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교육은 채찍이 아니다

필자 (匹子) 2021. 11. 7. 11:52

https://www.youtube.com/watch?v=4WVBAnTc_i4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혹은 교육은 채찍이 아니다

- 부산동고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자네는 말했지 음악은

기억이라고 이전 사실의

몇몇 장면 떠올리게 하니

자네의 발라드 노래는

과거로 향하는 여행이야

키 작고 말이 없던

자네 가슴속 숨겨져 있던

기예의 불꽃 아무도

측량할 수 없었지 당시의

학교 폭력은 오직 선생의 것

교련 선생은 왕이었지

 

달콤한 평화와 자유는

나태함을 부추기곤 한다고

고함지르던 그는 너희를

구타하는 재미로 살고 동료를

병역 미비로 직장에서

내쫓기도 했지 공공연히

희롱당해도 두려움에

떨던 동료 여선생님 그의

짓거리에 아무런 저항 없이

노여움의 껌만 씹던 나는

겁 많은 생쥐 한 마리

 

초록 버스 운전석에 부착된

글귀 “오늘도 무사히.”

하루 만이라도 얻어터지지 않고

하교할 수 있을까?

내일은 혹시 원산폭격 없을까?

노심초사하던 악어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벌벌 떨던 60 명 “엘로이”들 *

그래 다치지 않으려면

눈에 띄지 말아야 해 놀란

정어리 떼 함께 헤엄치듯이

 

꼭꼭 숨는 게 바로 생존

전략임을 몰랐어 어째서

자네 렌즈 없는 안경을 쓰고

노래를 시작했는지를

그건 피폐한 자신의 그림자

외면하기 위함이었지

책에 스민 도시락 김치 국물은

삭막한 비상사태의 추상화

바람에 양달령 옷깃이

날리듯 불러봐 가늠 없는

가슴 속 그 애틋한 열망을

 

.....................

 

* “엘로이들” - 허버드 G. 웰스의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미래의 인간들.

 

2018년 초여름인 것 같다. 무려 38년 만에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용석 (왼쪽 푸른 정장 차림)의 주선으로 부산의 서면에서 나와 함께 했던 까까머리들을 만났는데, 어느새 그들도 반백이 다 되어 있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 된 것이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