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박설호: (3) B. 트라벤의 망각된 독일문학

필자 (匹子) 2022. 12. 28. 10:04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정글속의 다리」

 

“다만 이단자만이 이단자를 깨달을 뿐입니다. 다만 이단자만이 이단을 전파할 수 있고,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을 테니까요.” (B. 트라벤)

 

“이단자만이 이단자를 깨달을 수 있다”는 발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유럽인들은 스스로 유럽을 떠나 살아가지 않는 한, 백인들의 자유와 평등이 그리고 경제적 풍요로움이 제 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영위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유럽인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다만 손님으로서만 맞아들이는 한, 그들은 자기 우월 의식을 저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문화속의 맹점 盲點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멕시코에 도착 직후 트라벤이 쓴 중편 소설이 바로 「정글속의 다리」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작가는 새로운 낯선 인디언 문화로 향해 잠입한다. 「정글속의 다리」의 주인공 제랄드 게일 Gerald Gale은 미국 출신의 악어 사냥꾼이다. 그는 인디언 마을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은 거의 절망적으로 6세의 인디언 소년 카를로스를 찾고 있었다. 나중에 인디언들은 죽은 채 강 하류에 파묻혀 있는 카를로스를 발견한다. 강은 인디언 마을과 작은 양수장 사이를 가르고 있다. 그러니까 강물은 양수장으로부터 20마일 떨어진 석유 채굴 회사로 기차를 통해 운반되고 있다. 이곳에는 인디언의 마을 공동체가, 저곳에는 석유를 캐려는 백인들이 모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장소를 인종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인디언 마을에는 슬라이Sleigh라는 백인이 인디언 여자와 함께 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두 개의 문화권을 연결시키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카를로스는 마을 공동체에 완전히 동화된 채 살아가는 6살의 인디언 소년이다. 그에게는 가족도 풍부한 식량도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카를로스는 미국의 텍사스에 있는 정유 회사에서 일하는 이복 형, 마누엘을 몹시 부러워한다. 그는 평소에 맨발로 생활하기 때문에, 굳이 신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느날 카를로스는 형으로부터 미국산 부츠를 선물로 얻게 된다. 그러나 부츠는 카를로스에게 끔찍한 재앙을 안겨준다. 부츠를 신고 걸어본 적이 없는 카를로스는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강물에 빠진다 (S. 245). 다리에는 난간이 설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머리는 강으로 떨어져 끝내 익사한다.

 

나무다리를 만든 쪽은 석유회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디언들의 안전을 무시하고-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산 부츠는 말타기에 적합한 것일 뿐, 정글에서 사용하기에는 하자를 지닌 신발이었다. 그렇다면 일견 일상적 사고사처럼 보이는 소년의 죽음은 인디언 삶을 파괴하는 백인들의 횡포를 상징하고 있는가? 트라벤은 이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정유 회사, 미국의 구두 공장과 같은) 서구의 문명 자체가 이미 사건의 간접적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만일 부츠가 없었더라면, 나무 다리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카를로스가 자신에게 낯선 문화를 동경하지 않았더라면, 소년의 죽음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 시에 우리는 트라벤이 무조건 문명을 증오하는 기계 파괴주의자도 아니고, 신세계를 찾으려는 이상주의자도, 현실 도피주의자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중편 소설은 인디언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려고, 혹은 백인들을 막무가내로 비난하려고 집필되지는 않았다. 트라벤은 다만 (인디언들과 동화되어 살고 있는) 백인, 슬라이를 통해서 미국인들을 다음과 같이 비난할 뿐이다. “인디언들은 다른 사람의 마실 물에 침을 뱉지 않아요.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종종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동안 우물에 독약을 털어 넣는 일은 오직 백인에 의해 발명되었어요.” (127쪽)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트라벤에게 인종 문제 자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누가 어떠한 이유에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가? 하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트라벤은 인디언에 관한 유럽 사람들의 상을 바꾸고 싶었다.

 

트라벤은 주인공 ‘나’ (제랄드 게일)의 성격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처음에 게일은 인디언에 관해 전혀 아는 바 없었다. 그는 인디언 문화를 자신과 무관한 객체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제랄드 게일이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려는, 이른바 연구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년이 추락할 때 주인공 게일은 물 아래로 추락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를 지체 없이 털어놓지 않는다. (S. 63). 이는 소년의 행방을 찾는 일이 아직 ‘나’의 일과 직결되지 않음을 뜻한다. 주인공 게일은 심지어 인디언들이 초를 켜고 제식을 올리는 행위를 처음에는 희한한 미신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카를로스를 찾아다니는 동안 주인공 게일의 입장은 서서히 변화된다. 물 아래로 추락하는 소리를 연상할 때마다, 인디언 소년 카를로스가 마치 자신의 어린 동생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카를로스의 어머니, 게르차는 부츠를 신고 다리를 건너는 게 몹시 위험한 일임을 직감적으로 떠올린다. 주인공 ‘나’는 그제야 자신의 침묵을 후회한다. 말하자면 게일은 슬라이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백인의 자격으로서 객체로서의 인디언들을 관망하지 않고, 인디언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의 이러한 변화된 모습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결국 게일은 “인디언들은 저열한 종족”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그들에 대해 인간적 존경심을 품는다. 소년은 안타깝게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게일은 다리 저편에 머문 인디언 공동체에 안기게 된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