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헤겔의 정신현상학

필자 (匹子) 2021. 2. 26. 09:56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겔 (1770 - 1831)의 대표작 ?정신 현상학 (Pänomenologie des Geistes)?은 1807년에 간행되었는데,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시스템” 제 1장을 표현하려고 계획된 것이다. 나중에 본서의 첫 번째 세 장에 해당하는 “의식 - 자의식 - 정신의 현상학으로서의 이성”만이 상기한 시스템 속에 편입되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상당한 부분으로 축약되어, 인간학 그리고 심리학 사이에 재론되고 있는데, 내용상으로 고찰할 때 주관적 정신의 어떤 발전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Enzyklopädie, 3. Aufl., §§ 418 - 439).

 

1805년 그리고 1806년 작품의 집필 시에는 이른바 확신 그리고 진리에 관한 인식 이론적 문제가 “의식의 경험에 관한 학문”으로서 중점적으로 거론되었으나, 나중에 책 간행 직전의 시기에 헤겔은 “정신 현상의 학문”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헤겔은 스스로 “나중에 여러 부분을 차지할, 보다 거대한 비형태”를 상정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하나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정신”에 관한 철학적 주요 내용을 가리킨다. ?정신 현상학?의 마지막 장에서 그리고 유명한 「서문」에서 헤겔은 책에서 다루려는 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의식의 체험을 통해서 정신의 촐현에 관한 이론이 도출될 수 있다.

 

1807년에 헤겔은 스스로 정신 현상학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했다. 친구들과 적대자들은 헤겔의 작품을 “개인 심리학 그리고 인류 공동체의 역사 및 인류의 형성사 등의 자웅동체”라고 명명했다. [개인 심리학으로 명명되는 까닭은 헤겔이 작품에서 개별적 인간의 자의식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빌헬름 푸르푸스 (W. Purpus)에게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가장 신랄하게 비난한 철학자는 R. 하임 (Haym)이었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역사를 동원하여 뒤죽박죽 만든 심리학에 불과하며, 심리학을 동원하여 마구 헤집어 놓은 역사학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헤겔의 불균형한 사고를 담고 있는, 그러나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초기 작품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므로 100년 후에 사람들은 "정신 현상학"을 헤겔 전집에서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정신 현상학은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헤겔의 고찰에서 수용된 것이다. 그것은 불명료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서는 헤겔의 시스템 속에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 편입되기 어려운 면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사상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난해한 작품에 해당하는 본서는 일원적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이란 자신의 고유의 존재를 해명하려고 할 경우 경험적인 자의식 뿐 아니라, 그 자체 공동성 내지 역사성 속의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정신을 뜻하기 때문이다. 개별적 인간은 인류의 운명적인 길을 함께 걸어감으로써 자기 자신이 된다. 이러한 동행을 방법론적으로 밝혀내는 게 바로 ?정신 현상학?의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정신이 행하는 오디세이 항해라고 명명될 수 있다.

 

개별적 정신은 모든 인류의 정신처럼 삶과 세계라는 형체의 가장 다양하고, 좁고도 넓은 중개 과정을 거친다. 상기한 내용을 고려할 때 ?정신 현상학?은 인간 의식의 철학인 거대 차원으로서, 당시의 교양 소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철학적으로 전이시킨 것과 다름이 없다. (블로흐는 자신의 책 ?희망의 원리?에서 정신의 모험하는 과정을 파우스트의 행위와 비유하고 있다.) 이로써 헤겔은 어떤 거대한 발견을 위한 여행에 동참하는데, 이는 자신의 「서문」에서 고전적으로 표현된, 이른바 발전 개념의 의식화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일상적 현실에서 파생된 견해로부터 스스로 확장되는 형이상학적 지식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신 현상학은 다음의 사실을 밝히는 것을 과업으로 삼는다. 즉 절대적 지식이 의식의 다양한 형체들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거기에 작용하는가? 하는 물음이 바로 그 과업이다. (여기서 절대적 지식은 지식 자체와 알게 된 사실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절대적 지식이 출현하는 길은 자신의 고유한 운동 법칙을 지닌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한 모든 의식의 포착이 바로 그 법칙이다. 이로써 의식과 대상이 하나로 일치되는 경우는 결코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된다.

 

의식은 이미 주어진 대상을 뛰어넘고, 그것을 더 높은 곳으로 안내한다. 다른 한편 변화된 대상은 의식의 배후에 머물지 말고, 자신과 동일하게 되는 인식을 의식에게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의식의 형체 그리고 대상의 형체는 제각기 자신을 벗어나서 더 높고도 더 포괄적이며 더 참신한 형체 속으로 향한다. 바로 그것이 정신의 세계를 지나치는 걸음이다. 이러한 걸음을 통해서 결국 세계는 세계가 되고, 정신은 정신이 된다. 인간의 변모하는 세계는 변모하는 정신이다. 이로써 최후에 완성되는 것은 자신의 현실로서의 세계를 인지하는 정신이다.

 

세계 과정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의식이다. 즉 자아가 지금 이곳과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확신하는 그러한 의식 말이다. 이간은 “이러한”, “자아”, “여기” 등을 반드시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를 통하여, 사물 속에 담겨 있는, 보다 더 높은 보편성을 인지하게 된다. 하나의 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데, 스스로 폐쇄되어 있으나, 타자와의 관계를 지향한다. 오성에게는 사물에 도사린 외부적 요소 내부적 요소, 달리 말하자면 현상 그리고 본질은 에너지의 유희에 의해서 나뉘어진다. 오성의 힘에 의해서 사물은 자신 속으로 회귀되어 있다. 그렇지만 의식 자체는 -그 자체 비로소 사물에 대한 의식인 한에서는- 자기 존재, 성찰의 정점에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 자기의식은 자신과 동일한 무엇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비로소 자기의식이 된다.

 

노예는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삶과 죽음의 투쟁을 벌린다. 그는 모든 것을 소비하는 주인에게 굴복되어 있었지만, 사물을 창조하려는 생산적인 노동에 대한 “비밀스러운” 열망을 통해서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주인은 자신의 힘을 재창조하고, 노예에게 진정한 자유를 전해주지 않는다. 노예의 사슬 속에서 해방된 인류의 모델은 스토아 철학의 방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경직된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모든 확고한 입장을 없애버리면, 인간은 “불행한 의식”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불행한 의식이란 현세의 억울한 삶 그리고 내세에 성취되리라는 희망 사이에서 오가는 것이다. 여기서 헤겔은 중세 사람들의 종교적 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 모든 것을 보상해내려는 욕구는 하나의 자기 기만과 같다. 스스로 모든 현실 자체라는 확신을 지닌 이성은 바로 이러한 태도에서 일탈된다. 이상주의는 헤겔의 의하면 바로 이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성은 개별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현상의 영역 속에서 자연과학자의 새로운 관찰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조직적 자연 속에서 그리고 인간의 심리 구조 속에서 법칙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한다. 헤겔이 본서에서 별도로 인상학 (Physiognomie) 내지 골상학 (Schädellehre)을 거론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내부의 진정한 외부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그곳은 바로 이성적 자의식이 스스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이로써 헤겔은 주인과 노예에 관한 실천적 문제에 근접한다.) 개별적인 것은 “자신의 현실 속에서 만인의 행위 안으로 차단되어 있다.” 개별적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로써 자신의 도덕 그리고 법과 함께 민족 개념이 나타날 수 있다. 발전은 욕구 내지 세계 향락이라는 개인주의를 거쳐서, 파기된다. (여기서 개인주의란 운명의 필연성 내지 세계의 관련성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의식은 전체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내부에서 보편적 법칙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자의식은 자신의 심장 속의 법칙에 따라 세계를 향상시키려고 한다. 이로써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어두움으로 변모된다. 다시금 개별성과 보편성은 서로 대립한다. 만약 자의식이 세계의 변화로 요약되는 보편성과 대립하지 않고, 그것을 찬양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자의식은 어떤 위험 속에 처하게 된다. 즉 사물을 자신의 의지대로 충동하지 않고, 그것을 마치 자신으로 착각하여 함부로 대하는 그러한 위험 말이다. 헤겔은 세상의 이러한 구체적 상태를 “정신의 동물 나라”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사물의 논리는 필연적 보편성으로 회귀한다. 이성은 사물의 논리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이때 법칙성이 부여되는 게 아니라, -칸트가 말한 대로- 법칙성이 검증된다. 도덕적 실체를 지닌 직접적인 자의식은 이러한 척도를 거부한다.

 

진정한 정신은 세계사적 차원에서 확장되는 변증법적인 단계를 지칭한다. 진정한 정신은 도덕이다. 도덕적 영역 속에서는 비극적인 갈등이 형성된다. 예를 들면 가정이라는 시적 법칙 그리고 국가라는 인간적 법칙 사이에서 고뇌하는 안티고네 (Antigone)를 생각해 보라. 직접적 도덕의 실체는 갈등을 빚다가, 외부적 법적 상태를 용인함으로써 사라진다. 그것은 “교양 (Bildung)”이라는 소외된 정신으로 변모한다. 개인은 국가 권력 그리고 풍요로움 사이에서 주어진 질서를 지키는 고결한 의식 그리고 비밀리에 찢겨지는 저열한 의식으로 나뉘어진다. 선과 악의 개념은 권력과 금력에 대해 보편적인 입장을 취하느냐, 아니면 개별적인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전도될 수 있다.

 

도덕성은 종교의 영역에서 자신의 진리를 발견하였다. 종교의 현상학 역시 역사적 그리고 초역사적으로 이해되는 순서를 밟는다. 그것은 바로 일반성, 대립 그리고 자기 파기라는 변증법의 순서를 뜻한다. 그 형체는 대상 절대적인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우리는 절대적인 무엇을 자연의 형체 속에서 예술 작품 속에서 정신의 진정한 형체 속에서 고찰할 수 있다. 자연 종교는 빛의 신으로부터 동식물의 신을 거쳐, 만물을 본능적 작업으로 제조하는 신으로 이전되었다.

 

이에 반해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신을 숭배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 종교는 서사시, 비극 그리고 조각상 그리고 살아있는 공동체의 축제 등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종교는 전체적 정신의 현존하는 현실이나 다름이 없다. 만약 정신이 자신을 고찰할 뿐 아니라, 자신을 알게 된다면, 학문의 변모는 철학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정신 현상학"의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미시적 텍스트 분석 작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헤겔의 표현과 비유 등은 많은 후세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맑스에 의하면 이 책의 중요성은 “이 책이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며, 이를 보존하고 있는데, (...) 그 까닭은 실질적 인간이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서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