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Wolf

서로박: 크리스타 볼프의 '남아 있는 것'

필자 (匹子) 2024. 8. 5. 10:55

 

어느 봄날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들은 다시 거기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은 집 앞에 자동차를 세워 놓고, 창가의 나를 하루 종일 감시한다. 맨 처음 자정이 넘도록 그들은 창밖의 길가에 흰색 차 속에서 끈질기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 다시 아침 9시 경에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이번에는 연초록의 차가 정차해 있었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는데도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니, 그들은 지난 해 11월부터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당시에 기관원들은 나의 이층 아파트에 침입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전화가 울린다. 과연 그들이 나의 전화를 엿듣고 있을까? 그들은 내가 편지들을 읽기 전에 아마도 모조리 읽었는지 모른다.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들은 나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웃 사람들, 오랜 친구들은 거리에서 만나도 더 이상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행동을 취하고 있을까? 그들 가운데 과연 누가 밀고자일까? 누가 누구를 모욕하고, 그 대신에 돈을 받고 있을까? 나의 생각은 뇌리에서 자꾸 맴돌고 있다. 나는 마음을 달래면서, 두 사람을 떠올린다. 한사람은 유대인여자를 돕던 어느 주류 판매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보기관에 매수된 사이비 철학자 위르겐 M을 가리킨다. 이때 어느 문학소녀가 나를 찾아온다. 나는 그미의 문학 작품을 좋게 평가하면서도, 이 나라에서의 작가적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한다.

 

이날 오후에 나는 작품 낭독 행사에 초대받는다. 강연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강연장 밖에도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바깥에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다. 나는 허탈감에 빠진다. 좀처럼 실현되지 않으려는 강구하는 미래, 억압의 현실이 나를 허탈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를 무력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이러한 분위기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는가? 게다가 나는 언제 어디서나 감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상기한 내용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다루어보자. 소설은 작가가 1979년 여름에 겪었던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무렵에 동료 작가, 볼프 비어만은 당국에 의해서 추방당했다. 12명의 남은 작가들은 당국의 이러한 조처에 대해 항의하는 공개적 서한을 발표한 바 있다. 이때 12명의 작가들은 제각기 스타지의 감시를 받았다. 문제는 볼프의 작품이 1990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통독 이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세인들로부터 신랄하게 비판당했다. 무엇보다도 작품 발표의 시점이 문제된 것이다.

 

끊임없이 관찰 당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 관찰 당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모든 환경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자기 정체성마저 위협한다. 가령 어느 스토커에 의해 감시당하는 여자는 모든 직접적인 반응에도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 이 모든 심리적 갈등이 아주 그럴듯하게 묘사되고 있다. 의식의 흐름 수법이 자주 등장하여, 독자는 과연 저자가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가를 망각하게 된다. 결국에는 주인공 나는 내적 독백을 통해서 자신이 “나”, “너” 그리고 제 3의 존재 등으로 구분되는 것을 느낀다. 이는 분명히 어떤 자아의 분열된 모습과 관련되는 것이다. 자아의 분열은 동독이라는 국가에 대한 작가의 분열된 태도와 관련된다. 두려움과 불안, 불면증과 신경과민으로 인한 균형 감각의 상실, 탈모 등이 하나의 병적인 증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비록 전체주의의 시스템 속에 불신과 의견 대립이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주인공 나는 어떤 희망의 불씨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위에는 자신과 똑같이 피해당하는 이웃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나는 각자 주어진 현실적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당면하고도 절실한 질문들을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게 던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날 밤 당원 한 사람이 주인공의 작품 낭송 모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서 주인공을 감시하기 위해서 모임에 참여하였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의 청중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놀라운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질 용기를 지니고 있다. 나중의 피해를 처음부터 각오한 채 말이다. 그들의 질문은 미래의 삶에 관한 갈망과 관계되는 게 아닌가? 사실 이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기란 몹시 어렵다. 왜냐하면 억압의 상황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통일된 독일 사회에서 구동독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노벨상 후보자인 크리스타 볼프를 매도하기 위한 좋은 자료로 남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