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베르그송의 도약의 개념은 처음부터 모든 게 결정되어 있는 인과율의 법칙을 조롱합니다. 도약은 마지막 종착 지점을 비아냥거리고 비웃습니다. 왜냐하면 인과율의 법칙은 실현을 위해서 나아가는 방향의 유연성을 용인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마지막의 종점을 결정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베르그송은 원인과 결과라는 두 가지 사항이 물리역학적인 것이며, 만물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명은 무엇보다도 어떤 통로의 장소이며 그리고 생명의 정수는 그것을 이전하는 운동 속에 위치하고 있다. L'être vivant est surtout un lieu de passage, et l'essentiel de la vie tient dans le mouvement qui la transmet.” 인용문에서 베르그송은 변증법적으로 흘러가는 운동의 걸음걸이를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포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걸음걸이가 하나의 가상으로 머물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생명의 운동은 그야말로 공중에서 발생하며, 영구히 폭죽을 터뜨리는 행동, 다시 말해서 지상이 아니라, 삶의 거품을 통해서 꿈틀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베르그송은 존재를 움직이는 무엇으로 고찰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도는 변증법적 물질 외부에는 어떠한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는 새로운 무엇의 창조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운동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고유함에 불과하고, 놀라움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으며, 목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마치 폭군의 마음과 같은 편협한 목표에 불과합니다. 베르그송이 골몰하는 것은 물질 저편에 위치한 생명의 도약입니다.
그가 표현하는 것은 결코 포착되지 않는 내용에 불과합니다. 작품 한편 남기지 않은 어느 어설픈 예술가의 초상이라고나 할까요? 만약 베르그송이 물질의 왜곡된 상을 생명과 반대되는 극점으로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생명의 도약”이라는 개념은 결코 순수하고도 독창적인 특징을 지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자유에 대한 자유, 생명에 대한 생명, 새로운 무엇에 대한 새로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도약은 무엇보다도 물질에 대한 부정성을 근거로 스스로의 특징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그송은 일견 자신의 사고가 물화되는 것을 그야말로 완강하게 투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것을 어떤 경직된 대립 속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가령 물질은 생명과 대립되고, 오성은 직관과 대립각을 이루며, 자동주의는 자유와 반대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립을 통해서 베르그송이 추구하는 생명의 분출은 일견 풍부한 사고와 시대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자체 고착되고 물화된 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질은 베르그송에게는 언제나 기계적인 무엇이며, 생명은 그야말로 탁월한 개념적 메커니즘으로 고착된 무엇입니다. 생명은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결코 변화되지 않을 변화이며, 영원히 물화되는 탈-물화의 개념입니다. 베르그송은 물질에게서 어떠한 새로움도 찾을 수 없다고 이해했으며, 변증법적 물질이라는 용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무엇은 내용상으로 고찰할 때 어떠한 혁신적 특성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무엇은 신속한 바람이 부는 황폐한 황무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 모든 하자에도 불구하고 어떤 “반-기계적인” 물질 개념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발전 속에서 부분적으로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어떤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어떤 유유자적하게 기존하는 물질, 다시 말해 마치 조르다노 브루노가 생각해낸 바 있는 거대한 물질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베르그송이 언급한 생명의 도약이라는 폭죽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도약”이라는 화살은 우주의 먼 곳으로,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으로 날아가고 말 테니까요. 어쩌면 베르그송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포착된 물질이 얼마나 초라한가? 하는 물음에 대해 신호를 보낼지 모릅니다. 물론 그는 생명의 에너지 내지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를 열렬히 찬양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눈앞의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고유한 결코 물화되지 않은 물질과 조우할 수 없다면, 그러한 생명의 에너지는 그야말로 가련한 무엇에 불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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