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괴테의 친화력 (1)

필자 (匹子) 2021. 6. 27. 09:35

친애하는 C., 오늘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 - 1832)의 소설 한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1809년에 발표된『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이라는 중편입니다. 괴테는 처음부터 이 작품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2년 전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를 집필하던 과정에서 한 가지 착상이 떠올랐는데, 이 착상으로 인하여 결국 한 편의 중편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괴테는 언젠가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토르베른 베르히만 Torbern Bergman이 1775년에 발표한 논문 「금속의 인력 引力에 관하여 (De attractionibus electivis)」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의 성분이 상호 충동하여 교차적으로 재결합한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가령 AB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진 금속이 CD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진 다른 성분을 만날 때 이러한 성분들이 교차되어 밀침과 당김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결국 두 개의 금속 성분은 AC 그리고 BD으로 재결합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베르히만은 “친화력”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괴테는 상기한 밀침과 당김의 화학적 현상을 인간의 사랑과 성의 차원으로 이전시키려고 시도합니다. 친애하는 C,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사랑의 삶에서 고뇌하지 않는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사회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사랑을 실천하기란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랑의 감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연인 사이에 한번 새겨진 갈등의 앙금은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우도 린덴베르크 Udo Lindenberg의 노래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접착제고무로 만들어진 게 아니므로”, 금이 간 애정 관계를 원상 복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연인들은 사랑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삶 속에는 자유로운 사랑의 삶을 가로막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습과 결혼제도라는 도덕적 규범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괴테는 『친화력』에서 자유와 필연, 자연스러운 충동과 문화적 규범 사이의 관계를 다루려고 하였습니다. 소설 속의 모델은 제각기 파트너에 대해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결혼 제도를 파괴시키는 모델일 뿐 아니라, 나아가 결혼 제도를 떠난, 보다 자유로운 남녀 관계에 대한 모델입니다. 나아가 작품은 문화적 질서의 틀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정원 가꾸는 기술, 건축술, 의학, 교육학 그리고 예술 등의 분야를 모조리 도입합니다. 등장인물들은 혼돈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각기 노력합니다. 그들은 이성이라는 잣대에 자신을 의지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이러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언제나 파괴적인 충동력과 조우하게 됩니다.

 

에두아르트는 중년의 나이에 이른 부유한 백작입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청년 시절에 사랑했던 샤를로테와 두 번째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이른바 신분차이를 이유로 처음부터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계기는 각자의 파트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이 결혼한 부부는 어느 고립된 성으로 떠납니다. 칩거해서 살아야만 오랫동안 갈구했던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은둔생활을 영위하면서 주위의 황야를 공원으로 개간합니다. 그렇지만 에두아르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절친한 죽마고우인 오토를 자신의 영지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사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오토는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군대에서 장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함께 살면서 정원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오토를 초청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에두아르트는 대단한 추진력을 지닌, 적극적인 사내였습니다. 그래서 샤를로테는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미는 자신의 질녀인 오틸리에를 영지로 데리고 옵니다. 오틸리에는 자신의 딸 루시안네와 함께 도시의 여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두통에 시달렸으므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오틸리에는 공부 잘하는 루시안네로부터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샤를로테는 차라리 오틸리에가 성에 거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그미가 성에 머물면, 두통을 완화하고, 집안일을 돕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샤를로테는 오토와 만나자마자 어떤 기이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품지 못했던 설렘의 감정이었습니다. 오토 역시 친구의 아내에 대해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두 사람의 마음에 도사리던 설렘과 매력의 감정은 서서히 연정으로 뒤바뀝니다. 그렇지만 샤를로테는 남편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오토에 대한 애정을 없애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다른 한편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미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에게서 엿보이는 순진무구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오틸리에를 보는 순간 에두아르트는 가난한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주위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오틸리에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오틸리에 역시 그를 좋아합니다. 에두아르트의 모습은 그미의 눈에는 백마 탄 기사로 비쳤으니까요.

 

부부는 순식간에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각자의 애인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가 집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리하여 그미가 약간 동떨어진 다른 집에서 거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샤를로테 역시 자신의 애인인 오토를 그냥 무위도식하는 남자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어서, 그에게 반듯한 직장 하나를 알선해주려고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에두아르트는 성을 돌아다니다가 오틸리에의 방으로 잠입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내 샤를로테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격정적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임을 끌어안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과 정을 통하는 여자가 오틸리에가 아니라 아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에 그들은 오토와 오틸리에를 만나는데, 꼭 간밤에 불륜을 저지른 것 같아 얼굴을 붉힙니다. 바로 그날 밤에 샤를로테는 임신하게 되고, 나중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샤를로테는 오토에게, 에두아르트가 오틸리에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샤를로테는 성스러운 결혼의 맹약을 어길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자신의 고백을 철회하며, 더 이상 오토를 사랑할 수 없다고 토로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오토는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입고 성을 떠납니다. 다른 한편 샤를로테는 자신의 입장을 남편에게 전하면서, 남편 또한 결혼의 맹약을 지키라고 완강하게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남편인 에두아르트는 선뜻 아내의 요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친구가 떠날 때 배웅해주지만, 오틸리에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중에 에두아르트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다지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내와 이혼할 수도 없습니다. 아내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오틸리에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에두아르트는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하여 성을 떠납니다. 소설의 제 1부는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