니없는 가설 속에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그의 말기 이론에서 드러나는 취약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 디디는 암스트롱은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실족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진정한 학자라면 잘 알려진 진부한 진리의 반복보다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리의 파편을 선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파편은 차제에 행해질 급진적 연구에 유익한 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라이히의 저술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