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B. 오늘은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1884 – 1962)의 문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책은『학문적 정신의 형성. 객관적 인식에 대한 어떤 정신분석을 위한 논고 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 Contribution à une psychoanalyse de la connaissance objective』입니다. 이 책은 1938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바슐라르의 연구는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객관적 인식이론을 가리키는데, 바술라르는 특히 현대 물리학에서 언급되는 양자 역학의 비결정성에 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의 연구 방법론은 형식적 측면에서 구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로써 구조주의가 프랑스의 학문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슐라르가 문학의 영역에서 유연하게 예술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바슐라르의 예술적 논거에는 자유분방한 역동성 내지는 기본적 4원소에 대한 관심사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려는 문헌 역시 바슐라르의 이러한 두 가지 사로 구분되는 학문과 예술의 이론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철학적 관점에 근거한 인식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적 의향으로 집필한 문학 이론의 현상학을 특징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위해서 바슐라르는 두 가지의 광의적 카테고리를 설정합니다. 계산 그리고 상상력, 수학 그리고 포에지, 연역적 사고 그리고 직관적 관찰 증이 바로 그러한 카테고리에 해당합니다. 바슐라르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객관적 학문의 인식이 주관적 문학적 경험과 동시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슐라르는 두 가지 사항 가운데 어느 한 군데에 경도하지 않은 채 이러한 만남 자체를 자신의 사상적 모티프로 설정하는 셈입니다.
“학문적 정신의 형성”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 바슐라르의 사고가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바슐라르는 객관적 지식을 찾으려는 행위를 사물의 정신을 분석해내려는 행위와 접목하려고 시도합니다. 가령 그는 어떤 연구 대상을 학문적 기술적 전략 그리고 문학 심리학적 인식의 틀 속에 담아서, 두 가지 사항을 서로 부딪치고 충돌시키게 합니다. 이 작업을 추구하기 전에 바슐라르는 자신의 연구를 위한 대상을 일차적으로 발견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바슐라르의 관심은 과거의 역사에 나타난 수많은 학문적 가설을 모아둔 보물 창고로 향합니다. 이러한 보물 창고에는 학문적 난해성 그리고 이론적 논거에 담겨 있는 오류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학문의 역사에 출현한 수많은 시도를 다시 소환해내어, 거기서 객관적 인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내용을 하나씩 걸러내려고 의도합니다. 진리와 아름다움, 다시 말해서 객관적 인식 그리고 예술적 가치는 이러한 선별 작업을 통해서 그 옥석(玉石)을 가려내어야 한다는 게 바슐라르의 지론입니다. 주관적 감각에 의한 인식은 바슐라르에 의하면 처음에는 객관적 학문적 인식과 엄청나게 괴리되어 있습니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괴리감을 찾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사상적 모티프를 도출해내려 합니다.
가령 우리는 어떤 학문적 대상에서 어떤 특징적인 구상을 찾아내려 할 때 가시적으로 수용된 주관적인 상을 비판적으로 발견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상투적으로 굳어져 있는 편견을 해체하고 선입견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편견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경솔하게 객관적 진리로서 수용한 인식 내지는 인습적으로 받아들인 “선입견préjudice”과 관련됩니다. 여기서 선입견은 “미리 정해진 판단Vor-Urteil”을 가리킵니다.
바슐라르는 가령 연금술과 같은 학문적 현상을 다룰 때 정신분석의 심리적 해명이라는 틀을 일차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학문적 사고는 이러한 심리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비-학문적인 특성을 완전히 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연구 대상은 정신분석에 의한 심리적 해명의 과정을 거치면, 다양한 주관적 성향들은 분명한 모습으로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여기서 연구 대상의 특징은 일차적으로 어떤 순수한 감각론, 실체 이론 그리고 정령 신앙 등에서 발견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체 이론 그리고 정령 신앙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실체 이론이란 실체가 어떤 특수한 (도덕적인) 가치들과 뒤섞여 있는 사고를 가리키며, 정령 신앙은 생명 그리고 생명력을 담고 있는 물신주의와 혼합된 사고를 가리킵니다. 바슐라르는 어떤 학문적 객관성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감각, 뒤섞인 실체 그리고 이질적인 요소를 지닌 정령의 사고에서 어떤 이질적인 부분을 추출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바슐라르는 언어 그리고 실증주의의 사고 속에 이미 여러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언어는 은유라는가 유추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묘하게도 때에 따라서는 어떤 학문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결론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나아가 실증주의의 사고는 바슐라르의 견해에 의하면 학문 현상을 있는 그대로 고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용 가치를 위한 관심사 lucratif”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객관적 학문의 결론을 엄정하게 도출해내기 위해서 바슐라르는 언어의 특성 그리고 실증주의의 의향 등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객관적 인식”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모든 주관성을 제거해야 하고, 편견으로 내려오는 통상적 가치를 떨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담론 가능한 추상적이고 역동적인 사고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바슐라르는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전 학문의 역사에 도사린 “구성적인 오류”의 단계를 비판적 관점에서 밝혀내는 작업입니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의 학문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나간 학문 속에는 인식 이론적인 빈틈이 자리하는데, 이는 정확한 규정, 세부적 사항의 구분 그리고 오류의 수정 작업을 통해서 메꾸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식과 참신한 이론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시금 정립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에서 잘못 형성된 과거의 그럴듯한 오류들을 다시 한번 비판적 관점으로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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