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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4) B. 트라벤의 망각된 독일문학

필자 (匹子) 2022. 12. 30. 10:59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한 인간은 굶주린 위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는 자신 소유의 노예가 된다.” (B. 트라벤)

 

1914년에서 1920년 사이의 방랑자, 부랑인, 집시, 이주자 - 이들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로서, 트라벤 초기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들은 어느 계급,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으나, 실제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도 한 곳에 머무를 수도 없다. 하찮은 직업은 그들을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방랑자는 일견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으나, 어떻게 해서든지 가난을 극복해야 한다. 방랑에 대한 대가는 한마디로 말해 고독이며, 고향의 상실이다. 트라벤은 부랑인들의 자유로운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으나, 다른 한편 그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백인 실업자, 돕스 Dobbs, 커틴 Curtin 그리고 하워드 Howard는 소설 속에서 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돕스와 커틴은 석유 채굴 공장에 취직하여 푼돈을 벌다가 하워드를 만난다. 미국의 대도시 출신의 돕스는 구걸 생활을 전전하다가, 게를 잡으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게 잡는 일은 마음의 평온을 요구하였다. 커틴 역시 자신의 아내를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에 버려두고 멕시코로 왔다. 이들 가운데 하워드는 가장 나이가 많고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세 사람은 금을 수집할 수 있는 허가를 당국으로부터 얻지 못했기 때문에 행여나 노획물을 몰수당할까 두려워한다. 따라서 그들이 택하는 길은 한적한 도로 내지는 으슥한 구역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노획물을 강탈하려는 강도들로 이글거리고 있다. 하워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자 다니는 게 최고지. 그러나 고독을 감내해야 해. 두세 명 돌아다니면 살인자를 만나지. 그러나 열두 명이 돌아다니면, 혼자만 못해. 싸움과 살인이 그치지 않으니까. 아무 금도 없으면 동료애가 넘치지만, 수확물이 많아지면, 형제애는 방종으로 돌변하거든.” (S. 47) 그러니까 삼인 공동체는 금 모으기라는 한 가지 관심사에 의해 결성된 것이다. 누군가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삼인 공동체는 쉽사리 해체될 것이다. 우정, 의리 그리고 동정심 등은 조금도 선택 기준이 되지 못한다.

 

세 사람은 제각기 고유한 목표 내지는 이득만을 염두에 둔다. 가령 돕스는 금을 모아서, 나중에 탐피코에서 영화관을 세우려고 하고, 커틴은 나중에 아내와 행복하게 살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하워드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는 금을 찾는다는 게 헛되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워드는 처음에는 금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한다. (S. 135). 그러나 백인들과는 달리 인디언들은 금이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립되고 위협적인 생활 속에서도 적 敵은 팀 내부에도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서로는 서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생명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워드가 없는 틈을 돕스는 커틴을 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심하게 부상당한 커틴을 죽었다고 착각하면서, 세 사람 몫의 사금을 지닌 채 도주한다. 이때 돕스는 노상 강도떼를 만난다. 그들은 돕스를 살해하고 나귀와 신발을 가로챈다. 나귀 등에 실려 있던 사금을 어리석게도 모래라고 착각하고 바람속에 훌훌 털어버린다. 나중에 커틴과 하워드가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두 사람은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트라벤은 하워드와 커틴의 인물을 통해서 공동체의 삶, 평화 그리고 무욕 無慾 등을 거론하고 있다. 하워드는 (비록 얄팍하지만, 어느 정도 효험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의술로 인하여 인디언들에게 박사로 영접받는다. 이때 하워드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말하자면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삶에서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하워드는 깨닫게 된 것이다. 커틴은 탐피코에서 식품 판매상으로 일한다. 하워드가 의사로서 인디언들과 공동생활을 영위한다면, 커틴은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소설의 모토는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무언가 찾기 위한 힘든 여행이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는 생각

그게 진정한 보물이다. 그걸 찾기엔

너의 삶은 너무 짧게 느껴지리니

네가 생각하는 번쩍이는 보물은

전혀 다른 측면에 놓여 있으니까.” (S. 5)

 

인용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독자에게 전한다. 첫째로 “번쩍이는 보물”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보물”, 즉 삶, 평화 그리고 행복 등이다. ‘너’는 “번쩍이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돌아다니나, 결국 그러한 행적은 무가치할 뿐이다. 둘째로 소유욕은 -마치 소년이 다가가려는 무지개처럼- 한 번도 성취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은 소유물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금은 트라벤에게는 추악한 사업의 대상일 뿐이다. “아름답고 고귀한 숙녀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금, 혹은 왕관으로서 머리에 덮인 금은 대체로 사회에서 흔히 있어 왔다. 금은 비눗물보다 더 자주 피에 목욕했으니까. 어떤 경우라도 꽃으로 장식된 왕관,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은 더 고귀한 유래를 지닐 것이다.” (S. 76).

 

만일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이 금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여성일까? 이에 관해 소설은 다만 암시만을 던질 뿐이다. 돕스는 자신의 누이의 결혼 생활을 언급하며, 여성에 대해 조금도 호감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하워드는 나이 때문에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해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오직 커틴만이 어느 여자와 결혼했으나, 신부는 텍사스에서 살고 있다.

 

실제로 여성들은 트라벤의 초기 소설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다. 기껏해야 그들은 창녀로 묘사될 뿐이다. 몇몇 비평가의 주장에 의하면 트라벤은 매춘을 찬양하는 등, 자유로운 성 모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즉 매춘의 경우 위생적 조건이 문제가 될 뿐, 인간 품위의 손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춘이 용납되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은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트라벤 문학의 주제를 논할 때 빗나간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을 찾는 세 사람은 여성과의 깊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 비참한 경제 상황, 방랑 생활 등은 그들에게 한 여자와의 사랑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회가 오더라도 (마치 커틴이 그러하듯이) 여성을 떠나야 한다. 따라서 상기한 물음은 그들에게 그저 사치스러운 질문일 뿐이다. 왜냐하면 세 사람은 사회라는 원의 가장자리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주인이 아니라, 고작해야 “남의 삶에 세 들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