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2) 바슐라르의 학문적 정신의 형성

필자 (匹子) 2023. 3. 9. 21:31

바슐라르는 학문적 현상들을 하나의 담론을 도출해내는 연결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현상들이 다른 것들과 어떠한 차이를 드러내며, 어떠한 공통적이고 이질적인 영역을 형성하는가 하는 물음에 따라 정의내려질 수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학문적 사고가 수학과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1940년에 간행한 『부정의 철학La Philosophie dy non』에서 그는 아인슈타인 이후의 계몽된 지식을 이른바 변증법적인 합리주의로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바슐라르의 문헌은 특히 미셸 푸코의 담론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1969) 그리고 『사물의 질서Les mots et les choses』(1966)는 바슐라르의 문헌이 얼마나 푸코의 사고에 기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미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의 이론이라든가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과 언어 철학 역시 바슐라르의 기본적 사고 방법론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슐라르의 이론적 논거에서 “정신분석”이라는 표현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는 느낌을 풍깁니다. 왜나면 학문 이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주관적 심리적 성향은 바슐라르에 의하면 객관적 타당성에 대한 하나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문학예술의 영역에서는 정신분석의 방법론에 대해 예외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말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슐라르가 말하는 정신분석이 어떠한 경우든 간에 프로이트가 추적하는 정신분석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내적 충동이 조절된 승화 과정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예술적 역동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로 욕망이 성취되는 게 아니라, 승화(Sublimation) 작용에 의해서 대치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승화 이론은 바슐라르의 견해에 의하면 예술과 예술가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술가가 활용하는 부호와 언어는 그 자체 꿈꾸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술 작품은 사물 속에 도사린 어떤 갈망을 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주관적 관점을 넘어 사물의 원형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바슐라르의 정신분석은 오히려 카를 구스타프 융C. G. Jung의 원형 이론에 친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과 문학이 추적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바슐라르는 문학 이론의 영역에서 하나의 근원적인 주관적인 상을 추적하여 그곳에서 어떤 심리적인 공간을 찾아냅니다. 그곳은 사고 대신에 몽상이, 이론적 논거 대신에 포에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학문 이론의 문헌에서 주관적 판단과 그 가치는 객관적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바슐라르는 예술 작품과 문학을 구명하면서 놀랍게도 시적인 에너지를 강조합니다. 이로써 나타나는 것은 문학의 독특한 메아리에 해당하는 하나의 반향의 이론입니다. 문학 작품에 시적으로 떠올린 상들은 독자에게 자신의 내적 경험을 반추하게 하도록 작용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이 느끼는 새로운 체험을 가리킵니다.

 

가령 『불의 정신분석La psychoanalyse du feu』(1938)에서 바슐라르는 불의 모티프와 결착된, 이른바 광기의 콤플렉스를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광기의 증상은 노발리스 그리고 E.T.A. 호프만의 일련의 작품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1957년에 발표된『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에서 바슐라르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예를 들면서, 폐쇄적인 공간의 상 (집, 실루엣, 새둥지, 조개 등)에서 느껴지는 주관적 경험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분석을 통해서 바슐라르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드러난 상이 과연 어떠한 일원적인 형체를 보여주는가? “우리의 내적 삶의 공간”이 어떠한 본질적 유형을 드러내고 있는가? 에 대한 대답입니다.

 

예술 작품은 바슐라르에 의하면 어떤 다양하고도 아무런 관련성 없는 순간적인 상을 구현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안으로 파고드는 학문적 정신의 구심력과는 반대로 외부로 향해서 분산되는 원심력에 입각해 있습니다. 예술적인 상은 어쩌면 어떠한 지식 내지는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엇이며, 사고 이전에, 은유 이전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은 바슐라르에 의하면 개로 다른 상들과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뿐입니다.

 

바슐라르의 문헌은 프랑스 정신사에서 엄밀한 학문 그리고 문학예술 사이의 가교를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장 이볼라이트 (Jean Hyppolite, 1907 – 1968)는 바슐라르가 평생에 걸쳐서 “지성의 낭만주의”를 추적했다고 논평한 바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한편으로는 철학적 인식론을 철저히 구명하려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예술의 상상력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철학과 문학의 교사라고 말하기도 하고, 독서광 내지는 간서치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바슐라르의 삶 그리고 학문이 얼마나 유형하고도 집요한가? 하는 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