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언론의 농간, 소시민들의 섬뜩한 백래시 현상

필자 (匹子) 2021. 12. 7. 10:40

국민의 힘 정당은 현 정부를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당이 내세운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인 공약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론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40%가 국민의 힘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구체적 정책을 잘 모르는데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다니, 이게 말이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지금까지의 정치판을 고찰하면, 말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대응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게 선거 결과들이었습니다. ㅠㅠ) 흔히 사람들은 A가 싫으니까, B를 찍는다고 말합니다. 만약 유권자들이 국정을 운영할지 잘 모르는 분을 지지한다면, 이는 어떤 심리적 반작용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현정부에 대한 실망과 증오심과 관련됩니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증오심이 반대파를 지지하도록 자극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어쩌면 2년 동안 이어지는 코로나 사태에서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한국의 경제적 상황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 연임 선거에서 패한 이유 역시 무엇보다도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실패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한국의 방역체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하여 여러 의사와 간호사들의 노고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불철주야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서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블루, 고소득층을 제외한 일반 사람들의 경제적 손실, 소상공인들의 참담한 피해 등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소상공인들이 가게를 접고,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택배 기사로서 밤낮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상황의 악화는 무엇보다도 코로나19 때문이지, 무조건적으로 현 정권의 무능 내지 경제 정책의 잘못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현 정권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 LH 공사의 비리 등을 낳게 한 것이 분명히 문재인 정권의 안이한 경제정책에 기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얼밀히 따지면 부분적인 잘못 하나로써 정부의 정책 전체에 하자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은 유권자들의 경제적 사정이 열악하게 된 원인을 오로지 현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 사실을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왜곡 보도합니다. 중요한 이슈는 은폐시키고,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기사를 마구 부풀려서 게재합니다. 예컨대 오랫동안 조중동 신문을 읽고, 종편 TV방송을 시청하면, 어느 정도 비판의식을 지니지 분이라면, 저절로 방송 내용에 빨려들어갑니다. 국민의 의식은 신문과 방송 보도에 의해 교묘하게 흡입됩니다. 언론은 모든 부정과 비리, 경제적 어려움 등의 근본이 문재인 정권에서 기인한다고 연일 보도하면, 일반 사람들은 한국이 경제 영역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며, 신문과 방송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언론 이데올로기에 대한 예를 들어봅시다. 1930년대 많은 독일 사람들은 자신이 실업자가 된 근본적인 원인을 누구보다도 유대인들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나치의 선전 총책이었던 히믈러는 당시에 유대인에게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돌렸고, 언론 역시 그의 이러한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독일의 경제적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과도한 실업 발생, 세계 대공황의 여파 그리고 과도한 전쟁 보상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유대인들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독일 실업자들의 질투심을 자극하였고, 결국 히틀러를 직접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게 하였습니다.

 

한국의 많은 유권자들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열악하게 된 탓을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문죄인 정부 때문"이라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모든 잘못을 문재인 정권 탓으로 은밀하게 뒤집어씌웠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언론은 정부의 검찰 개혁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검찰 개혁의 선봉장이던 조국이 윤석열의 완강한 저항에 나가 떨어졌고, 추미애의 검찰 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 역시 검찰의 완강한 자기 방어에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태를 뒤에서 교묘하게 조작하고 조종한 자들은 조중동 언론기관 그리고 종편 TV 매체였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 정책에 대해 그렇게 완강하게 반발할까요? 자고로 인간의 의식은 주인에게 꼬리치고, 타인에게 향해 컹컹 짖는 개의 보수적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발 심리를 사회 심리학에서는 "백래시 Backrash" 현상이라고 명명합니다. 백래시는 심리적 반발 내지 심리적 혐오와 관련됩니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고 과거의 전통을 무조건 추종하려는 보수적 권위주의를 생각해 보세요. 수구 보수주의의 언론은 이러한 백래시를 은밀히 조장하는 데 앞장 섰습니다. 경상도, 유교주의 그리고 신라의 골품제도를 생각해 보세요. 경상도는 전라도를 배척하고, 유교주의는 페미니스트 내지 성소수자를 저열하게 비난해 왔습니다. 신라의 골품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개개인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학벌, 즉 SKY를 중시하고 학연, 인연 그리고 지연을 맹신하게 했습니다.

 

새로운 무엇에 대한 반감은 히틀러를 추종하던 소시민 남자들에게서 터져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고동색 셔츠를 입고 유대인 상점에 불을 지르던 돌격대 SA는 백래시를 전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새로운 무엇에 대한 거부감과 증오심은 우리 나라에서는 비단 태극기 부대 내지 일베 등의 수구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약 20% 에서 30%에 해당하는 일반 소시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특정 대선주자를 극도로 증오하고 혐오합니다. 마치 노동자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고소득층의 이권을 옹호하는 정당을 지지하듯이, 소시민들은 자신의 권익과 이득을 돌려주겠다고 공언하는 대선 후보자를 불신과 의혹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언론 매체의 조종 당하고, 그들의 간계에 무의식적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권자의 주머니 사정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선거를 통해서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사정이 나아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선거의 당선자는 나의 호주머니를 챙겨주는 일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보다 포괄적인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예나 지금에나 소시민들의 주머니 사정의 열악함을 부추기고, 좌파 정치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유권자들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은 극우 보수정당입니다. 이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 까닭은 그가 사회의 15%에 해당하는 기득권 계층의 이권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건대 2022년 한국의 대선은 한마디로 국민의 힘 (일본의 자민당), 친일파, 조중동 그리고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의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독립운동가의 자손, 인구의 85%에 해당하는 직장인, 노동자 학생 등과 같은 민초들의 승리냐? 하는 물음과 직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