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브라이언 알디스 외: 하얀 화성 혹은 이성으로 향하는 출발

필자 (匹子) 2019. 4. 23. 09:49

Roger Penrose; Brian W. Aldiss

Weisser Mars oder aufbruch zur vernunft

 

 

화성에 관한 사이언스 픽션 그리고 학술 서적은 그야말로 도서관의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의 3부작이 가장 커다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새로운 실질적 탐구를 통해서 붉은 혹성에 관한 사변적인 견해를 저버려야 합지 모릅니다. 1999년 12월에 우주과학자들은 Deep Space 2를 화성으로 보내서 탐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화성 탐사 로봇은 화성에 착륙하여 마이크를 통해서 소리를 지구로 보내게 되어 있는데, 소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얀 화성은 상상력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서술하고 있지만, 학문적 관심사를 부추길 정도입니다. 게다가 사회 비판에 관한 부분 없이는 유토피아가 제대로 기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브라이언 알디스 (1926 - =와 로저 펜로우 (1931 - )의 작품, 『햐얀 화성, 혹은 이성으로 향하는 출발』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닌 우주의 공동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알디스는 영국에서 잘 알려진 사이언스 픽션의 작가입니다. 로저 펜로스는 권위적인 물리학자인데, 스티븐 호킹 박사의 박사학위를 지도해준 저명한 교수이기도 합니다. 펜로스 교수는 『컴퓨터의 사고』, 『의식의 새로운 물리학의 방향』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양자물리학과 뇌 과학을 결합시킨 이론을 도출해내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얀 화성”이라는 표현은 북극에 관한 UN의 계약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화성 역시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여전히 자연과학의 연구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습니다. 약 400명의 남자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서 학문을 탐구하고 있는데, 전 세계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여기세 가담하였습니다. 화성 유토피아의 책임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그는 자연과학과 문화 그리고 심리학과 정치학을 복합적으로 합치시키려는 연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약 6000명의 주민은 화성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고대의 아테네의 주민의 수와 거의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 그리고 모어의 유토피아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주민의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관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6000 명은 실험을 통해서 그럴듯한 통계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숫자입니다. 작은 그룹에서는 다원주의적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지구의 영향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서 공동체의 새로운 형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원재료라든가 물질에 관한 문제 내지 위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화폐, 사치, 무기 없는 세상에서는 물질적인 걱정꺼리는 자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이라든가 산소 등은 과학 기술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생산해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훌륭하고 정당한 사회가 어떻게 정림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화성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화성에서 살아가면서 지구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경제적 위기 그리고 생태적 위험을 반복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우주여행의 거대한 기업 역시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사람들은 지구에 대한 애착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전염병, 전쟁, 권력의 남용 그리고 가난 등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상실하는 데 대한 두려움, 모험 그리고 찬스는 새로운 영역으로 향하는 모든 출발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거나 어디론가 새로운 개척지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갈등, 폭력 그리고 일탈 등의 심리적 동기는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인민 학교를 건설하여 지구와의 직접적인 통신의 연결을 통해서 공존의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주의 마지막 토대 내지 의식의 비밀을 찾으려고 시도합니다. 몇몇은 자유와 섹스에 관해서, 교육과 정당성에 관해서, 혹은 자기실현과 권력에 관해서 열심히 토론을 벌이곤 합니다. 다른 몇몇은 이미 타버린 거대한 화산 올림피아가 어쩌면 전체적 의식을 지닌 생명체라는 사실을 발견해냅니다. 진화의 과정 속에서 위협적인 모든 삶은 화성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위 사이에서 식량과 물을 끌어내는 능력을 발전시킵니다. 또한 거대한 두터운 탱크를 만들어서 추위와 기상 악화에 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공동적인 의식이 마치 빛처럼 널리 퍼져나가는데, 이는 화성 사람들의 공동적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의 기발한 발명 내지 기술 없이는 해피엔드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화성 전체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물론 이 책은 현대적인 동화처럼 들립니다. 그렇지만 실패한 수많은 유토피아와 다른 점이 한 가지 발견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입니다. 신 혹은 진보에 대한 믿음 인간을 어디로 향하게 할까?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는 견해는 인류를 어디로 이끌게 할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유토피아는 정말로 가능한가요? 과연 그게 갈망할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요? 만약 우리의 의식이 변화된다면 그럴 것입니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