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P.M.의 볼로의 볼로 (2)

필자 (匹子) 2020. 4. 8. 11:13

7. 시대 비판, 지구 위의 노동 기계: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P. M.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첫째로 자본주의와 국가 중심적 사회주의는 공히 개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지금까지의 문명은 국가 중심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가령 국가 이기주의는 오랜 시간 동안 전쟁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낳았으며, 19세기 이후의 산업 발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현대에 이르러 생태계 파괴라는 잔인한 파국을 인류에게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국가의 경제부서는 P. M.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계획적 노동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구 위의 노동 기계“PAM (Planetare Arbeitsmaschine)”이라고 명명합니다. 문제는 지구 위의 노동 기계가 고유의 동력으로 작동된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 부처가 작동시키는 재정 규모는 어마어마하여, 거대한 시스템의 동력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구 위의 자동 기계가 너무나 강대한 세력을 지니므로 인위적 제어 장치에 의해서 그 움직임이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둘째로 현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국가 체제 뿐 아니라, 이른바 기존 사회주의를 여전히 고수하는 국가 체제에 있습니다. 이러한 막강한 국가 중심의 구도 속에서는 개인의 자유는 억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Schwendter 46f).

 

8. 국가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 보장제도를 통해서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인민을 더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국가중심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가 행하는 폭력은 P. M.에 의하면 자본주의 국가가 행하는 폭력만큼 악랄하고 표독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를 표방하든, 자본주의를 표방하든 간에 국가는 중앙집권적인 지배를 통해서 개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국가의 모든 형태는 기계의 독재의 형태와 같다고 합니다. (P. M. 94: 28f.).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부르주아의 횡포가 문제라면,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국가 관료들의 횡포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제 3세계의 경우 신식민주의의 자본가와 독재자들의 문제로 부각됩니다. P. M.은 이 모든 사항을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9. 3세계의 인민과 원자재의 착취: P. M.은 지구상의 국가를 세 가지 부류로 구분합니다.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들, 국가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들 그리고 제 3세계가 그것들입니다. 여기서는 개발 도상국가가 제 3세계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3세계는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생산품을 위한 원자재를 제 1세계의 자본가들에게 팔고, 다른 한편으로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이때 유럽 사람들은 비산업적이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제 3세계에 대한 강대국의 착취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3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게 P. M.의 지론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는 대체로 사회적 구조 내지 정황이 만들어낸 모조제품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사회적 체제와 정치 경제적 질서를 바꾸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로 변화되어 있는 지구상의 경제 구도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P. M.은 믿고 있습니다.

 

10. 볼로스 내의 자유로운 삶: 다양한 생태 공동체, 볼로들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볼로는 자연으로서의 지구를 망치지 않고, 인간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며, 후손의 미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성적인 공동체의 기본적 골격과 같습니다. 볼로의 사람들은 국가의 행복 대신에 자기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하나의 볼로는 약 300명에서 500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개별 사람들은 주어진 여건에 따라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500명의 수로 제한된 것은 작가의 깊은 숙고에 의한 것입니다. 소통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150명까지 어떠한 형식과 구조의 도움 없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볼로의 회원 수는 150명보다 많아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회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 공동체의 경영을 위해서 전문적인 엘리트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되면 관료주의 체제가 도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볼로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합당한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창립할 수 있습니다. 볼로는 국적, 인종, 사회적 계급 그리고 성별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회원들에게 숙식이 제공됩니다. 회원들은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고도 공동체 내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개별 볼로들은 서로 구분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서로 소통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창의적으로 건설합니다.

 

11. 볼로의 구조와 크기: 모든 볼로는 제각기 사각형의 건축물로 축조됩니다. 건축물은 8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미터의 길이 그리고 20미터의 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복판에 정원이 위치하여, 사람들의 거주 공간에 사계절 항상 햇빛이 드리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형태는 최소한의 시설로 난방비를 절약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북반구의 육지는 남반구의 그것에 비해 다섯 배 크며, 인구 역시 밀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남반구의 에너지에 비해 월등히 많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원을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모든 볼로 사람들은 반드시 농업에 종사해야 합니다. 하나의 볼로 내에는 약 90헥타르의 논밭이 주어져 있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유기농 기술을 실천하며 우유 그리고 감자 등을 생산해냅니다.

 

12. 볼로의 아나키즘의 정치 구조: 볼로의 정치 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주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볼로가 채택하고 있는 자치적 체제는 이를테면 스위스의 칸톤 주의 경우와 유사합니다. 스위스에는 26개의 칸톤 주로 분할되어 있고,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모든 것이 지방분권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의 존재는 아무런 권한을 지니지 않으며, 연방 공화국의 행정 체제만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세계는 수많은 볼로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가 중심의 모든 행정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든 볼로들은 제각기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규정을 고수하며,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며, 느슨한 방식으로 다른 볼로와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가령 달라스dalas”라고 불리는 평의회를 구성하여 서로 연락을 취하며, 평의회는 다시금 아사의 달라라고 불리는 세계 평의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슨한 방식으로라는 표현입니다. 평의회와 세계 평의회는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기구가 아니며, 어떠한 권한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회원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기능만을 수행할 뿐입니다. 만약 평의회 내지 세계 평의회가 어떤 법이나 규정을 결정할 권한을 지닌다면, 이는 차제에 다시금 국가 체제가 마련될 수 있는 소지를 지닌다고 합니다.

 

13. 국가권력을 차단시키려는 노력: 볼로는 결코 기존의 국가 내지 세계 국가를 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집된 단체가 아닙니다. 작가, P. M.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소통과 협력의 작업은 언제나 권력을 창출한다. 권력을 전유하려는 개체 내지 그룹은 어디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이러한 권력지향적인 성향을 사전에 차단시키지 않으면, 사회적 조직체로부터 국가가 자라나기 마련이다.” (P. M. 83: 142). 모든 볼로들은 제각기 독립성을 고수함으로써 국가의 권력 남용을 최대한 억제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대표자의 선출은 제비뽑기로 결정됩니다. 그밖에 대표자로 선출된 사람이 장기 집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근무 연한을 철저하게 제한합니다. 모든 논의는 철저한 공개의 원칙으로 진행됩니다. 만약 어느 볼로가 무력을 사용하여 인접한 공동체들을 공격할 경우, 인접한 볼로들은 순식간에 힘을 연대하여 이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 방어를 위한 동맹 체제는 그들의 과업이 끝난 뒤에는 다시 완전히 해체됩니다. 다시 말해서 볼로와 볼로 사이에서 결성된 동맹 체제는 사건이 발생할 때 순식간에 결성되어, 사건이 해결되면 신속하게 해체됩니다. 군대 조직은 비상설 기관입니다. 이에 비해 볼로의 경찰 조직은 -실제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한다면- 10분의 1 정도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군사적 과업을 찾아서 자신의 임무를 존속시키려고 애를 쓰는 NATO와는 전혀 다릅니다.

 

14. 새로운 인간상의 변화: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 M.이 설계한 유토피아는 대부분의 문학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간이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내세우지는 않는다는 사항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고찰할 때 과거의 유토피아는 이타주의를 견지하며 공동체에 봉사하는 인간형을 중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 행복을 포기하는 인간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유형의 이상적 이타주의는 20세기 초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보그다노프의 붉은 행성(1907)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세계대전의 파국이 끝난 뒤에는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라는 강령은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 요구사항으로 수용되었습니다. 국가 내지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인간은 죽음 충동에 사로잡힌 자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가미가제의 비행사, 미국의 63 빌딩을 파괴하면서 자폭하는 테러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위험한 짓거리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 출현한 유토피아는 보다 모호하고, 파괴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형을 과감하게 서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