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유토피아의 의미에 관하여 (5)

필자 (匹子) 2021. 12. 10. 12:10

(앞에서 계속됩니다.)

 

가까운 무엇 그리고 멀리 위치한 무엇, 우리는 이 가운데 한 가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다른 한 가지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눈앞의 일상적 문제에 골몰하는 나머지 우리가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갈망을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우리는 희망하는 먼 목표는 너무 멀리 팽개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당면한 문제에 혈안이 되면, 우리는 “갈망이라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사항에 대해 둔감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까이 도사리고 있는 긴급한 문제를 일차적으로 고려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후에 태어날 자손들의 관심사에 부합되는 문제를 멀리하고, 이러한 문제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목표를 위한 것으로 단정 짓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경박하게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가령 유토피아는 그야말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진화론 정도로 간주되고,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란 그야말로 일상과는 무관하며, 경박한 축제의 말씀 정도로 여겨지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사회주의의 밝은 가치 내지 그밖에 다른 낡아빠진 사고 등과 같은 허사처럼 취급될 수 있습니다.

 

상기한 태도는 분명히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는 일상을 뛰어넘는 예견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통상적인 질문과는 전혀 다른, 어떤 낯선 탁월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어째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세상을 새롭게 증축시켜야 할까요?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골몰하게 하고 밀담을 나누게 자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학문을 요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즉 오늘날 세계의 진행 과정을 명징하게 분석할 뿐 아니라, 미래세계의 변화된 푸름을 새로이 축조하는 학문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이러한 학문을 추구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르크스주의의 자외선의 영역에 해당하는 찬란한 자유의 나라를 보다 정확하고 보다 과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먼 곳을 예견하려는 의향은 철학적으로 고찰할 때 유토피아의 전체성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숙지하는 일 그리고 이를 기억 속에서 찾아내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과업을 외면하게 되면, 남는 것은 오로지 천박한 실증주의의 입장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실증주의는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도 기억하지도 말라고 선동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먼 곳을 예견하려는 의향이야 말로 눈앞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실증주의의 천박함을 떨치고, “자유의 나라”라는 목표를 생동감 넘치게 견지하게 해줍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르고 현명한 방식을 동원하여 가까운 곳의 단계와 먼 곳의 목표를 일원화시키는 몽타주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블로흐가 자신의 친구였던 루카치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실천 작업에서 드러나는 의견 대립 때문이었다. 가령 베른슈타인이나 사회 개량주의자들은 목표를 등한시하고, 수단만을 염두에 둔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한 시대의 경제 구조를 자질구레하게 미시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작은 대안만을 창출할 뿐이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에 주력하는 반면,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주체의 창조적인 일을 가꾸는 작업을 등한시한다. 블로흐는 전자의 과정을 “가까운 목표 Nahziel”로, 후자의 과업을 “먼 목표 Fernziel”로 규정하며,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중시하였다. - 역주 )

 

유토피아의 원칙적 개념이 없이는 혁명의 과학은 차제에 어떠한 방향으로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 실질적으로 진척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계획을 결코 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가능한 현실에 관한 우리의 모든 꿈과 예견은 어떤 폐쇄적인 기획처의 사무실에서 차단된 계획에 의해서 수행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나은 삶의 중요성은 오로지 기존의 사항만으로 동원되는 기획 작업을 통헤서는 절대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꿈, 자유, 여가, 한마디로 자유라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terra incognita”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주어진 자료만으로써 정리되고 체계화될 수 없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