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형 예술

각저총의 씨름도

필자 (匹子) 2020. 6. 15. 10:22

 

하나의 그림은 언제나 우리에게 수많은 의미를 복합적으로 전해줍니다. 그것이 고분의 벽화인지, 근대의 미술품인지는 부차적입니다. 오늘 다루려고 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해당하는 각저총의 씨름도입니다. 각저총은 실제로 만주의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 (輯安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약 10만 년 전에 북상하다가 6만 6천여년 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갈라져서 4만 5천년에서 5만 년 전에 유럽에 도착하고, 3만 4천 년 전에는 동아시아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동아시아에 도착한 한 부류는 베링 해협을 거쳐 1만 5천년에서 2만 년 전에 지금의 미주에 도착했습니다. 중동에 도착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인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뇌와 유전자 연구 그리고 고고학의 자료로 종합한 결과입니다.

 

 

인종은 아프리카 인종과 몽고 인종 그리고 코카시아 인종으로 분유됩니다. 이 가운데 백인종과 황인종은 지구상의 커다란 인종 군으로서 단군 신화에는 호랑이와 곰으로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굴속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지만, 곰은 쑥과 마늘로 버팁니다. 서양의 호랑이가 물질세계를 개발하고 자연과학 연구에 공헌했다면, 동양의 곰은 내면의 정신의 탐구와 그 공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외인적 관계는 투쟁으로 인해 싸움으로 격화되지만, 내인적 관계는 상대방의 다른 점을 받아들입니다. 외인적 관계가 권투라면, 내인적 관계는 마치 씨름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씨름의 경우 너의 힘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하고, 나의 힘이 너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씨름에서는 권투와는 달리 힘이 약한 자가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여 승리하기도 합니다. 단군 신화는 이러한 내인적 관계를 “재세이화 (在世以化)”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 존재하면서 많은 것을 교화시킨다.”는 의미를 전해줍니다.

 

 

 

벽화의 그림을 고찰해 봅시다. 신단수에는 네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는 고개를 길게 빼서 씨름하는 두 인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달자인 것 같습니다. 씨름꾼 가운데 한 사람은 매부리코와 콧수염을 지닌 서역 사람이며, 다른 한 사람은 동양인입니다. 두 사람은 말하자면 코카시아 인종과 몽골 인종을 가리킵니다. 나무 밑에는 호랑이와 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서역 사람을 가리키고, 곰은 몽골 인종을 지칭합니다. 옛날부터 한인들은 곰을 사냥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입니다. 상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각저총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재판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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