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계몽주의 유토피아의 10가지 유형 (1): 레이몽 트루송 Raymond Trousson은 『없는 곳의 나라에로의 여행. 유토피아의 사고의 문학사 Voyages aux pays de nulle part: histoire líttéraire de la pansée utopique.』(1975)에서 17세기 18세기에 유럽에서 출현한 유토피아의 특성을 10가지로 제시했습니다. (Trousson: 121). 첫째는 주어진 현실과 시대를 풍자하고 비아냥거리는 유형입니다. 둘째는 이른바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문학 유토피아인데, 주어진 현실을 약간 수정하여 이를 문학적으로 반영한 유형입니다.
셋째는 역사적 진보와는 방향이 다른 지상의 낙원을 묘사하는 경우입니다.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부록』내지는 페늘롱의 『텔레마크의 모험』에 나타난 베타케의 유토피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넷째는 족장 체제의 지상 낙원을 다룬 문학 유토피아입니다. 폭정을 피해서 어디론가 숨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피적 문학 유토피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령 시몬 베링턴Simon Berington의 『고덴치오 디 루카 공의 회상록Memoirs of Sig. Gaudentio di Lucca』(1737)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공산주의 내지 무정부주의의 사상을 담은 지상의 낙원을 다룬 유형입니다. 모렐리의 『바실리아드』 그리고 레티프 드라 브르톤의 크리스틴 섬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중농주의에 근거하는 입헌 군주제의 유형을 가리킵니다. 일곱 번째는 사드의 타모에 섬, 혹은 부투아 왕국과 같은 기이한 사회를 다룬 유형입니다. 이를테면 사드는 공화주의의 문제점을 역으로 기술하기도 하고, 무신론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덟 번째는 유토피아의 공유제를 부정하고 철저히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소규모 사회의 유형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볼테르의 『캉디드』그리고 루소의 『새로운 엘로이스』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홉 번째는 유토피아의 낙관론적 사고를 부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유형의 작품을 가리킵니다. 맨드빌, 스위프트 등이 이러한 유형의 작가에 해당합니다. 열 번째는 “시간 유토피아”를 문학적 현실로 설정한 작품 유형을 가리킵니다. (정해수 389 – 403).
11. 계몽주의 유토피아의 10가지 유형 (2): 다만 우리가 상기한 10가지 유형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은 무엇보다도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역사적 진보와는 방향이 다른 지상의 낙원을 묘사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천년왕국의 찬란한 생활상 내지 아르카디아의 꾸밈없는 유토피아의 상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사상을 다루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모렐리의 유토피아에서 부분적으로 엿보이듯이 우리는 유토피아의 이상이 무엇보다도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사회적 삶의 구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시간 유토피아를 중점적으로 다룬 경우입니다. 예컨대 메르시에의 작품, 『서기 2440년』은 찬란한 이상적 삶이 미래의 이곳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9.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특징 (1): 그렇다면 계몽주의 내지 절대 왕권 시대에 출현한 유토피아의 특징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계몽주의 시대의 유토피아들은 과거의 정태적 합리적 구도의 틀을 파괴하고, 주체의 의지가 담긴, 능동적이고 역동적 변화의 의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주로 여행을 통해서 조우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하나의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절대 왕정 시대에 출현한 몇몇 문학 유토피아는 먼 곳으로 향해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물론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도 섬의 모티프가 출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경우 주로 여행기만 언급되고 있을 뿐, 범선을 타고 수 개월 동안 여행하는 이야기는 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그리고 부갱빌의 타히티 섬의 발견은 문학 유토피아에 커다란 자극을 가했습니다. 먼 곳으로의 여행이 강조된 까닭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에 횡행하는 절대 왕정 국가의 막강한 힘과 폭력에 기인합니다.
자고로 주어진 현실이 부자유의 질곡에 묶여 있으면,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욱더 먼 곳의 상 속에서 충족될 수 있는 법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푸아니의 남쪽 대륙에 관한 유토피아라든가 슈나벨의 『펠젠부르크 섬』 그리고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부록』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절대 왕정의 끔찍한 횡포는 작가들로 하여금 유토피아의 장소를 먼 미래, 심지어는 우주의 공간까지 확장시키게 하였습니다.
특히 우리는 프랑스의 작가, 사비니엥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Savinien Cyrano de Bergerac의 작품 『다른 세계, 혹은 국가들과 달에 관한 제국 L’Autre Mond ou Les Estats et Empires de la Lune』(1657/ 62)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라노는 달 그리고 태양으로 향하는 여행기를 소설로 완성했는데, 우리는 주어진 참담한 억압의 현실과의 비교를 통해서 작품의 주제, 작가의 시대 비판 등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12.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특징 (2): 둘째로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유토피아는 이미 언급했듯이 계몽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17세기 그리고 18세기의 유토피아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근엄한 법 ius strictum”이 존재하지 않는 태고의 시대의 삶입니다. 실정법이 필요 없는 무위의 시대가 말하자면 황금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법사상이 절대주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짐이 국가이며, 짐이 법이다.”라는 철권통치자의 발언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황제의 말이 바로 법이며 철칙인 곳에서 인민의 주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지배자 없고 법이 없는 고대의 삶을 막연하게 동경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서 우리는 제후의 교육을 들 수 있습니다. 루이 14세의 철권 정치와는 반대로 선한 왕의 정치를 기대하려면, 왕이 되려는 자의 교육이 처음부터 올바르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선한 왕을 갈구하는 것은 근대 사회의 토대가 될 수 없는 봉건적 성향이지만, 최소한 억압과 독재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게 당시 지식인의 생각이었습니다. 제후의 교육은 결국 교양 소설의 필요성을 요청하였고, 교양 소설은 무엇보다도 선한 왕을 길러내는 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페늘롱의 『텔레마크의 모험』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3. 17세기 그리고 18세기 유토피아의 세 가지 특징 (3): 셋째로 17세기 18세기 유토피아의 세 번째 특징은 시간 유토피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16세기 그리고 17세기 중엽까지 사람들은 종교 분쟁으로 갈등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면, 17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에는 종교가 아니라, 전제 군주의 폭압으로 힘든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이슈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억압과 강제노동 그리고 계층 사회의 문제 해결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의 주권을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더 나은 삶은 멀리 떨어진 섬에서가 아니라, “미래의 바로 이곳”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는 라이프니츠 사상의 급진성과 접목되어 이후의 시대에 지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요한 크리스티안 에델만Johann Christian Edelmann 그리고 테오도르 루드비히 라우Theodor Ludwig Lau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Israel: 652 – 664).
사실 마젤란의 세계 일주가 끝난 뒤부터 사람들은 지구상에는 더 이상 발견될 공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 지상의 천국이 건설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적 삶의 가능성을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연기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장소를 중심으로 설계되던 “유토피아 Utopia”는 이른바 시간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우크로니아 Uchronia”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게 됩니다. 시간 유토피아의 대표적 작품은 메르시에의 『서기 2440년』인데 이후의 장에서 언급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 블로흐, 에른스트: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 박설호 역 열린책들 2011.
- 장세룡 A: 장세룡, 급진계몽주의 론과 계몽주의 지성사의 전망, 실린 곳: 역사학 연구, 제 29집, 2007, 513 – 545쪽.
- 장세룡 B: 장세룡, 프랑스 계몽주의 지성사. 지적 실천 운동으로서의 계몽주의의 재해석, 길 2013.
- 정해수: 18세기 대혁명 전후의 프랑스 문학과 사상 연구, 유토피아에 관한 글쓰기, 실린 곳: 한국프랑스학 논집, 제 76집, 2011, 373 – 425.
- Grimminger, Rolf: Die nützliche gegen die schöne Aufklärung, in: Utopieforschung, (hrsg.) Wilhelm Vosskamp, 3 Bd.Frankfurt a. M 1985, 125 – 145.
- Heyer, Andreas: Der Stand der aktuellen Utopieforschung, Bd. 1, Die Forschungssitualtion in den einzelnen akademischen Disziplinen, Hamburg 2008.
- Israel, Jonathan I.: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 – 1750, Oxfort 2001.
- Kant, Immanuel: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In: Berlinische Monatsschrift, 1784, H. 12, S. 481–494.
- Krauss, Werner u.a. (hrsg.): Europäische Aufklärung jenseits der Zentren, Frankfurt a. M. 2008.
- Nipperdey, Thomas: Reformation, Revolution, Utopie. Studien zum 16. Jahrhundets, Göttingen 1975.
- Trousson, Raymond: Voyages aux pays de nulle part: histoire líttéraire de la pansée utopique. Université de Bruxelles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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