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형 예술

서로박: 망각의 대상으로서의 이카로스 (2)

필자 (匹子) 2021. 6. 28. 10:52

 

문제는 브뢰헬의 그림이 화가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된다는 사실입니다. 화가는 이카로스의 오만과 취기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기이하게도 어떤 끔찍한 파국에 대한 세상의 냉담성을 예리하게 보여줍니다. 어째서 소시민들은 현재 이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파국을 바라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이러한 고통스러운 물음은 영국 시인 위스탠 H. 오든 Wystan H. Auden의 시 「조형예술 박물관 Musée des Beaux Arts」(1938)에서 잘 나타납니다.

 

“고통에 관해서 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과거의 거장들은 얼마나 인간의 태도를/ 잘 이해했던가, 어딘가에서 누군가 밥을 먹고 창문을 그냥 열어 제치거나 혹은 어디론가 어슬렁거리는 동안/ 어떤 듣지 못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곤 했음을.// 혹은 과거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적의 탄생을 고대하는 동안에도 틀림없이/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 하지 않은 채/ 나무 근처 얼어붙은 연못에서 썰매 타기에 골몰할 뿐./ 과거의 거장들은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순교의 정도, 전율의 끔찍함이 발생하는 바로 그때/ 지저분한 구석에서는 개들이 개의 삶을 이어가고 고문하는 자의 말(馬)이/ 나무에다 죄 없는 엉덩이를 쓱쓱 비비고 있었다는 것을.//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그림을 보라./ 모든 게 어떻게 자신의 걸음대로/ 유유자적하게 파국으로부터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는가? 농부는 아마도/ 물체가 바다 위로 떨어지는 소리, 혹은 버림받은 고함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중요한 사건은 결코 아니었다. 태양은 그냥/ 초록 빛 바닷물을 삼키는 하얀 피부의/ 다리를 비추고 있을 뿐. 또한 호화롭고/ 우아한 선박은 어쩌면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어느 젊은이, 그가 하늘에서 추락한 놀라운 사건을,/ 그러나 배는 떠나기 위해 서서히 돛을 띄우고 있을 뿐.” (서로박 역)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y on.”Wystan H. Auden: Musée des Beaux Arts, in: ders., Collected Poems, London 1991, S. 179.

 

시인 W. H. 오든

 

과거의 거장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세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과 일상 삶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식인과 소시민 사이의 거대한 위화감, 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눈먼 세상, 지금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소시민들은 이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카산드라 Kassandra는 도래할 파국을 알리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미의 발언은 외면당하거나, 구설수에 오를 뿐입니다.

 

1938년에 오든은 브뤼셀에서 브뢰헬의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림은 시인의 폐부를 찌르는 게 아닌가요? 왜냐하면 브뢰헬의 작품은 1555년의 현실을 묘사한 게 아니라, 시인이 처하고 있는 ‘지금 그리고 이곳’, 다시 말해 1938년 벨기에의 현실적 상황을 암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일 군인들이 벨기에를 점령하기 직전, 무고한 유대인을 체포하여 강제수용소로 끌고 가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모두 무감각합니다. 동시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 이카로스의 불행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태양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이카로스의 “하얀 피부의/ 다리”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우아한 선박, 즉 상선은 어디론가 유유히 떠나가고 있습니다.

 

브뢰헬의 그림은 20세기에 이르러 이른바 ‘그림 시’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를테면 기스베르트 크란츠 G. Kranz는 1986년 브뢰헬의 그림을 소재로 한 35편의 시 그리고 산문 등을 모아서 이를 책자로 공개하였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 M. L. Kaschnitz의 산문, 토마스 로젠뢰혀 Thomas Rosenlöcher 그리고 볼프 비어만의 에세이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카로스에 대한 화가의 냉소에 대해서 반발할 뿐 아니라, 세계의 냉담함에 대해서 비판적 메스를 가합니다.

 

가령 카슈니츠는 세계의 파국을 외면하는 일상인들의 안이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카슈니츠 문학의 보편적 주제는 과거의 파국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망각 내지는 ‘반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 Unfähigkeit zu trauern’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브뢰헬 작품을 소재로 한 시 한편을 언급할까 합니다. 그것은 울리히 베르케스 Ulrich Berkes의 「도시 위의 이카로스」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화가의 입장을 부정하면서, 이카로스에게 동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이카로스는 바보가 아니라, 비극적 영웅으로서 냉담한 세상을 미리 간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