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는 고대 사회, 봉건 사회 그리고 시민 사회의 문화를 사회주의적으로 수용하는 문제를 숙고했다. 동구의 대부분 사회주의자들은 과거의 문화를 통째로 거부하거나, 일부 찬양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블로흐는 인간이 남긴 모든 유산에는 긍정적 부정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고 믿었다. 지나간 문화적 유산을 새로운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수용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오늘날 주어져 있는 모든 문화적 유품의 옥석을 가려내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루카치에 대한 블로흐의 비판이다. 루카치는 후기 시민 사회의 병든 문화를 모조리 거부하고, 고대 그리스의 이상 그리고 독일 고전주의의 자세를 찬양하였다. 이에 비해 블로흐는 개별 문화 그리고 예술 작품들의 호불호를 지적하는 대신에, 그 속에 혼재되어 있는 부정적 이데올로기를 파기한 다음에, 그 자리에 습득한 희망을 채워 넣는 과업을 중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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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식에 떠오르는 유산은 차제에는 새롭고 훌륭한 방식으로 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언제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의식된 유산이 어디서 유래했는가를 따지며, 세부적으로 감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어떤 무자비한 방식으로 출현했는가를 접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박물관 내지는 기념관에서 멋지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조우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 작품과 이에 결부된 예술사적인 내용은 얼마나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치스러운 예술품의 탄생 과정에서 얼마나 커다란 고난과 궁핍함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지에 관해서 별반 관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노예들과 시종들은 끔찍한 고통을 당했으며, 유대인은 잔인한 박해를 당했으며, 많은 여성들은 마녀로 몰려서 피가 솟는 고통 속에서 불에 타죽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이러한 추악한 사건들을 기억하기를 꺼려한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역사적 사건은 오늘날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고 있다.
후세에 유품으로 전달될 가능성은 과거에 이미 가치를 지니던 물품이라든가, 과거의 이데올로기에서 넘쳐흐르는 모든 것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 프리지아의 모자라든가, 이와 관련된 물품들은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이라든가 이와 결부된 것들보다도 더욱 수월하게 후세에 전해지곤 한다. (역주: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진취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붉은 색의 프리지아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유산 의 전파 가능성의 단계, 다시 말해 어떤 이데올로기의 중간적으로 넘쳐흐르는 단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항상 혁명적 상승기를 가리키고, 두 번째 단계는 이따금 대성당에 은밀히 남아 있는 절정기를 지칭하며, 세 번째 단계는 –지금까지 이에 관해서 깊이 숙고하지 않은- 얼룩덜룩한 파괴되는 하강기를 가리킨다.
일단 유산의 첫 번째 단계, 즉 혁명적 상승기와 관련된 사항을 언급해보기로 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 우리와 친화력을 지니고 있는 무엇이며, 일견 어떠한 더 이상의 의구심도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무산 계급은 계급적으로 성장할 무렵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과거의 억압 받던 사람들이 행했던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부터 특정 인물, 저항의 표시라든가 그들의 외침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하나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들 계급은 미래에 관한 확고한 계획 없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악한 전제 군주에 대항하는 와중에서 때로는 스스로를 거칠기 이를 데 없는 폭동 자체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가령 고대 로마에서 노예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을 생각해 보라. 12세기와 13세기 이래로 새로운 생산력이 실제로 가동되기 시작될 무렵에 사람들은 더욱더 명징하게 과거의 혁명적 이야기를 자신의 것을 수용하게 된다.
게오르크 뷔히너가 「헤센 급사」에서 외친 다음과 같은 슬로건은 그 이전의 역사적 시기에도 명징하게 나타난 바 있었다. “왕궁에 전쟁을, 오두막에 평화를”이라는 슬로건을 생각해 보라. (역주:「헤센 급사」는 요절한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1813 – 1837)가 바이디히 목사와 함께 작성한 글이다. 여기서 뷔히너는 헤센의 권력자, 토후 그리고 귀족들이 인민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착취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고결한 권리가 집약되어 있는데, 시인 니콜라우스 레나우는 자신의 작품 「알비 파Albigenser」에서 다시금 거론한 바 있다. 그는 인권을 위한 저항이 “알비 파”로 그치지 않고 이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기타 등등”이라는 시어로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알비 파 뒤에 후스 파가 나타났다/ 그들은 알비 파의 고통을 피로써 보복했다/ 후스와 지슈카 다음에 루터와 후텐이 출현했다/ 30년 후에는 세벤 계곡의 투사들/ 바스티유 감옥의 폭파한 사람들 기타 등등”
(역주: 알비 파: 순결 파로 일컫는 기독교 종파. 그들은 선과 악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악을 멀리하기 위해서 그들은 결혼, 육류 섭취 그리고 사유 재산을 거부하였다. 1150년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세력이 확장되었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 및 이들을 지지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몰살되었다. 지슈카: (? - 1424) 급진 후스파의 지도자로서 후스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울리히 폰 후텐 (1488 – 1523):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휴머니스트. 그는 신성 로마제국의 첫 번째 기사로 알려진 바 있다. 세벤 계곡의 투사들: 1702년에서 1710년 사이에 신교와 구교의 갈등으로 프랑스 세벤에서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를 세벤 전쟁이라고 칭한다. 니콜라우누스 레나우의 시 「알비 파」는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다. Nikolaus Lenau: Sämtliche Werke und Briefe. Band 1, Leipzig und Frankfurt a.M. 1970, S. 8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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