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카우츠키의 물질 이론의 역사 이해

필자 (匹子) 2022. 5. 24. 10:33

『물질 이론의 역사 이해Die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는 카를 카우츠키의 대표작이다. 이 문헌은 역사 철학 내지 사회학의 연구서로서 1927년에 간행되었다. 당시에 카우츠키는 당 이론을 위한 기관지 『신시대』의 편집자이며, 동시에 『에어푸르트 프로그램』 (1891)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프로그램』(1925)의 공저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 사민당 내부에서 명석한 두뇌로 수많은 정치 이론을 집필 발표하던 터였다. 게다가 1889년 노동자 운동의 제 2인터내셔널을 주도하였으며, 엥겔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의 토대를 닦기도 하였다. 이때 나타난 저서가 바로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Karl Marx' ökonomische Lehren』(1887)이었다

 

카를 카우츠키는 처음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통적 경제 이론을 충실하게 답습하였다. 실제로 그는 소련 혁명이 발발한 이후 레닌의 중앙당의 구상에 관한 세부적 사안에 반대하였으며, 나아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왜냐하면 베른슈타인의 경우 자본주의의 내부적 혁신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우츠키의 논의에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으로부터 벗어난 수정주의적 시각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카우츠키는 거대한 노동자 봉기와 같은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 정책의 승리의 가능성에 커다란 기대감을 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투쟁하는 노동자 운동에 대해서는 커다란 기대감을 표명하지 않은 지식인이 카우츠키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카우츠키는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너무 일찍 발발했다고 토로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사회주의의 경제적 개혁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아직 발전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그는 레닌과 첨예하게 대립되는 입장을 제기한 셈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카우츠키가 어떤 민주적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그룹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대체로 노동자 운동을 통해서 중앙집권적 전체적 지배 형태가 도래하게 되리라는 데 대해 처음부터 대립 각을 세웠는데, 카우츠키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물질 이론의 역사 이해』는 카우츠키의 후기 작품으로서 약 18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문헌이다. 카우츠키는 이 문헌을 통해서 물질 이론의 역사를 서술하고, 물질 이론이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조직적이고도 포괄적 사항을 정당하게 개진해 왔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이 책에서 물질 이론의 내용 그리고 정당성을 도출하려는 카우츠키의 입장을 접할 수 있다.

 

다섯 권 가운데 첫 번째 책 “정신 그리고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특유한 인식 비판의 전제 조건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념 이론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작업이었다. 이로써 그가 특히 동시대에 살았던 신칸트학파에 대해 비판의 촉수를 세운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이를테면 신칸트학파는 오토 리브만Otto Liebmann 그리고 프리드리히 랑게Friedrich Lange 등에 의해 학문적 논의를 제시했는데, 이들의 절충주의는 때로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의 토대가 되었으며, 때로는 막스 아들러Max Adler와 오토 바우어Otto Bauer 등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논거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두 번째 책은 “인간의 본성Menschennatur”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세 번째 책은 “인간적 사회Die menschliche Gesellschaft”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여기서 카우츠키는 자신의 역사 이론을 토대를 마련해줄 인간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전제 조건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다윈의 영향이 현저하게 눈에 띈다. 인간의 존재는 카우츠키에 의하면 역사적 측면에서 필연적으로 결정주의의 사고 속에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생물학적으로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존재라고 한다.

 

카우츠키는 인간의 존재를 역사적 차원 뿐 아니라, 생물학적 측면에서 결정주의 속에 편입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는 비록 스스로 유대인이었지만, 생물학적 인종적 측면에서의 역사 결정주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동의하거나,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한 바 없었다. 가령 유대인 문제를 고려할 때 마르크스는 인종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본성을 규정한다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네 번째 책, “계급과 국가”는 카우츠키의 견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헌이다. 여기서 카우츠키는 역사 그리고 조직 체계의 관점에서 계급과 국가의 개념을 추적하고 있다. “계급 지배의 조직”으로서의 국가는 카우츠키에 의하면 어떤 계급이 형성됨으로 인해서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수렵과 동물을 키우는 방랑하는 유목 민족은 사회적으로 농사를 짓는 민족을 다스릴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지배 기관으로서의 계급이라고 한다.

 

이러한 논리로써 카우츠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입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엥겔스는 계급 사회가 억압 기관으로서의 국가를 창조한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었다. 엥겔스에 의하면 특정 지역에서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이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종속된 관계가 결국 국가를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엥겔스가 『안티 뒤링』(1877)에서 주장한 국가의 사멸에 관한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엥겔스는 그 책에서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하게 되면 공산주의가 실천될 것이고, 국가는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카우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대의 사회주의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이룩하여 이에 근거하고 있지만, 국가는 처음부터 거대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국가는 원시적 집단을 정복하고 그 위에 부족보다도 더 거대한 집단 체제를 창안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적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계급 갈등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계급 갈등은 주지하다시피 자본가와 무산 계급 사이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의 사회적 차별성은 19세기의 시대에 비해서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현태로 출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카우츠키에 의하면 계급 갈등 외의 다른 관점, 이를테면 사회 구조를 전체적으로 서술하는 과업을 등한시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카우츠키는 국가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거부한다. 가령 그는 국가를 파괴하여 소규모의 지역 공동체를 창건하자고 하는 아나키스트의 전통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카우츠키는 차제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국가가 소멸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을 강제적으로 결합시킨 집적체이기를 오래 전에 포기하였다. 실재하는 국가들은 대립적 갈등을 떨치고, 스스로 독자적인 존재로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현대의 국가들은 소멸되기는커녕 민주주의와 인민의 자결권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개별적 특성을 완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 국가의 이러한 민족주의의 결속력은 근절될 수 없으며, 거역할 수 없다. 설령 민주주의가 실현되거나,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속력은 동일한 경제적으로 응집된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국가는 계급의 파기를 통해서 그 기능을 향화시키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소멸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제 5권 “역사의 의미”는 인간의 어떤 낙관적인 발전사를 서술하고 있다. 먼 미래에는 정치경제학의 카테고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카우츠키에 의하면 지금까지 관념 철학이 주장하던, 자유, 도덕, 행복, 휴머니티, 진보 그리고 보편성과 특수성 등과 같은 카테고리가 되리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카우츠키의 문헌은 다윈주의 그리고 19세기의 사회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서문에서 카우츠키는 자신이 추구한 사상적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윈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카우츠키에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모순에 의해 작동되는 변증법적 역사의 발전 이론이 아니라, 진화 이론 내지 다윈 식의 결정주의의 사고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즉 카우츠키는 자연 법칙, 자연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와 한 번도 명징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카우츠키의 문헌은 거대한 우주론적 역사의 종합을 지향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시각으로 고찰할 때 여러 가지 이질적인 내용을 절충시킨 것이며, 방법론적으로 고찰할 때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한 감을 드러낸다.

 

이로써 마르크스가 시대적 문제로 제기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카우츠키의 문헌은 출간 직후에는 사회주의 이론가 내지 노동 운동가들에 의해 폭넓게 거부당하고 말았다. 룩셈부르크,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베벨 (그리고 심지어는 베른슈타인)의 문헌이 폭넓게 수용된 데 비하면, 카우츠키의 『물질 이론의 역사 이해』는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