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P.M.의 볼로의 볼로 (4)

필자 (匹子) 2020. 4. 8. 11:15

22. 생태학의 관심사보다 중요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욕구: 볼로 사람들은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의 경우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생태계 파괴에 대해 깊은 우려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볼로 공동체가 생태계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볼로 사람들이 기존의 산업 발전 중심의 경제 체제를 지양하고, 현대의 과학 기술에 대해서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생태계의 난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의지 때문입니다. 물론 P. M.은 볼로 공동체 내에서 자연 환경의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볼로 사람들은 자원을 최대한 절약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을 최소화하려는 경제 정책을 추구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자치적 방식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갑니다. 볼로 공동체는 밭을 직접 가꾸어나감으로써, 보다 건강한 식자재를 얻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는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시키려는 의지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조처들입니다. 볼로 공동체는 경제 성장을 줄이고 소비를 억제하는 대신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개인적으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려고 합니다.

 

23. P. M. 의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 인간은 5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볼로의 볼로가 미래에 나타날 이상적 삶의 상태를 선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삶의 상태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작가는 개인을 내세웁니다. 당이나 조직체는 기계의 싹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거대한 권력을 지닐 수 있으며, 권력을 남용할 소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개인들은 주어진 시스템에 대해 사보타주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자급자족의 공동체에 개별적으로 가담하여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d‘Idler 1069). 그렇게 되면 이라든가. “거대 산업그리고 국가는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전개될까요? 가령 19세기에는 역사적 합법칙성이 작용하여, 유토피아의 의향은 거의 필연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리고 소련 국가의 탄생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이후의 현실은 사정이 다릅니다. 볼로의 볼로는 어떤 출발점으로서의 유토피아이며, 하나의 임시적인 제안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24. 전 지구적인 시각과 찬란한 공동체 사회: P. M.은 제 3세계의 억압과 착취구도를 의식적으로 작품 속에 분명히 도입하여, “볼로의 볼로라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찬란한 유토피아로 설계하였습니다. P. M.의 유토피아는 동등한 권한을 지닌 모든 사람들의 다문화적인 공동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서양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유토피아주의자는 오로지 유럽의 관점에 의해서 최상의 법이라는 토대 하에서 사회 유토피아를 설계하지 않았습니까? 가령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1911)에서 묘사된 세계 국가의 면모를 상정해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유럽 중심주의의 시각에서 다루어졌을 뿐, 3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망과 애환 그리고 해원은 부차적 사항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렇지만 P. M.은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공동체 운동을 투시함으로써, 환경 파괴, 가난, 굶주림 그리고 전쟁 등의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난제들은 국가주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글로벌 협동 내지 연대의 정책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P. M.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25. 결투를 통한 공격성향의 차단: P. M.은 르 귄, 칼렌바크보다도 더 부정적이고 암담한 인간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성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 이를테면 타인을 해하려는 공격 성향 내지 경제적 이기심 등은 볼로의 볼로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그룹 그리고 그룹과 그룹 사이의 결투 내지 싸움을 한시적으로 용인합니다. 이는 칼렌바크의 전쟁놀이를 방불케 합니다. 싸우는 자는 창, 장검, 망치 등을 사용할 수 있으나, 화염도구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자들의 성향은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려는 욕구로 이해됩니다. 결투 행위를 공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심리적인 공격성향은 어느 정도 차단될 수 있는데, 이러한 효과는 볼로와 볼로 사이의 갈등이 아주 드물게 발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26. 다원주의에 입각한 볼로 네트워크: 결론적으로 볼로의 볼로유토피아는 국가 및 국가 중심적 경제 구도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국가는 그 속성에 있어서 자신의 고유한 이익을 위해서 개개인의 사적 자유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합니다. 국가는 무엇보다도 경제 구도 및 전체적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국가든,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든, 3세계의 국가든 간에 국가는 개인보다도 사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미래에는 더 이상 이러한 유형의 국가가 존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P. M.은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충분히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에는 국가 중심의 체제가 사라지고, 전 세계에 수많은 볼로들이 산발적으로 퍼져 나가서, 제각기 자생적 코뮌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개개인의 자유를 구가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이며, 생태계를 보존하고 남녀노소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생태주의자, 에드워드 골트슈미트Edward Goldschmith1996년에 간행된 자신의 책에서 전지구상으로 퍼진 산업 사회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미래 사회가 500명 규모의 코뮌으로 분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Goldschmith: 36).

 

27. 문제점 (1): 볼로의 볼로 유토피아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속의 생태 공동체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면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온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기존의 국가 체제를 없애거나 약화시키면서, 국가 없는 공동체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3세계는 스위스의 볼로의 볼로체제를 구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는 가난과 악천후의 조건과 싸우는 소수 민족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에스키모인들,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고난의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개인적 자유를 최대한 누릴 만큼의 여유를 지니지 못합니다. P. M.은 이를테면 이후의 작품 올텐, 모든 것을 저버리기에서도 “15%의 자본주의, 20 %의 사회주의 그리고 65%의 자기 조절을 위한 사회 체제를 추상적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적 소유권과 시장의 관계를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와 급진적으로 단절하려는 공동체의 시도가 오히려 더 구체적일 수 있습니다. 가령 마이클 앨버트Michael Albert파레콘Parecon”을 생각해 보십시오. (Albert: 10).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이합집산 내지 확장이 아니라, 공동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경제 구도 그리고 조합 내지 평등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일일 것입니다.

 

28. 문제점 (2): 둘째로 볼로와 볼로 사이에는 항구적인 평화가 자리할 수 없습니다. 500명의 스킨헤드는 얼마든지 400명의 평화주의자들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스킨헤드 볼로의 이웃들을 자신의 장소를 저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게 될 것입니다. 볼로의 공동체가 같은 이슈로 모인 인터넷 카페 내지 동호회와 유사하다는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볼로의 보다 확고한 목표 지향적 설계, 교육 및 경제 프로그램을 사전에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수많은 볼로들은 작은 그룹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권력을 찬탈하려는 어떤 사악한 자를 무찌르기 위해서 힘을 합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연방적인 분산체제는 원래 볼로의 볼로가 의도하던 바와는 달리 실제 현실에서 순식간에 국가 체제로 출현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볼로 공동체는 중동의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종파 갈등 및 IS 국가의 테러 등의 현안을 고려한다면, 뜬금없는 망상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P. M.볼로의 볼로가 미국 CIA와 같은 비밀조직의 부탁으로 설계되었다는 혹자의 주장은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29. 안락사의 문제점: 볼로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은 알약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데,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고통 없이 자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살이 개인의 자기 결정권으로 행해지는 게 아니라,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나치의 안락사 정책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치들은 장애인, 노인, 정신병자 그리고 마약 중독자 등을 불필요한 인간군으로 규정하고 자살을 강요하거나 그들을 강제로 살해했습니다. 장애인, 노인, 정신병자 그리고 마약중독자들은 특정 볼로에서 얼마든지 배척당하기 십상이며, 결국 모든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은 알약을 먹고 자살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죽음 직전에 이른 환자가 극도의 고통을 서서히 느끼며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신속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더 나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볼로의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배척당하기 때문에, 혹은 고독으로 인해서 자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대답하기 힘든 난제입니다.

 

30. P. M.의 또 다른 소설, 암버랜드, 여행기: P. M.1989년에 다시 문학 유토피아를 설계하였습니다. 암버랜드. 여행기에 묘사된 공동체는 장소 유토피아의 측면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근처의 섬을 문학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국가 없는 농업 공동체를 축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민들 가운데에는 혼혈이 많습니다. 이는 이곳의 문화가 다원주의적이라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그들은 무척 사교적이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 대화 나누기를 즐깁니다. 그래서 여행객은 노란 장미 혹은 붉은 장미를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객은 노란 장미를 가슴에 꽂고 다니면, 방해받지 않습니다. 만약 붉은 장미를 가슴에 꽂고 다니면, 주민들은 여행객에게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암버랜드에서는 승용차, 화폐, 시계 등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섬은 정치적으로 국가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제도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중공업의 산업을 추진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공장이 없으며, 매연도 소음도 자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시장 등을 통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직접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물물 교환을 통하여 얻습니다. 또한 암버랜드 사람들은 시간에 얽매이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시계가 없으면 갈등도 노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고립된 섬에 살면서도 여행객과 소통하며, 생태 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여행객이 암버랜드에 오래 머물 경우 그들은 이곳에서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집안일, 청소, 정원 가꾸기 등을 통해서 밥값을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암버랜드 유토피아는 볼로의 볼로 유토피아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장소 유토피아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에셀, 스테판 (2011): 분노하라, 임희근 역, 돌베개.

- Albert, Michael (2003): Parecon, London.

- Goldschmith, Edward (1996): Der Weg. Ein ökologisches Manifest, München.

- Hessel, Stéphane (2011): Entrüstet Euch! Berlin.

- Hessel, Stéphane u. a. (2012): An die Empörten dieser Erde!: Vom Protest zum Handeln Berlin.

- D’Idler, Martin (2007): Bolo’ bolo(1983) von P. M., in: Utopie kreativ, H. 205, Nov., S. 1066 1071.

- P. M (1980).: Weltgeist Superstar, Basel.

- P. M (1994).: Bolo’ Bolo, Paranoia City, Zürich 1995., Berlin,

- P. M (1989).: Amberland. Reisebuch, Paranoia City, Zürich.

- P. M. (1991): Olten, alles aussteigen, oder Ideen für eine Welt ohne Schweiz, Zürich.

- Schwendter, Rolf (1994): Utopie. Überlegungen zu einem zeitlosen Begriff, Berlin, S. 39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