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블로흐: 베르그송과 물질 (1)

필자 (匹子) 2022. 5. 28. 11:32

베르그송은 사고의 과정 속에서 어떤 새롭고도 생기 넘치는 특징을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가령 그는 시간적 흐름이 마치 맥박과 같이 진행된다고 설파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는 단순히 어떠한 병렬적인 것도 자리하지 않으며, 어떤 시간적 유형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개로 분리되는 공간의 서투른 모방만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제각기 서로 다른 곳에서 동일한 특징으로서 수많은 순간들로써 어떤 차례 내지 서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다시 말해 “아무런 중개 없는”) 주어진 상태는 한마디로 “흐르는 지속성”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지속성 속에는 이전의 순간과 이후의 순간이 순서에 의해 구분된 채 채워져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상호적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순수한 지속성은 인간 의식의 흐름과 관련됩니다. 만약 우리의 자아가 주어진 삶에서 자신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경우 시간의 순수한 지속성은 우리 의식의 진행 과정의 결과로서 유추될 수 있는 어떤 형태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측량의 시간은 양적인 공간을 위한 척도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생명과 무관한 오성에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성을 동원한 사고는 한결같이 공간적 사고입니다. 그것은 육체적 세계 속에서의 어떤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제한적입니다. 냉정한 오성은 모든 것을 나누며, 고착시킵니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기하학적이고, 기계적 특성을 지니지요. 따라서 오성의 사고는 외부의 어떤 분할 가능한, 경직된 존재, 즉 기계적 물질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오성은 오로지 이러한 사멸된 외부적 측면에 입각한 채 바깥 세계를 고찰하며, 유일하게 “기하학적 밸러스트”를 식별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밸러스트란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물질적인 무엇 내지 사물로 출현한 무엇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오성은 베르그송의 경우 생명의 “탈-긴장상태”에서 파생된 무엇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물질 자체에게 어떤 잠자고 있는 육중한 현존재의 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실제 현실은 (가까이 있는) 수학적 사고 속에 자리하지 않으며, (멀리 있는) 양적인 대상 속에도 위치하지 않습니다. 수학적 물리적 개념은 오로지 가상적 특성, 혹은 “상징적 의미”만을 전해줄 뿐입니다. 그것은 메타-논리적이거나, 메타-물리학적인 현실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영역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베르그송에 의하면 오로지 인간의 직관 행위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적 자유를 구가함으로써, 법과 규칙으로부터 벗어난, 물질로부터 벗어난 생명의 흐름을 통해서 이룩될 수 있는 정신의 자귀 행위입니다.

 

베르그송은 이와 일치되는 것을 “생명의 도약élan vital”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19세기말 유럽에서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부르주아는 생명의 도약을 외치면서,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물질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됩니다. 자연과학 역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물질 이론을 저버리게 됩니다. 물질 이론은 더 이상 역사적 유형과 궤를 같이 하는 진리의 어떤 특별한 유형이 아니라, 그 자체 거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딜타이는 “역사적으로 이해되는”, 여전히 유효한 이성을 자연과학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인과율로 해명되는 자연과학의 내용은 이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딜타이의 지론이었습니다. 딜타이의 주장은 당시 유럽에서 환영받았는데, 베르그송 역시 물질과의 결별을 찬양하였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의 축제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물질과의 무조건적인 결별에는 분명히 어떤 하자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특징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기존의 관습 내지 구태의연한 법을 거부하고 이에 대항하는 “생명의 도약”이라는 청춘의 열정을 가리킵니다. 가령 「인형의 집」의 노라는 어떤 기적과 같은 무엇을 찾아 나서고, 「헤다 기블러」의 여주인공은 머리에 포도 잎사귀를 치장하며, 청춘의 자유를 구가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감정은 시민 사회의 인습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오려는 뒤늦은 열정으로 이해되는데, 때로는 어떤 자연주의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때늦은 감정으로 착색되어 있는 경우도 발견됩니다. 베르그송은 이와 관련하여 자유주의와 반동주의의 자세를 거의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