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서로박: 블로흐의 인간신 사상 (1)

필자 (匹子) 2020. 5. 27. 09:18

 

에른스트 블로흐는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원제목: 기독교 속의 무신론)에서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무신론적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기독교 사상에 대한 블로흐의 입장을 요약 정리하는 작업은 그 자체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블로흐의 사상 전체를 파악하는 데 기여하리라고 여겨진다. 기독교사상에 대한 블로흐의 견해는 신학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의향에 있어서 역사철학의 관점에서의 유토피아 사상, 갈망의 심리학적 모티프 그리고 물질 이론 등과도 접목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신학, 철학, 문학 그리고 심리학 전반에 관한 블로흐의 학제적 연구는 일견 방만한 느낌을 주지만, 그 의향에 있어서는 놀라운 공통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특성을 지닌 존재이며, 이러한 갈망의 상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등의 모든 면의 결과물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기독교에 대한 블로흐의 입장은 미리 말하자면 네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기독교 사상은 예수의 삶과 말씀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신”, 그것도 “인간의 아들”에 관한 존재 가치 내지 사상적 단초를 알려주고 있다. 2. 기독교는 블로흐에 의하면 종래의 종교적 관점에 해당하는 태초의 무엇을 진리로 규정하며, 이를 신봉하는 대신에,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현세의 더 나은 삶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마지막 세상 Eschaton”을 메시아적 기대감으로 설정하고 있다. 3. 기독교 사상은 블로흐에 의하면 이른바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복종 대신에 주어진 현세에서 불의와 부정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거역과 반역의 자세를 지향하고 있다. 4. 신은 하늘의 권좌에 앉아서 전지전능한 후광을 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작은 섬광으로 자리할 수 있는 불꽃의 존재일 수 있다. 여기서 범신론과 이신론의 혁명적 특성 내지 과정 철학에서 언급하는 범재신론 Panetheismus의 모티프가 발견될 수 있다.

 

첫째로 기독교 사상은 예수의 삶과 말씀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신”, 그것도 “인간의 아들”에 관한 존재 가치 내지 사상적 단초를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이른바 세계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을 숭상하며, 그의 권능을 따르겠다는 믿음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반 종교 창시자들은 전지전능한 신들, 혹은 유일신을 항상 세계를 창조한 분으로 설정해왔다. 그러나 기독교는 블로흐에 의하면 이러한 전지전능한 알파로서의 신을 모시지 않고, 그 대신에 인간의 아들, 예수를 오메가로서의 구세주 내지는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고 있다. 문제는 인간신에 관한 사고가 권위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전지전능한 신에 관한 사고와 정반대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로마 제국의 권력자는 천민들 중심으로 모인 기독교들을 가리켜 “무신론자들hoi atheoi”이라고 규정하면서 비난을 가했다. 사실 기독교도들은 모든 정치적 개인적 삶을 규정하는 로마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나자레트 출신의 예수를 성자로 받들었던 것이다. 인간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장악하는 전지전능한 상부의 신들은 지상의 인간들과 주종관계를 형성해 왔다.

 

“신은 어째서 인간인가? Cur Deus homo?”의 물음과 관련하여 블로흐는 카발라주의에서 논의되는 아담 카드몬Adam Kadmon 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카발라 사상에 의하면 태초의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근원적 상과 같다. 아담 카드몬은 유대인 사상가들에 의해서 신을 대신할 수 있는 찬란한 인간의 면모를 가리킨다. 카발라주의자들은 인간의 신체 내지 우주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서 아담 카드몬에게 10개의 고유한 특성을 부여했다. 그것은 왕관, 지혜, 오성, 사랑, 권력, 명예, 지속성, 광채, 토대, 지배 등을 가리키는데, 광의적 관점에서 소우주와 대우주로 나누어진다. 말하자면 인간과 우주가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담 카드몬의 본성으로 확정되어 있다.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형상으로서의 아담 카드몬의 상은 나중에 파라켈수스 Paracelsus에 의해서 의학 그리고 천문학 연구의 결과물로 확정된 바 있다. 예컨대 인간의 신체 변화를 관장하는 아르케우스 Archaeus는 우주의 혹성의 움직임과 관련되는 불카누스 Vulcanus와 평행을 이루면서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사실이다. 블로흐는 아담 카드몬의 이러한 상을 놀랍게도 인간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에 적용시킨다. 그리스도의 몸 corpus Christi은 천체와 인간의 남성적 실체로서, 천체와 인간의 여성적 실체로서의 교회 ecclesia에 의해 보호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밖에 “인간의 아들 γιός ανθρώπου”에 관한 사고는 블로흐에 의하면 천국의 뱀을 흠모하는 오피스 종파에 의해서 이어져 내려왔다. 이 경우 천국의 뱀은 블로흐에 의하면 “이성이라는 여신의 애벌레”라고 규정될 수 있다. (블로흐 2009: 337쪽)

 

블로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 구도 내지 주인과 하인 사이의 종속 관계를 허물고, 평등 호혜의 관계로 설정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기독교 교회는 좋든 싫든 간에 지배 계층과 사제 계급의 농간에 의해 인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신앙을 악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기독교 교회의 강령은 특히 유럽 지역에서 어떤 생활의 지침이 되어 일반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통제해 왔다. 기독교 교회의 이러한 특성은 신앙의 부정적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블로흐는 제반 삶을 통제하고 개입하는 종교 이데올로기가 차제에는 철폐되고 극복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견해에 일차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사라진다고 해서 신앙심, 믿음의 터전,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갈망 등이 덩달아 파기될 수는 없다. 이 점에 있어서 블로흐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Feuerbach의 무신론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등장인물, 이반 카라마조프는 동생, 알로샤에게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나는 신을 믿지만, 신의 세계를 거부화고 싶네.” 이반은 창조주의 신 야훼를 거부하지만, 자기반성으로서의 믿음만큼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