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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필자 (匹子) 2021. 12. 11. 09:21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치밀하게 파헤친다는 것이다. 즉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에 관한 문제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본적 자세가 어째서 중요한가? 하는 이유 말이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치적으로 어떤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러한 운동은 결국 성공으로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시민운동 단체들의 노력은 마지막에 이르러 시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참정 권리는 결국 투표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선거의 과정은 놀라운 과학 기술의 장치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로써 사람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권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처리되는가?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은 엘리트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의 폐해를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는 방안이며, 얼마든지 실천 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시민운동이 독일의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위스 (Joseph Beuys, 1921 – 1986)의 예술 행위 그리고 그의 사망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위스는 전위 예술 작품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진 화가였는데, 마치 백남준과 같이 자신의 행동 자체를 행위예술로 승화시킨 입지적인 인물이다. 이로 인하여 요제프 보위스는 오늘날 앤디 워홀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전위 예술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릴까 한다. 보위스는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봉직할 무렵, 수없이 물의를 일으켰다. 보위스는 예술 대학에 진학하려는 자에 대한 “입학자격 제한 numerus clausus” 그리고 서류 전형 심사에 반대하였으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 건물을 강제로 점거하여 데모하였다.

 

요제프 보위스는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면서 살다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렇기에 보위스의 아내는 장례를 치른 뒤에 “살아있는 동안 그는 평생 죽어지냈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한마디로 보위스의 적극적이며 완강한 정치 참여는 일신상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게 했지만, 직접 민주주의의 저항 정신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80년대 말부터 녹색당의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앞에서 암시했듯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자연과학의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이다. 자동으로 작동되는 컴퓨터 시스템은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을 통합하여, 이를 전해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컴퓨터의 도입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실천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낙관주의적 방안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독일의 사회학자 헬무트 크라우흐 (Helmut Krauch, 1927 – 2010)의 저서 『컴퓨터 민주주의』에서 체계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그런데 컴퓨터의 도입으로 바람직한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되려면, 하나의 전제 조건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즉 제반 언론기관은 정부의 감시나 통제를 받지 말아야 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토론이 활성화된, 민주적인 문화 풍토가 완전히 갖추어져야 하는 게 바로 그 전제 조건이다. 만약 일부 단체가 컴퓨터를 통해서 공개 여론을 조작하거나 은폐한다면, 컴퓨터 시스템은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한 정보의 공유 행위는 한마디로 양날의 칼과 같다. 어쨌든 베른트 레스만은 『변신』에서 컴퓨터의 활용을 통한 만인의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을 하나의 긍정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