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괴테의 친화력 (2)

필자 (匹子) 2021. 6. 27. 09:36

소설의 제 2부는 두 여인의 일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성에 남아서 묘지를 가꾸고 예배당을 증축하는 일에 매달립니다. 말하자면 제 2부는 죽음의 그림자로 시작되는 셈이지요. 독자는 어느 건축가와 나누는 오틸리에의 대화에서 지루한 일상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샤를로테의 딸인 루시안네가 성을 찾아와서, 어머니에게 바깥세상의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영지 내에서 지내는 귀족들의 한가한 삶과 대립되는 것들이지요. 아들은 성장할수록 오토와 너무나 닮아갔습니다. 샤를로테는 이에 대해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어느 날 에두아르트는 전쟁으로부터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오틸리에는 아이를 데리고 호숫가로 가서 애인과 뜨겁게 재회합니다. 에두아르트는 자신의 아이를 보는 순간 에두아르트는 재차 깜짝 놀랍니다. 아들이 오틸리에와 너무나 흡사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틸리에에게 하나의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즉 아내와 성관계를 맺을 때 오틸리에만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에두아르트는 오토를 만나, 그에게 샤를로테와 이혼하려고 한다는 것을 분명히 전합니다. 친구 역시도 샤를로테와 결혼하기를 강렬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이러한 정황을 오틸리에에게 설명해 줍니다. 오틸리에는 조용한 성품의 정갈한 여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만약 샤를로테가 남편을 포기한다면, 자신도 에두아르트와 결합할 수 있다고 조용히 대답합니다. 괴테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희망은 마치 천국에서 떨어진 별처럼 그들의 뇌리를 신속하게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단호하게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에두아르트는 황급히 팔을 내밀어서 오틸리에를 끌어안습니다. 마치 성난 짐승처럼 달려드는 애인은 순간적으로 그미에게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오틸리에는 그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재빨리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려고 합니다. 호수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 나룻배는 순간적으로 흔들렸고, 아이는 그미의 품에서 빠져나와 호수에 빠집니다. 오틸리에가 아이를 물에서 건져 내었을 때 아이는 죽어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깊은 시름에 잠깁니다. 에두아르트 역시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아들이 죽었다는 데 대해 고통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의 죽음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평소에 아이가 이혼하는 데에 하나의 악재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사를로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편과의 이혼에 동의합니다. “아이가 죽은 것은 내 탓이야. 내가 너무 머뭇거리면서 완강하게 남편에게 집착했기 때문이야.”

 

모든 것은 에두아르트의 뜻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C,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타주의 내지 죄의식을 저버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오틸리에는 그와의 결혼을 포기합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은 자신 탓이니, 스스로 끔찍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에두아르트와 결혼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그미의 이러한 결심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오틸리에의 의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에두아르트는 그미를 어느 여관에 감금해버립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랑하는 임이 마음을 돌릴 것 같았습니다. 오틸리에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말문을 닫으면서 식음을 전폐합니다. 그미는 결국 굶주림을 참다가 아사 (餓死)하고 맙니다. 자신에게 파고드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스스로 성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미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뒤에 오틸리에는 성녀로 추앙받습니다. 몇 달 후에 에두아르트 역시 사망하고 맙니다. 두 사람의 시신은 성의 예배당 옆에 안치됩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즉 문화적 질서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격정 사이의 갈등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괴테는 오틸리에의 운명을 통해서 다음의 사항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즉 오틸리에의 도덕적인 지조는 결코 에두아르트에 대한 지속적 사랑의 열정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사항 말입니다. 그렇지만 괴테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내세웁니다. 인간은 최소한 자신의 열망과 열정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스스로 피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마치 책임 회피 내지는 변명같이 느껴집니다만, 어쨌든 괴테는 최소한 그렇게 믿었습니다.

 

친애하는 C, 화학적 요소에 반영된 자연 법칙은 인간의 애정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인간의 도덕적인 지조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열정과 결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학의 경우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지만, 인간의 애정의 경우는 과감한 포기를 통해서 어떤 정신적 자유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체념과 포기의 원칙은 괴테의 후기 작품에서 중요한 자세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 그리고 「서출의 딸」 등에서 나타나듯이 열정과 갈망의 힘과는 대비되는 생산적인 모델이라고 합니다.

 

친애하는 C, 그렇다면 우리는 도덕적 질서를 위하여 주관적인 열정을 마냥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루소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단호한 어조로 그럴 수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열정이라는 자연법칙과 도덕성의 계명은 괴테의 문학에서 동등한 무엇입니다. 괴테에게는 도덕적 질서 그리고 주관적 열정 모두 중요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괴테 문학이 지니는 “균형으로서의 형식” 내지 양비론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샤를로테가 도덕적 질서라는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는 태도는 열정의 힘만큼이나 끔찍하게 작용합니다. 친화력이라는 자연법칙의 강요는 오틸리에가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극복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미와 에두아르트 사이의 마력적인 결합의 힘은 그미의 결심으로 인하여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C., 당신이 중시해야 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사랑의 열정은 괴테의 문학에서는 항상 마력적인 것 악령과 유사한 무엇으로 나타난다는 사항 말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벌컥 뒤집는 혁명적 사건과 관련되지요. 가령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쟁 등은 괴테의 눈에는 바로 열정이라는 자연법칙 속에 도사린 악령의 사건으로 비쳤습니다. 악령은 한마디로 괴테 문학의 영원한 비밀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