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볼프의 "카산드라" (4)

필자 (匹子) 2022. 2. 5. 11:33

(계속 이어집니다.)

 

친애하는 W, 작품이 어떠했는지요? 첫째로 작품은 평화 운동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당시는 핵무기의 위험이 첨예하게 드러날 무렵이었습니다. 구동독 작가인 크리스타 볼프는 마치 카산드라처럼 권력 그리고 금력을 추구하는 지배자의 관심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작가로서의 영향력은 미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미의 관심사는 군비 증강 그리고 핵전쟁의 위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카산드라"를 반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 심리는 볼프의 견해에 의하면 “경쟁, 타인의 재산에 대한 질투 그리고 이기주의 die Konkurrenz, der Futterneid, der Egoismus”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어느 특정한 다른 나라를 적으로 규정하도록 요구합니다. 전쟁은 “타인에 대한 증오심 Xenophobie”이 없으면 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마농 그리제바흐 Manon Griesebach가 『녹색의 철학 Die Philosophie der Grünen』에서 분명히 천착한 바 있습니다.

 

둘째로 작품 『카산드라』는 가부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여인들이 어떻게 전쟁에 이용당하고, 겁탈당하며 비참하게 살해당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크리스타 볼프는 카산드라의 신화를 모권주의의 사고에서 찾고 이를 해명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소설 카산드라의 전제 조건 Die Voraussetzung der Erzählung: Kassandra"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볼프의 시학 강연은 신화의 현대적 수용, 바흐오펜 Bachofen, 토마스 만 Thomas Mann 등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거론합니다. 대신에 볼프는 엥겔스, 조지 톰슨 등의 신화적 입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기로 하겠습니다. 볼프는 서양 역사의 효시로 인정받는 호메로스의 관점을 여지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아킬레스는 사악한 동성연애자로서 겁탈과 살인을 일삼는 살인마인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그의 살육 극을 “영웅적 행위로 찬란하게 미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호메로스의 역사적 시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크리스타 볼프의 지론입니다. 살인행위는 볼프에 의하면 어떠한 논리로써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문학은 죽임을 미화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게 아니라, 평화의 연구이어야 한다고 볼프는 말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볼프는 이다 산의 스카만더 강의 여성 공동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시대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80년대 초는 핵무기의 위험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던 시기였습니다. 단추 하나만 (잘못) 누르면, 도시 전체가 버섯구름에 휩싸일지 모르는 형국이었습니다. KAL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서 여지없이 격침당하여 모든 승객이 사망한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냉전의 위험과 관련하여 볼프는 『소설 카산드라의 전제조건』에서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군비 축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특히 동독의 체제 옹호적 지식인들에 의해서 신랄하게 반박 당했습니다. 이를테면 빌헬름 기르누스 Wilhelm Girnus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피 묻은 무기를 닦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 앞에 그렇게 단순한 평화주의를 외칠 수 있느냐, 볼프의 시각은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 Froschperspektive’이 아니냐? “하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볼프의 작품 속에서 카산드라는 예언하는 여자이면서도 사회에서 국외자로 취급당합니다. 세 번의 전쟁 준비가 지속되는 동안에 그미의 경고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미는 자신에게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미는 스카만드로스 강가에서 여성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과 살아갑니다. 여기서 그미는 새로운 삶, 평화 등의 가능성을 찾지만, 어떠한 대안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다음의 구절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와 닿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 전쟁이 시작되는가? 사람들은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언제 이전 전쟁, 다시 말해 냉전이 시작되는가? 이에 대해 사람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관해 어떤 규칙이 있다면, 사람들은 계속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은 그렇지 못하다. 음성 속에서 돌 속에서 묻힌 채 전해 내려오는 것.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너희들 고유한 삶으로부터 스스로 현혹되지 말라’는 문장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